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네티즌, “걸리면 다 파헤친다” 만신창이가 될때까지…
잔인한 네티즌, “걸리면 다 파헤친다” 만신창이가 될때까지…
  • 이수향 
  • 입력 2005-06-22 09:00
  • 승인 2005.06.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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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에 이뤄지던 ‘마녀사냥’이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일어난 몇몇 사건만 봐도 ‘사이버 인민재판’은 분명 도를 넘고 있다. 네티즌에게 밉보이면 여차없이 ‘죽는다’는 말이 나돌만큼 네티즌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비난의 대상으로 찍히면 사회에서 매장당하기는 여반장인 현실이 됐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인터넷의 구조상 당사자는 반론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엄청난 사이버 테러에 시달리게 된다. 문제는 그동안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던 네티즌들의 ‘재판’이 일반인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똥녀에 대한 공격”

지난주 인터넷은 온통 ‘개똥녀’이야기로 들썩거렸다. ‘개똥녀’라 명명된 한 20대 여성은 순식간에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수위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개똥녀’ 파문은 지난 6일 애완견을 데리고 지하철을 탄 한 20대 여성 A씨가 객실에 애완견의 배설물을 방치한 채 그냥 내렸다는 한 시민의 제보로 시작됐다. A씨의 행동을 지켜본 승객 중 한명이 ‘공중 에티켓를 지키자’는 취지하에 디지털카메라로 당시 상황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그러나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특히 A씨가 배설물을 치우라는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섞인 욕설을 내던진 채 도망치듯 내려버리고, 결국 한 노인이 대신 배설물을 처리하는 사진이 설명까지 곁들여져 생생히 전달되자 전국의 네티즌은 ‘개똥녀’의 몰상식한 행동에 분노했다.

여성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그대로 퍼진 것은 순식간. 잠시 후에는 ‘25살 김OO. B대학 휴학중’ 이라는 A씨의 구체적인 신상명세까지 나돌았다. 네티즌들의 폭격은 A씨의 비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비난을 넘어 한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변질됐다. A씨의 외모에 대한 평가는 물론이고 ‘걸레’, ‘쓰레기’, ‘창녀’와 같이 여성으로서는 참기 힘든 모욕적인 욕설뿐 아니라, A씨의 부모와 A씨가 다니는 학교에 대한 비난으로까지 이어졌다. 사건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A씨는 결국 자신의 홈피에 공개 사과문을 띄웠지만 이미 그의 얼굴과 신상은 전국에 공개된 후였다.

“나는 생매장당했다”

한편 14일 오후 ‘개똥녀에 대한 변론’이라는 글을 올린 서미진(19)씨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2년전 호주로 이민을 간 서씨는 이번 ‘개똥녀’사건을 두고 ‘인민재판’이라며 힐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서씨는 도벽이 있다는 소문으로 집단 따돌림을 당한 끝에 결국 고1때 자퇴했다. 중학교때 시작된 소문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까지 서씨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는 것. 당시 서씨는 억울한 누명과 함께 개인 사진 및 신상이 개인 홈피나 블로그에 떠도는 집단적인 테러를 당했다. “반친구들이 퍼트린 소문은 전교에 퍼졌고 타학교에서도 알게 됐다”는 서씨는 “이 일로 나는 완전히 생매장당했으며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동생도 창피해서 학교를 못다니겠다고 울고불고 했을 뿐 아니라 반상회에 다녀온 엄마까지도 소문을 듣고 속상해했다. 오죽하면 온 가족이 이민을 왔겠는가”라며 흥분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 서씨는 “자신의 얼굴과 신상명세까지 낱낱이 유포된 A씨는 수만명의 네티즌들 앞에서 벌거벗은 채 인민재판을 받는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순간의 잘못으로 세상에 얼굴이 낙인찍힌 A씨가 앞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겠느냐”며 우려를 나타냈다.

개인의 애정사까지 인터넷 ‘여론재판’으로 처단

그러나 ‘정의(?)’를 향한 네티즌들의 집단 움직임은 지극히 개인적인 애정사에까지 관여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모두가 ‘수사관’으로 나서는 네티즌의 정보망에 포착된 개인은 여차없이 당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인생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기도 한다.지난 5월 인터넷에는 딸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는 한 어머니의 글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화제를 모았다. 사귀던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버림받고 자살한 딸의 어머니가 올린 사연이었다. 믿었던 남자에게 배신당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어머니의 호소에 네티즌들은 ‘자기 일인양’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자신의 사적인 애정행각을 비롯해 출신학교 및 직장, 핸드폰 번호까지 낱낱이 알려지자 결국 그 남성은 직장에 사표를 낸 채 잠적한 상태다. 결국 그는 ‘변심’했다는 사적인 죄목으로 네티즌에 의해 사회로부터 매장당한 셈이다.

“사이버 재판으로 복수한다?”

