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남녀 동거열풍 확산
직장인 남녀 동거열풍 확산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4-06-23 10:32
  • 승인 2014.06.23 10:32
  • 호수 1051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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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값 아낄 수 있다면 동거쯤이야

男 외로움 해결·女 치안 걱정 “같이 살 사람 구해요”
생활비 ↓, 부족한 부분 채우면서 연애도 하고 “1석3조”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전세가격은 계속 상승하고, 월세는 부담스러운 직장인들이 ‘동거’로 눈을 돌렸다. 월세와 생활비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동거는 유리지갑을 가진 직장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또 혼자 사는 남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이성 룸메이트를 구하면 연애도 할 수 있어 1석3조의 효과를 얻는다. 서로 모르는 남녀가 만나 도움도 받고 연애도 하며 즐기다 서로 ‘쿨~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어지기 때문에 미혼 직장인 남녀 사이에서 동거는 인기를 얻으며 확산되고 있다.

“아현역 5분 거리 원룸에서 함께 지낼 분 구합니다. 공과금 포함해 한 달에 25만 원 부담하시면 됩니다. 저는 태권도 유단자에 깔끔한 성격인 31살 남성입니다.”

룸메이트를 구하는 웹 사이트에는 하루 평균 10건의 룸메이트 모집 글이 올라온다. 지역별로 게시판이 나뉘어 있어 원하는 지역의 룸메이트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은 서울이다.

비싼 방세와 공과금을 절약하기 위해 룸메이트를 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리지갑을 가진 직장인이 혼자 부담하기에는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남남, 여여를 구하는 글이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성보다는 이성을 원하는 공고 글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성이 함께 거주할 때의 장점이 부각된 덕분이다.

예전부터 혼자 사는 남성이 함께 지낼 여성을 구한다는 내용의 모집글은 자주 올라왔지만 여성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낯선 남성과의 동거는 위험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혼자 사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남성과의 동거가 인기를 얻고 있다.

“낯선 사람 발소리 전혀 무섭지 않아요”

자취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치안이다. 집 주변에 이상한 사람은 없는지, 대로변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 주변에 가로등과 CCTV가 설치돼 있는지 등이 집을 구할 때 가장 먼저 고려되는 대상이다. 그러나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집 밖으로 낯선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긴장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낯선 상대가 자신의 집 문을 두들긴다면 떨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든든하게 지켜 줄 남성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직장인 이모(31·여)씨는 1년 가까이 왕복 4시간을 출퇴근하다 지쳐서 결국 지난해 12월 회사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회사랑 가까운 곳으로 집을 얻고 싶었지만 회사 인근은 번화가에 근접해 있어 집값이 부담스러웠다.

전세가는 지금까지 이씨가 받은 월급을 다 모아도 부족했다. 결국 회사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곳에서 8평짜리 원룸을 구했다. 처음에 이씨는 출퇴근 압박도 줄어들고, 혼자서 만끽하는 자유에 즐거워했지만 점점 밤마다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지난 1월 신년회 후 늦은 시간에 퇴근하던 이씨는 자신을 뒤따라오는 남성을 만났다. 술 냄새를 풍기던 낯선 남성은 이씨의 집 앞까지 쫓아왔고 이씨가 집에 들어간 뒤에도 한동안 주변을 서성거리며 사라지지 않았다. 그 뒤 가끔씩 밤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자 이씨의 두려움은 커졌다.

이사를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 웹사이트를 보던 중 ‘든든한 보디가드가 되겠다’며 같이 살 여성을 구한다는 남성의 글을 읽게 됐다.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나 걱정하던 이씨는 112 번호를 누른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고 남성의 집을 찾았다.

그러나 상대방 남성은 생각과는 다르게 매너가 좋은 사람이었다. 5번의 만남 끝에 이씨는 남성과의 동거를 결정했다. 이씨는 “나쁜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래 고민했다”면서도 “그러나 여러 번의 만남 끝에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섰고, 혼자서 살다가 또 이상한 사람을 만날까봐 걱정이 돼서 동거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함께 산 지 5개월이 넘었는데 굉장히 잘 지내고 있다”면서 “늦으면 마중도 나오고 서로 친구처럼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기저기 향긋한 내음 “사람 사는 냄새”

