산 지미냐노는 로마를 왕례하는 순례자들이 거치는 길의 연결 지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 시기에 이 도시를 지배했던 귀족 가문들은 그들의 권력을 보이기 위해 높이, 더 높이 경쟁하듯 탑과 건물을 올렸고 수많은 탑이 도시를 대표하는 특징이 되면서 ‘탑의 도시’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부와 권력의 상징이던 화려한 탑과 건물들은 500년이 넘는 세월 속에 무너지고 사라져 현재는 약 14채의 건물만 남아있다. 성벽과 탑으로 둘러 쌓여져 요새화된 이 곳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멀리’ 혹은 ‘높이’서 보아야한다.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표지판을 보았다면 두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자. 저 멀리 이색적인 풍경의 길쭉한 도시가 보인다면 그게 바로 ‘산 지미냐노’다.
탑에 올라 바라보는
중세 유럽 마을
산 지미냐노는 성벽으로 둘러 쌓여있는 아주 작은 도시다. 성벽 여기저기 뚫려있는 큰 문을 들어서는 순간 산 지미냐노 도시 여행이 시작된다.
이 도시는 현대적인 건물 하나 없이 주택과 광장, 거리, 분수 등의 일상적인 건축물, 구조물이 모여있고 성벽과 탑으로 둘러 쌓여져있기 때문에 마치 중세시대의 요새에 온 듯해서 ‘현재 속 과거’를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산 지미냐노를 즐기기 위해서는 높이 올라보자. 7개의 탑 중 하나인 토레 그로싸(Tore Grossa)라는 탑을 오른다면 평온한 중세 유럽의 마을, 산 지미냐노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탑에 오르기 부담스럽다면 ‘와인 박물관’을 찾아가보자. 아름다운 언덕위에 위치한 와인 박물관은 ‘박물관’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와인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얻기에는 부족한 규모와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산 지미냐노에서 자랑하는 와인을 직접 시음해 볼 수 있다.
산 지미냐노산 화이트와인이 약 3유로 정도인데 와인을 가지고 박물관 옆 테라스에 자리 잡으면 언덕 아래로 펼쳐지는 한 폭의 그림과 같은 풍경과 함께 와인을 운치있게 즐길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젤라또
돈도리
산 지미냐노가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멋진 풍광 때문만은 아니다. 맛있는 음식과 디저트가 있기 때문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젤라또(Gelato)다.
이탈리아 젤라또는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 상큼한 맛으로 많은 여행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또 각 도시별로 도시를 대표하는 유명한 젤라또 가게, 젤라테리아 (Gelateria)가 있다. 수많은 젤라테리아 중 세계 최고의 ‘맛’으로 인정받은 젤라테리아가 바로 이 도시, 산 지미냐노에 있다.
산 지미냐노의 중심광장인 치스테르나 광장에 도착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있는 곳으로 가보면 산 지미냐노의 대표적인 젤라테리아 돈도리(Dondoli)가 있다. 가게의 정식명칭은 젤라테리아의 마스터인 세르지오 돈도리(Sergio Dondoli)의 이름을 딴 ‘돈도리’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광장의 젤라또’라는 뜻인 ‘Gelateria di Piazza’라고 불린다.
‘광장의 젤라또’라는 별칭답게 치스테르나 광장에 도착하면 온통 젤라또를 먹는 사람들 뿐이다. 젤라테리아 앞에서는 마스터 세르지오 돈도리씨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이 젤라테리아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World Gelato Campionship’에서 우승을 했으며 젤라또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수상과 활발한 매체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곳이 특별한 이유는 일반적인 젤라또와 달리 다양한 맛을 자체 개발했기 때문이다. 수 십 가지가 넘는 수많은 맛 중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순간 쉴새없이 밀려오는 사람들에게 순서를 빼앗기기 십상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맛이 가장 유명하고 맛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전부!”라며 강한 자부심을 보여주기 때문에 줄 서있는 다른 여행자의 눈총을 받고 싶지 않다면 철저한 사전 조사와 신속한 선택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맛은 사프란과 견과류를 넣은 크림 크레마 디 산타 피타, 자몽과 스파클링 와인을 섞은 핑크색의 참펠모, 아로마 허브크림의 돌체아마로 등이 있다. 그러나 몇몇의 맛은 굉장히 독특하기 때문에 ‘안전한 맛’을 원한다면 시칠리아 산의 피스타치오나 베네수엘라산 코코아로 만든 초콜릿 맛을 추천한다.
마을에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산 지미냐노의 상점들은 하나, 둘 문을 닫는다. 그리고 다시 과거로 돌아갈 준비를 하듯 마을에는 고요한 침묵이 시작된다. ‘과거'에는 권력의 상징인 ‘탑’의 도시였지만 이제는 우뚝 솟은 탑조차도 아름답게 보이는 감성적인 도시가 되었다.
‘중세 유럽을 가장 잘 보존한 도시’ ‘포도밭과 올리브 밭으로 둘러싸인 동화 같은 도시’ ‘세계가 인정한 맛있는 젤라또가 있는 달콤한 도시’ 등 산 지미냐노를 표현하는 낭만적인 수식어는 끝이 없다. 올 여름 연인과 함께 ‘작고 아름다운 탑의 마을’ 산 지미냐노로 여행을 떠나 보자.
<박혜리 여행칼럼리스트>
박혜리 여행칼럼리스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