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기획사정 누가 칼 맞나
떠오르는 기획사정 누가 칼 맞나
  • 윤지환 
  • 입력 2004-12-03 09:00
  • 승인 2004.12.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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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용지 두 장 짜리 군 인사비리 탄원서가 가져온 파문은 실로 엄청났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의 군 개혁 플랜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 아니냐는 추측마저 나돌고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남재준(60) 육군참모총장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사태는 한풀 꺾였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선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는 군 수뇌부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번 군 인사비리 투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청와대의 군 검찰 수사 배후설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군 검찰에 대한 인사참모부의 비협조 관행을 깨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수사라는 것이다. 투서 파문에 대한 두 시각은 수사의 원인을 보는 시각은 다르지만 ‘군 개혁’의 일환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데엔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국방부가 어떤 식으로 이번 사태를 마무리짓든지 간에 이번 파문이 ‘군 개혁’ 작업의 일부라는 인식을 지우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배후설

이번 사건에서 청와대 배후설 의혹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군 내부에서 막강한 권력을 형성하고 있는 인사참모부를 이보다 하위 부서로 취급되던 군 검찰이 어떻게 압수수색을 할 수 있었는가하는 데에 있다. 군 관계자들은 군과 같은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한데 대해 청와대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청와대는 투서가 국방부에 뿌려지기 전 이미 투서에 드러난 내용과 같은 첩보를 이미 접수하고 이를 국방부에 이첩시켰다고 밝혔다. 여기서 발생하는 의혹은 과연 이를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이첩하는 과정에서 수사에 대한 별도의 지시가 없었는가 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투서 내용을 이미 접수한 청와대가 이를 윤 국방장관에게 이첩시키면서 이번 사건을 통한 군 개혁플랜을 전달했고 윤 국방 장관이 이를 그대로 받든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 놓고 있다.

이에 대해 전 군 검찰관 출신이었다는 한 인사는 “내 경험으로 미뤄볼 때 군 검찰이 육본 인사참모부를 건드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더구나 군 내부에서는 인사철 이후 불만 섞인 투서들이 뿌려지는 일이 때때로 있었다”면서 “윤 국방장관이 청와대로부터 별도의 수사지시가 없었는데도 이런 일로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허락했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고 의문을 표시했다.실제로 신남순 전한미연합부사령관이 공금 유용혐의로 구속됐을 당시에도 이에 대해 무수한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가운데 신 대장의 구속은 단순한 법적 잣대가 아닌 ‘다른’기준으로 이뤄졌을 개연성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참여정부에 들어 옷을 벗은 군장성들을 살펴보면 청와대의 군 물갈이 의도는 여실히 드러난다.

호남출신인 조영길 전국방 장관을 비롯해 신 대장과 비슷한 혐의로 지난해 광주일고 출신 이정 전 국방부 합동조사단장(소장), 광주고 출신 이길재 전육군헌병감(준장), 전남 순천고 출신 위성권 전육군법무감(준장)이 차례로 옷을 벗은 것이다.군 수뇌부 개혁 플랜이 언제 본격 가동되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해 오던 시점에서 군 인사비리에 관한 투서가 청와대에 접수되었고 이후 국방부에 인쇄물이 유포되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비리 투서의 출현은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계산된 결과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군 내부의 누군가가 노 대통령의 개혁플랜을 도와 군 개혁을 이루기 위해 적당한 시기를 노린 것일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또 이번 사건에서 투서의 내용이 허위로 밝혀질 경우 모든 책임을 군 검찰이 뒤집어 써야 하는 상황인데 군 검찰이 구태여 이번 일을 크게 만들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군 검찰의 한 관계자는 “만약 이번에 발견된 투서의 내용이 사실과 다를 경우 모든 부담은 우리가 안게 돼 있다. 이는 이미 예견된 일이다”라며 “그렇지만 현재 우리의 판단은 투서의 내용이 허위가 아니며 어느 정도 조사작업을 거쳐 작성된 문건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군법무관 출신 증언 “군검찰 독립성 확보돼야”이번 일에 대해 전 군 법무관 출신 법조인들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이들은 진작에 이렇게 됐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 군 법무관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았다.

- 이번 사건이 왜 불거졌다고 생각하나.▲내가 현장에 있는 실무자가 아니라서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신문기사를 보니 어떤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은 사실 군 내에서 늘 있어오던 것이 표면화된 것에 불과하다. 일반 사병으로 근무한 사람이라도 이런 사실들은 다 알 것이다.문제는 육본 인사참모부라는 곳이다. 내가 근무할 당시에도 인사참모부의 행동에 화가 난 적이 몇 번 있었다.

- 이번 수사에서 윤 국방장관이 왜 영장청구를 받아 들였다 생각하는가.▲일부에서는 이에 대해 청와대 개입설을 내놓고 있지만 실무를 아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윤 장관 입장에서도 영장청구를 승낙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 본다. 청와대에서 이첩된 사안인데다 군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해 보겠다고 하는데 별 다른 도리가 없었을 듯하다.

윤지환  jjd@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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