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 조별리그 1차전…팀 분위기 열의로 타올라
험난한 2회 연속 원정 16강…홍 감독 전술완성도 높여 총공세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지난 10일 마지막 평가전인 가나전에서 0-4의 충격적인 패배를 안았던 홍명보호가 1주일 만에 반전의 역사를 쓰면서 놀란 대한민국의 가슴을 축제분위기로바꾸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러시아전 1차전이 무승부로 끝나면서 16강 관문에 도달하기까지는 필승전략이 필요하다.
홍명보호의 조별리그 필승전략과 16강 진출을 위한 경우의 수를 따져본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지난 18일(한국시간) 브라질 쿠이아바의 판타나무 아레나에서 열린 H조 조별리그 러시아와의 1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부진 우려를 날려버렸다. 이날 한국은 경기 초반부터 주도권을 가져가며 경기 흐름을 이끌었다. 중원에서는 기 싸움까지 벌였고 전반 30분 기성용이 적극적인 태클을 시도해 경고를 받기도 했다.
무실점으로 전반을 마친 한국은 후반 들어 경기 내내 체력 한계와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인 박주영을 과감히 빼고 이근호를 전격 투입시키면서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이에 이근호는 결정적 선제골을 뽑아내며 16강 진출의 희망을 살렸다. 이근호는 후반 23분 아크 정면에서 과감한 오른발 슈팅을 날렸고 공은 이고르 아킨페프 골키퍼의 손에 걸렸지만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기쁨도 잠시 후반 28분 오른쪽에서 연결된 러시아의 크로스가 골문 앞 혼전 상황을 만들었고 교체 투입된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가 골로 연결하면서 한국은 승리를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결국 두 팀은 공방전을 벌였지만 무승부로 1차전을 마무리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홍 감독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줬다. 비록 승리하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결과에 만족한다”며 “가나와의 평가전 패배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러시아전에 포커스를 맞춰 전술과 컨디션을 맞췄다. 준비한 대로 선수들이 잘 해줬다”고 밝혔다.
또 이근호의 투입에 대해 “러시아 수비수들이 체력적인 문제를 보여 중앙을 뚫기 위해 투입했다”며 “이근호가 골을 넣고 충분히 제 역할을 잘 해줬다”고 설명했다.
AFP 통신은 “홍명보 감독이 경기 흐름을 전환하기 위해 박주영 대신에 이근호를 투입한 전술이 정확하게 적중했다"고 홍명보 감독의 용병술을 높이 평가했다.
영국 가디언은 대표팀의 평가전 부진에 대해 “월드컵을 향한 정교한 계략 중 일부에 불과했다”며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의 선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보도했다.
평가전 쓴 약 반전의 밑거름
아쉬운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러시아전을 통해 한국은 경기 결과와 내용 모두 합격점을 받으면서 선수들 사이에서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침울했던 분위기는 다시 활력으로 되살아났다.
특히 이번 반전의 계기는 미국 마이애미와 브라질 입성 후 베이스캠프인 포스두이구아스에서 실사한 집중훈련의 결과로 평가받고 있다.
홍 감독은 브라질 입성 후 진행한 수차례 비공개 훈련에서 수비 조직력 훈련을 집중 연마했고 러시아를 대비해 공격수부터 강하게 압박하는 조직적인 수비 훈련, 공격 전개 훈련을 통해 밀도 있는 훈련으로 전술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또 선수들 개개인의 컨디션에 맞춰 효율적으로 관리한 피지컬 훈련도 효과를 봤다. 이케다 세이코 피지컬 코치의 훈련 프로그램은 본선에 와서 효력을 발휘해 러시아전에서 선수들의 몸놀림이 한결 가볍고 활발했다.
여기에 선수들이 평가전 부진을 계기로 다시 하나로 뭉친 것도 반전의 밑거름이 됐다.
한국은 귀중한 승점 1점을 획득해 16강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지만 아직 16강까지는 갈 길이 멀다.
우선 한국은 안정적인 16강 진출을 위해 알제리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한국이 16강에 진출하기 위한 최상의 조건은 벨기에가 2승을 확보해 조 1위, 한국이 1승2무(승점5점)으로 조2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러시아·알제리전 승부와 관계없이 16강을 확정지을 수 있다. 다만 러시아가 알제리와 벨기에를 모두 물리칠 경우 한국은 16강 진출이 힘들어진다.
반면 한국이 알제리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거나 패할 경우 경우의 수는 복잡해진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반드시 벨기에를 잡아야 16강 진출에 숨통을 틔울 수 있다.
한국이 알제리전과 벨기에전 모두 무승부를 기록하면 러시아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모두 무승부를 기록해야만 골득실 차로 16강 진출을 판가름할 수 있다.
또 알제리전에서 패할 경우에는 16강 진출을 위해 벨기에를 무조건 이겨야 실낱같은 희망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벨기에가 H조 최강이라는 점에서 한국이 벨기에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란 현실적으로 힘겨워 보인다. 벨기에는 이번 대회 우승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어 한국의 벨기에전 목표는 무승부가 최상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16강 진출은 알제리전으로 판가름 나게 됐다.
한국·알제리 총공세 난타전
이미 벨기에를 상대로 1패를 당한 아프리카 강호 알제리 역시 벼랑 끝에서 탈출하기 위해 한국을 1승 제물로 삼아야 한다. 이에 양팀은 총공세를 펼쳤다.
아프리카 축구를 대표하는 알제리는 FIFA랭킹 22위로 한국보다 높다. 하지만 조별리그 1차전에서 나타난 전력을 볼 때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알제리는 1차전에서 벨기에를 상대로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은 뒤 후반 중반까지 리드를 지켰다. 그러나 벨기에에 내리 2골을 허용하면서 1-2 역전패를 당했다.