직장인 김모씨(32)는 대학시절부터 혼자서 지내왔다.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김씨는 20세 때부터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지금은 간단한 요리는 눈감고도 만드는 자취 경력 10년차다. 그러나 김씨는 어느 순간부터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어졌다.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혼자 사는 것이 싫었다. 고민 끝에 룸메이트를 들이기로 결정했다. 낯선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은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외로움을 없애고 싶었다.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글을 보던 김씨는 이성이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겁 없는 여자들’이라고 생각했다. 김씨는 룸메이트 글을 올리고 이틀 만에 자신보다 4살 어린 동성 룸메이트를 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동거기간은 길지 못했다. 깔끔한 성격의 김씨에 반해 새로 들어온 룸메이트는 정리·정돈과 거리가 멀었다. 결국 참지 못한 김씨는 3달 만에 룸메이트를 내보냈다.

그러던 중 주변에서 여성과 같이 동거한다는 남성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친구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지낸다는 말을 들은 김씨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이성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3일 만에 연락이 왔다. 그 사람은 바로 이씨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룸메이트가 됐고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김씨는 “혼자 살 때는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들이 채워지고 있다”면서 “집에서 밥 냄새, 화장품 냄새, 섬유 유연제 냄새 등이 날 때면 사람 사는 냄새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쿨~하게 헤어지는 직장인 엔조이 관계

그러나 성인 남녀의 동거생활이다 보니 김씨와 이씨처럼 마냥 건전할 수는 없다. 오히려 서로 즐길 목적으로 동거를 시작하는 남녀도 적지 않다. 이 경우는 건전 관계보다 더 쉽게 진전된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서로 마음만 맞으면 동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과의 동거는 위험한 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더 편하다”고 설명한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간섭하지 않고, 진지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쉽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두 사람 모두 어엿한 직장인이기 때문에 해코지를 하지 못한다. 혹시라도 위협적인 행동을 한다면 상대방이 자신의 회사에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우연한 기회에 이성과의 동거를 시작했다. 기존에 살던 집에서 계약 종료가 다가와 발을 동동 구르던 차에 “동거할 여성을 구한다”는 글이 A씨의 눈에 들어왔다. ‘방세·생활비 일체 부담 없음’이라는 매력적인 조건도 제시됐다. 집 주인을 만나보니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도 여러 차례 원나잇 관계를 가진 적 있었던 A씨는 마음 편히 동거를 시작했다. 오히려 부담이 적었다. A씨는 “원나잇은 몰카(몰래카메라)에 찍힐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몰카에 찍힐 일이 없기 때문에 안심된다”고 말했다. 상대방의 이름과 회사도 알고 있기 때문에 위험한 일은 서로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또 서로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시작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도 쿨하다. 한 사람이 집을 옮기게 되면 미련 없이 서로 뒤돌아선다. ‘즐기기 위해 만난 사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A씨는 “지금까지 3명과 동거생활을 했다”면서 “각자의 매력이 있고 추억이 있지만 서로 헤어질 때 시끄러운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헤어지기 쉬운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두 사람의 동거 생활이 ‘비밀’이기 때문이다. 본인들은 떳떳하다고 해도 우리 사회에서 ‘동거’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은 철저하게 비밀로 진행된다. 가족은 물론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결혼적령기라는 점에서 서로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이다.

서로 모르는 남과 여 갈등에서 폭력으로

그러나 직장인 남녀의 동거생활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좋은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갈등 없이 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남성과 여성의 힘의 차이에 의해 한쪽의 일방적인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 3월 회사 근처에서 남성과 동거를 하던 B(29·여)씨는 동거남과 사소한 시비로 인해 말다툼을 벌이던 중 주먹으로 얼굴을 얻어맞았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된 폭력이었다. 놀란 B씨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지만 주변에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합의하고 넘어갔다.

또 물건을 훔치거나 방세를 내지 않고 도망가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12일 어느 대형 포털 사이트에 어떤 누리꾼이 “절대 모르는 사람과 한 집에서 지내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렸다. 아이디 ‘포로롱’은 “룸메이트를 구하던 중 예쁜 여자가 찾아와서 바로 동의했다”면서 “그러나 어느 순간 내 물건이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내 아이패드를 가지고 도망갔다. 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 여자가 훔쳤다는 증거가 없다고 했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애당초에 모르는 X을 들이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경우 상대방이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가면 찾기가 힘들다”면서 “동거를 시작한다면 상대방 신원부터 확인하고 열쇠가 달린 서랍 등을 이용해 귀중품을 따로 보관하는 등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jhooks@ilyoseoul.co.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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