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철회 하기에도 부담 스럽다”… 후폭풍 걱정
귀국한 박 대통령 순방 보따리 문창극 없다?!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국민 청문회는 이미 끝났다”
국회 인사청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의 일성이다. 야당은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무용론’을 제기하면서 자진사퇴나 지명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문 후보에 대해서 야당에서 문제삼고 있는 것은 역사인식이다. ‘친일 식민사관’과 ‘위안부 문제로 일본에 사과 요구는 불필요하다’는 발언이 알려지면서 사퇴 여론이 비등해졌다.
이와 관련해 문 후보자는 ‘악의적 편집으로 특정 언론이 왜곡하고 있다’, ‘종교인으로서 교회 안에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위안부 발언에 대해서도 문 후보자는 ‘반윤리적 범죄행위다’, ‘일본의 사과는 필요하다’면서 적극 방어했다. 나아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안중근 의사와 안창호 선생이라며 “왜 내가 친일이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국민 민심은 ‘사퇴 여론’이 비등해진 뒤라 뒷북 해명이라고 질타를 하고 있다.
文 자진사퇴→철회→지명철회→철회?
급기야 청와대에서는 “중앙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총리 임명동의안에 대해 재가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지난 주에 제출해야 할 청문자료를 국회에 보내지 않았다. 또한 새누리당 7.14 전당대회에서 유력한 당권주자이자 친박 주류인 서청원 의원이 재차 나서 사퇴를 종용했다. 서 의원은 지난 19일 당권 출마 선언을 하면서 “스스로 물러나시는 게 국민과 국가를 위해 좋지 않나. 그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완곡하게 자진 사퇴를 종용했다.
또 다른 유력 당권 주자인 친박 비주류 김무성 의원 역시 같은 날 기존 ‘청문회를 열어 소명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입장에서 선회해 “문 총리 후보자가 적극적인 해명을 한 뒤 국민 여론이 따라주지 않으면 대통령과 당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본인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자진사퇴 쪽에 힘을 실었다.
청와대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순방중이라는 것을 빌미로 ‘총리 임명동의안에 대한 대통령 재가를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혀 자진 사퇴쪽으로 가닥을 잡는 듯 했고 급기야 지난 22일에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이 여의도 내에서 그럴 듯하게 퍼졌다. 그러나 집권여당과 청와대의 사퇴기류에도 불구하고 문 후보자는 청문회를 통해 명예회복에 나서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 후보자는 “청문회를 대비해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일방적으로 보도된 기사에 대해 답답했다”, “사퇴 압박 그런 얘기 들은 적 없다”면서 “인사청문회에서 제 심정을 솔직하게 알려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급해진 쪽은 박 대통령과 청와대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총리 및 장관 임명 직후 중앙 아시아 3개국 순방을 떠나 주말에 돌아왔다. 국내 정치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도 박 대통령이 순방 일정을 소화한 것은 세일즈 외교의 중요성 때문이고 실제적으로 적잖은 성과를 내고 돌아왔다. 박 대통령은 6월16일부터 5박6일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자원 외교 등을 통한 경제협력 확대 차원에서 순방길에 올랐다.
문창극 때문에…‘빛 바랜’ 순방길 보따리
박 대통령은 카리모프 우즈벡 대통령과 정상회담자리에서 △ 수르길 가스전 개발 및 가스화학플랜트 건설 △ 탈리마잔 복합화력발전소 건설 △ 가스액화사업 프로젝트 등 원활한 이행을 위한 협력을 약속받았다. 또한 △ 칸딤 가스전 개발 및 가스처리공장 건설 △ 태양광 발전 협력 등 신규협력 사업 추진도 함께 협력하기로 했다.
이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으로 전력을 20년간 19조어치를 판매하기로 하는 등 세일즈 외교에 성과를 냈다. 삼성물산이 건설하는 발하쉬 석탄화력발전소가 향후 20년간 카자흐스탄에 188억 달러 규모의 전력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연간 9500억 원가량의 수익이 20년간 들어오는 셈”이라고 자평했다. 또한 아티라우 석유화학단지, 잠빌 해상고아구 등 기존에 합의한 초대형 프로젝트도 조속히 이행하기로 했다. 특히 35억 달러 상당의 텡기스 유전 확장 프로젝트, 쉼켄트 윤활기유 생산설비 건설(9억 달러) 등 에너지와 플랜트 건설 부문도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순방길에서 얻은 외교적 성과물은 상당한 편이다. 청와대로선 순방을 마치고 귀국전에 문 후보자만 ‘자진 사퇴’해 준다면 국민적 관심은 박 대통령의 자원 외교의 성과에 집중되고 국정 지지도 역시 올라가는 계기로 삼겠다는 셈법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문 후보자가 ‘자진사퇴 할 뜻이 없다’는 점이 확인된 이상 국민적 관심은 세일즈 외교 업적보다는 문 후보자의 거취에 이목이 쏠렸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지명철회’를 하기에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청와대로선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일단 ‘지명철회’를 할 경우 연이은 총리 인사 참사로 인한 박 대통령 집권 2기는 ‘조기 레임덕’에 빠질 공산이 높다. 여기에 1~2명 장관마저 낙마할 경우 국정을 운영할 동력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으로선 인사에 대한 책임론에 부딪힐 경우 자신의 오른팔이자 청와대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기춘 실장을 내쳐야 하는 위험부담도 감수해야 할 판이다. 청와대로선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가 그나마 최상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청와대가 ‘문창극의 덫에 걸렸다’고 하소연이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아울러 ‘식물인간’이 된 채 총리 지명까지 철회된 언론인 출신에 자존심 강한 문 후보자가 ‘작심’하고 청와대를 겨냥해 독설을 퍼부을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문창극, 여, “양날의 칼”, 야 “꽃놀이 패”
청와대와 마찬가지로 7.14 전당대회와 7.30 재보궐 선거를 준비하고 여당 역시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여당이 우려하는 것은 문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평소 고집이 세고 언론인 특유의 곤조(일본어(根性)에서 온 말로, 좋은 심성보다는 집요하고 고약한 성질을 말할 때 주로 씀)가 있는 데다 강한 소신과 종교적 신념까지 갖춘 문 후보자가 청문회장에서 ‘폭탄 발언’이라도 할 경우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야당이 ‘청문회를 개최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도 내심 청문회 개최를 반기는 이유다. 결국 야당의 입장에서는 문 후보자의 청문회는 ‘꽃놀이 패’이지만 집권 여당으로선 ‘양날의 칼’인 셈이다. 결국 청와대와 여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에 빠진 사이 문 후보의 입장에 따라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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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