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척결에 발목 잡힌 진짜 ‘피아들’
관피아척결에 발목 잡힌 진짜 ‘피아들’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4-06-23 10:54
  • 승인 2014.06.23 10:54
  • 호수 1051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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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문 인사 철퇴에 인사 병목현상 왔다

회전문 인사 철퇴 맞자 인사 병목현상 심화
관피아 척결…퇴직공직자 취업제한 대폭 강화

[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집안에 결혼 못한 형과 동생이 있다. 그런데 동생에게 “장가 안가냐”고 집안 어른이 묻자 그는 “헌차가 있어서요”라고 답한다. 익히 들어보았을 법한 이야기다. 최근 이 이야기가 관가에서도 들린다. ‘~피아 정국’에 발목 잡혀 고위공직자의 ‘회전문 인사’가 닫히자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밥그릇 싸움이 한창이다. 때문에 파열음도 흘러나온다. 그 실태를 알아본다.

청에서 오래 일한 한 관료는 승진 연한이 1년도 채 남지 않는 상황에서 관피아 덫에 걸려 자리를 지키는 선배 때문에 정작 본인이 짐을 싸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인사 병목현상’ 때문이다. 다른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국토부 출신 한 인사는 최근 산하기관의 수장으로 이직할 채비를 모두 갖춘 상태였다. 그러나 노조 반발에 부딪쳐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의 주장은 “낙하산 반대”였다. 이 인사는 낙하산인사라기보다 전문성을 갖춘 인재였지만 ‘관피아 정국’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현재는 집에 가기 위한 채비를 서둘러야 할 판이다.

충북도 출자회사인 충북개발공사 또한 지난 11일부터 공사 사장과 상임이사, 비상임 감사 후보자를 공개모집하고 있다. 한 도청 간부 공무원이 이곳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가 있지만 최근 분위기상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부 국장 출신 관료의 포스코 취업 승인도 관피아 논란에 불을 지폈다.

안전행정부는 지난달 30일 개최된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퇴직 공무원 15명의 취업 심사를 통해 포스코 취업 예정자인 A 전 산업부 국장 등 12명의 취업을 승인했다고 3일 밝혔다.

공직자윤리위원회는 특히 A 전 국장의 퇴직 전 업무와 포스코에서 맡을 예정인 직위 및 직무관련성을 검토한 결과 취업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참석자 8명의 과반이 되지 않아 취업을 승인했다. 이는 A 전 국장의 퇴직 전 부서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다는 점이 주효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지자 포스코 측은 A 전 국장의 채용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밝혀 각박해진 재취업 전선을 방증하고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지방공기업의 경영·이사진을 유형별로 분석한 자료에도 기관장 1순위는 역시 관피아였다.

28개 기관장 중 18명이 해당 지자체 관료 출신으로 ‘회전문 인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낙하산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정부나 공기업 출신도 6명이나 됐다. 이밖에 지자체장 측근, 현직 단체장의 선거를 도와준 ‘서포터즈’, 정치권에 기웃거린 정피아(정치인+마피아)도 요직을 맡았는데 최근 분위기상 이 자리로의 이직이 어려울 전망이다.

때문에 승진연한을 다 채운 실·과장들이 역풍을 맞고 있다. 보이지 않는 내부 다툼도 벌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 관료집단의 회식장소에서 후배가 농담조로 던진 “이젠 쉬시죠?”라는 말에 격분한 선배와의 주먹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관료사회가 빡빡해졌다는 반증이다.

그동안은 악습처럼 고위관료 중 일부가 민간 기업이나 단체로 이직을 하고 그 자리를 후임 기수가 채웠다면 이번엔 ‘관피아 정국’에 발목 잡혀 공백이 생기지 않아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관유착 고리 끊겠다”

박 대통령이 ‘관피아’ 척결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것도 이들의 발목잡기에 일조했다. 박 대통령은 “민관유착은 비단 해운분야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수십 년 동안 쌓이고 지속되어 온 고질적 병폐"라고 규정한 뒤 강도 높은 개혁으로 민관유착 고리를 끊어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전감독 업무, 이권 개입소지가 많은 인허가 규제 업무, 조달 업무와 직결되는 공직유관단체 기관장과 감사직에는 공무원 출신을 임명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현재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 규정을 대폭 강화해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 대상기관 수를 3배 이상 확대키로 했다.

취업제한 기간도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고위공무원의 경우 아예 퇴직 후 3년 동안은 소속 기관의 업무와 관련된 어떠한 업무도 재취업을 통해 하지 못하도록 고치겠다는 계획이다. 이들이 퇴직 후 10년 동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여부도 공개하는 ‘취업이력공시제도’ 도입도 추진한다.

물론 관피아라고 해서 무조건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될 일이다. 업무 능력이 뛰어난 관료도 얼마든지 있다. 이들이 현직 때 쌓은 폭넓은 경험과 식견은 시정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실력과는 관계없이 인맥에 의해 임명된 인물들이 조직 문화를 저해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선배의 자리 지킴이 속 쓰리다”는 한 관료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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