네티즌의 담합을 이용해 복수를 선동하고 있는 사례는 또 있다. 지난 5월 31일 인천에서는 모 여고 2학년 유모(17)양이 건물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조사결과 유양은 친구들로부터 도둑 누명을 쓰고 괴로워한 나머지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며칠 뒤 유양의 선배라고 밝힌 C씨가 유양을 도둑으로 몰았다는 7명의 사진 및 신상과 유서전문을 공개함으로써 사건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C씨는 “집단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죽은 OO의 한을 풀어달라”며 “OO에게 누명을 씌워 자살하게 한 7명에게 죄값을 치르게 하자”고 네티즌들을 선동하고 나섰다. 이미 인터넷에는 가해학생 7명의 얼굴과 신상이 나돌고 있는 상태. C씨의 행동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최근 잇따라 터지고 있는 사건과 관련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익명의 사람들까지 끌어들여 사이버 여론재판을 조장하고 있다”며 비판을 가하고 있다. ‘가해자들을 간접적인 ‘살인자’로 몰아 평생 꼬리표를 붙이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아갈 7명의 인권은 어떡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한편 “가해자의 체면이 억울한 마음에 자살한 한 개인의 목숨보다 귀하냐”며 C씨의 행동을 옹호하는 입장에 있는 이들도 다수다. 심지어 이들은 “칼만 들지 않았을뿐 그들은 살인자와 다름없다”, “7명도 죄책감으로 자살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이처럼 네티즌들이 한 개인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는 그야말로 ‘식은죽 먹기’다. 앞으로 네티즌의 담합이 ‘정의 사회의 수호자’가 될지, 한 개인을 생매장시키는 ‘하이에나’로 전락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 “네티즌의 자정노력과 제도적 보완 이뤄져야”

한 평범한 개인이 어떤 행동이나 구설에 휘말려 불특정 다수로부터 테러를 당하는 현실에 대한 우려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네티즌들의 단합은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적절한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전문가들은 “생면부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당하는 사이버테러의 영향은 상상외로 심각하다”며 “개인에 대한 집단적인 인신공격은 결코 사회정의를 위한 정도라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들은 사회 정의의 실현과 약자들의 신문고 역할을 하는 순기능은 살려야 하지만 인민재판식 마녀사냥은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리학자들은 사이버 마녀재판을 심리적 일체감을 얻기 위한 집단행동으로 해석한다. 고려대 심리학과 이만영 교수는 “네티즌들은 가치판단 능력과 상관없이 자신이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일종의 최면상태에 놓이기 쉽다.

따라서 주변에 휩쓸린 나머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경향이 많다”고 말했다. 즉 특정 대상에 대해 집단적인 비난을 하면서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 사회학자들은 단일민족으로 이뤄진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근거로 설명한다. 서울대 사회학과 서이종 교수는 “단일민족이라는 정체성과 집단주의적 문화가 정보기술과 결합하여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네티즌의 자발적인 자정노력과 함께 제도적인 보완이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건국대 사회과학부 김종일 교수는 “비도덕적인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정도를 넘어선 인신공격은 또 다른 인권침해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법률 전문가들 역시 우려를 표하고 있기는 마찬가지. 비록 사실이라할지라도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는 것은 명예훼손 등 민·형사상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 신상캐기에 주력…먹이감 찾는 하이에나

‘정의 수호’를 위한 네티즌의 단결은 일부 기득권과 부유층, 유명인에 대한 감시활동 및 부정부패 단속, 비윤리적 행동에 대한 처단 등에 매우 효과적이다. 특히 연예인의 병역비리 문제나 이중국적 문제, 여중생 미군장갑차 사망사건처럼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에 일침을 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몇몇 사건으로 알 수 있듯이 네티즌의 단합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취지와는 어긋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건과는 상관없이 개인의 ‘신상캐기’에 집중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붓는 네티즌의 행동은 마치 한 개인을 사회에서 매장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네티즌을 일컬어 자신보다 약한 표적을 발견하면 여차없이 공격을 가하는 ‘하이에나’나 ‘독수리떼’에 비교하기도 한다.

연예인이나 정치인같은 공인들의 경우 네티즌의 눈을 피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요즘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기자가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얘기는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한 사람의 입을 막으면 약점을 감추거나 적당히 무마시킬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다르다. 사실이 포착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퍼져나가게 되는 인터넷의 구조는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발언으로 거의 ‘주기적’으로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인물중의 한명이다. 탤런트 R씨는 신인시절 뺑소니 사고로 사람을 사망케 한 사실이 드러나 한동안 ‘살인자’라는 원색적인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군대문제로 결국 추방당한 유승준과 마약혐의로 사실상 은퇴를 맞은 황수정, O양비디오, B양 비디오 주인공의 사례는 네티즌의 힘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또 미확인된 루머를 안고있는 연예인 역시 네티즌들의 비난을 피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현실. 모 그룹의 여성 멤버 L은 호주에서 호스티스로 일했다는 현지 교민의 제보로 인해 온갖 루머에 휩싸였으며 솔로로 변신한 가수 L양은 학창시절 도벽과 문란한 남자관계로 수차례 입방아에 올랐다. 영화배우 K양의 모 재벌회장 아이 원정출산설, 학창시절 S양의 동거설, 여가수의 낙태설 등은 인터넷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들의 루머가 사실로 입증될 경우다. 그럴 경우 또 한번 대대적인 ‘사이버 인민재판’이 벌어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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