1차전에서 드러난 알제리 수비의 약점은 제공권이었다. 알제리는 후반 25분 벨기에의 194cm 장신 미드필더 마루앙 펠라이니에게 헤딩골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단순한 형태의 크로스에 이은 헤딩슛이었지만 이를 막지 못했다.
또 후반 들어 알제리는 체력 저하가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했다. 알제리는 후반 중반부터 급격히 둔해졌고 일부 선수들은 다리에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기도 했다.
바히드 할릴호지치 알제리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이 후반전에 페이스가 뚝 떨어졌다”며 체력 저하를 인정했다.
이처럼 빈 곳이 많은 알제리지만 기본적으로 빠른 역습이 매서운 팀이었다. 특히 ‘알제리의 지단’이라고 불리는 소피안 페굴리의 개인기는 세계 정상급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이와 함께 이슬람 슬리마니와 야친 브라히미도 눈여겨볼 대상이었다. 슬리마니는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팀 내 가장 많은 5골을 기록했고 브라히미는 ‘알제리의 메시’라고 불릴 정도로 개인기가 뛰어났다.
이에 대해 홍 감독은 알제리 격파의 핵심 과제로 수비 뒷공간 공략을 내세웠다. 또 기동력과 개인기가 뛰어난 알제리 선수들에게 역습 기회를 줄 수 있는 패스 미스나 드리블 실패는 금기 사항이었다.
축구대표팀은 짧은 패스를 통해 점유율을 높이고 기성용의 발끝에서 시작되는 ‘컴퓨터 패스’를 바탕으로 좌우 날개의 활발한 측면 뒷공간 공략을 통해 승리의 해법을 찾았다.
이와 더불어 홍명보호의 ‘톰과 제리’로 통하는 김신욱과 손흥민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197cm의 장신인 김신욱과 손흥민의 강점은 알제리의 약점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앞서 알제리는 1차전에서 장신 공격수 방어에 힘겨운 모습을 보이면서 김신욱이 교체 투입될 경우 히든 카드 역할을 충분히 할 것으로 예상됐다.
여기에 손흥민은 러시아전에서 폭발적인 돌파와 과감한 중거리 슛으로 대표팀의 공격을 주도했고 그간 약점으로 지적된 수비 가담과 동료와의 연계플레이도 훌륭하게 소화해내면서 공격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그는 러시아전에서 MOM(Man of the Match·경기 최우수 선수)에 뽑힐 정도로 활약을 펼쳤다.
이 때문에 손흥민의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가 김신욱의 헤딩골로 연결된다면 알제리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필승 전략이었다.
이와 함께 총공세를 퍼부은 양 팀의 힘의 균형이 용병술에 따라 흔들려 홍 감독의 신의 한수도 관전포인트였다. 이미 홍 감독은 러시아전에서 후반 선수 교체로 톡톡히 재미를 보면서 외신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홍명보 징크스 16강 청신호
이런 가운데 알제리가 2차전을 앞두고 불협화음이 일면서 홍명보호에 호재가 될지 여부도 알제리전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였다.
알제리 언론들은 알제리가 벨기에전에 패하자 한 목소리로 할릴호지치 감독을 패인으로 꼽았다. 이들은 지나친 수비 위주 경기 운용과 감독의 용병술이 패배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할릴호지치 감독은 벨기에전 패배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에겐 아자르(벨기에) 같은 선수가 없다”고 말해 패배 원인을 선수들에게 돌려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알제리팀의 갈등은 월드컵 전부터 시작됐다. 알제리 축구협회는 월드컵 이후까지 계약 연장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할릴호지치 감독은 이를 거부하고 터키 클럽팀을 맡기로 하면서 내분이 일었다. 알제리 언론들은 감독을 배신자라고 부르며 대표팀과 선수에게 애정이 없다고 비난했다.
팀내 불협화음은 결국 경기결과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카메룬은 지난 19일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동료들끼리 몸싸움을 벌이는 등 졸전을 펼쳐 결국 일찌감치 짐을 싸야했다.
반면 항간엔 홍 감독이 그간 맡아서 좋은 결과를 얻었던 큰 경기에서 첫 경기 승리를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했다며 홍 감독의 징크스가 좋은 징조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실제 홍 감독이 이끌었던 대표팀은 2009년 이집트에서 열린 U-20 월드컵 첫 경기인 카메룬 전에서 0-2로 패했지만 8강에 진출했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첫 경기인 북한전에서 0-1로 졌으나 3위의 성과를 달성했다.
또 2012년 런던 올림픽 본선 첫 경기인 멕시코 전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접전 끝에 영국을 꺾고 4강에 진출해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더욱이 축구대표팀이 러시아전을 치르면서 팀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어 16강 진출에 긍정신호를 보내고 있다. 선수들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느낌표로 바뀌면서 승점 1점 이상의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지동원은 알제리전을 앞두고 “선수들이 러시아전 이후 자신감을 회복하고 편안한 기분으로 조별리그를 준비하는 것 같다”고 대표팀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제 한국이 남아공월드컵에 이어 원정 16강을 달성할 수 있을지 판가름하기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홍명보호가 러시아전을 통해 반전을 이룬 것처럼 조별리그에서 최상의 결과로 16강에 진출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축구는 함께 즐기는 경기인 만큼 비록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더라도 브라질 본선까지 압박과 훈련을 견뎌낸 대한민국 태극 전사들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부디 홍명보호가 한국 축구가 목표했던 원정 8강 진출할 수 있도록 매 경기 후회 없는 경기를 치르길 기대해 본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