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목숨 값 받겠다”… 피보다 진한 돈
“가족 목숨 값 받겠다”… 피보다 진한 돈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4-06-23 10:43
  • 승인 2014.06.23 10:43
  • 호수 1051
  • 1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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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앞에 무너지는 가족愛

‘세월호·경주리조트·천안함’ 십수 년 연락 끊은 얌체 부모
“부양하지 않고 돌아가시면 돈만 챙기겠다는 의도 소름 돋아”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지난 4월 세월호 참사로 숨진 학생의 아버지가 학생 앞으로 가입된 사망보험금 5000만 원의 절반인 2500만 원을 수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아버지는 12년 전 이혼한 뒤 가정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고 숨진 학생과 연락도 끊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십수 년 동안 연락을 끊은 부모가 나타나 ‘내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보험금을 가져가는 ‘염치없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부모와 의절한 자녀가 부모 앞으로 보험을 가입한 뒤 사망하면 보험금만 홀라당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돈 앞에 가족愛가 무너진 것이다.

‘생명보험은 각종 우연한 사고에 대비해 경제적 손실을 보전할 목적으로 부담금(보험료)을 납부하고 우연한 사고 발생 시 약정된 금액(보험금)을 지급받는 준비수단입니다’

생명보험은 갑작스런 질병이나 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 남아있는 가족을 위해 가입하는 보험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보험의 의미가 변질되고 있다. 오래전 연락이 끊긴 가족이 사망 보험금만 받아가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형 참사 때 등장
염치없는 부모

지난 4월 22일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어여쁜 딸의 발인을 마치고 돌아온 A씨는 12년 전 이혼한 전 남편이 딸의 사망보험금의 절반을 수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전 남편은 숨진 딸의 발인 다음날 병원에서 시체검안서 10부를 떼어가기도 했다.

혹시나 사고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매달 A씨가 6만 원씩 넣었던 보험금을 이혼 후 가정에 도움을 주지 않았던 전 남편이 가져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A씨는 재빨리 단원고에서 가입한 여행자보험사에 연락해 전남편에게 보험금 지급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이혼 후 십수 년간 연락이 없던 부모가 사고 발생 후 보험금만 수령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로 당시 신입생 환영회 행사를 진행하던 부산외대 학생 9명과 이벤트업체 직원 1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고 때도 사망한 학생 윤모(19·여)양의 친모 김모씨가 나타나 보상금의 절반을 요구했다. 김씨는 12년 전 윤양이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 이혼한 뒤 연락이 없었다. 그러나 김씨는 희생자 합동 영결식이 열린 당일 웹 사이트에 보상금 지급 여부에 대해 묻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법원에 윤양의 사망 보험금 5억9000만 원 중 절반인 2억9500만 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또 모 방송에서 김씨는 큰 딸 윤씨와의 전화통화에서 “엄마는 내 권리를 찾는 거야”, “목숨 값이니까 잘 쓸 거야”, “(양육과는)상관없어 엄마가 낳았잖아” 등의 발언으로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고에서도 각각 27년, 22년 만에 나타난 친모, 친부가 보험금을 가져가 논란이 있었다.

부모 생명보험 가입 연락 없이 보험료 납부

이처럼 돈 앞에 ‘염치없는’ 가족은 이혼한 부모만이 아니다. 자녀들 또한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의절한 부모 앞으로 생명보험에 가입한 뒤 부모 사망 후 보험금만 받아 챙기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경기 수원시에 살고 있는 김모(43·여)씨는 몇 년 전 동생이 부모님 앞으로 생명보험을 가입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씨의 동생은 이미 15년 전 가족과 인연을 끊고 지내고 있었다. 부모와 의절한 동생이 부모님 앞으로 보험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김씨는 황당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보험에 가입한 시기는 모르지만 부모님과 의절한 이후인 것은 확실하다”면서 “부모님 부양도 하지 않고 찾아뵙지도 않다가 돌아가시면 돈만 받아 챙기겠다는 동생의 의도가 보여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다.

성남시에 거주하는 이모(35·여)씨는 최근 아버지 앞으로 생명보험 가입을 고민 중이다. 이씨는 몇 년 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수억 원의 빚더미에 올랐다. 그러나 이씨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딸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놓고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새 살림을 차렸다. 빚 청산을 위해 노력하자는 이씨의 말에 아버지는 역정을 내기 일쑤였다. 거기에 이씨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이씨는 “아버지의 얼굴을 뵌 지 1년이 넘어간다. 새로 살림을 차린 뒤 내 빚은 물론 어머니도 내팽개치고 있다”며 “최근에는 은행 계좌까지 압류 당했다. 훗날을 위해서라도 아버지 이름으로 보험을 가입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고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 버리고 돈만 챙겨 막을 방법은?

자녀 사망 후 보험금을 노리고 나타나는 얌체 부모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현행법상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막을 방법이 없다. 사망자의 보험금은 배우자, 자녀, 부모 순으로 상속되는데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미혼 성인이나 미성년자는 부모가 상속자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상속 시 자녀 양육 여부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얌체 부모를 바라 볼 수밖에 없다.

이는 보험도 마찬가지다. 보험의 경우는 계약자(보험료 납입)와 피보험자(보험 효력 대상자), 수익자(보험금 청구자)가 다르기 때문에 계약자만 확인되면 가입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실제로 자기 앞으로 보험이 몇 개가 가입돼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이처럼 돈 앞에서 무너지는 가정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물질만능주의가 더 이상 팽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jhooks@ilyoseoul.co.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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