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게이오대에서 객원교수 지낸 ‘일본통’
외교관 출신으로 줄곧 정치권을 맴돌기도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청와대가 지난 10일 국정원장에 이병기 주일대사가 내정됐음을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병기 내정자는 외무고시에 합격 후 케냐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던 1981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외교관, 청와대 의전수석비서관, 안기부 2차장 등을 지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안기부 차장 출신 대통령 측근의 국정원장 내정에 대해 “허무하다”고 할 정도로 싸늘한 반응이다. 또 과거 각종 정치 개입 연루 사건도 있어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계속되고 있다.

올해 67세인 이 내정자는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을 지냈다.
2007년 당내 경선 캠프에서 선거대책부위원장을 맡았고, 지난해 대선 때도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현 여의도연구원) 고문으로 박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관 출신답게 평소 언행이나 처신이 신중하고 정무 감각이 뛰어나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편이다. 1985년 민정당 총재보좌역으로 정치에 뛰어든 이 내정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의전수석비서관을 거쳐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 외교부 본부대사를 지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1995년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가정보원장) 제2특보로 자리를 옮긴 후 1996년부터 1998년까지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을 지내 국정원 개혁 작업을 진행했다.
박 대통령과 20년 이어온 인연
안기부 2차장 재직 당시인 1997년 고 황장엽씨 망명 사건이 발생하자, 한국 망명을 위한 막후작전을 총괄하기도 했다. 안기부를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일본 게이오대에서 객원교수를 지낸 '일본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 내정자는 박 대통령과 20년간 인연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첫 만남은 노 전 대통령의 의전수석비서관 시절이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민간인 신분의 박근혜 대통령을 청와대로 불러 위로했는데 그때 박근혜 대통령을 안내했던 인물이 바로 이병기 내정자였다.
이후 한나라당 시절 두 사람의 인연은 한 번 더 이어졌다. 2007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친 대선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참모로 활동했다.
2002년 한나라당 돈 배달 사건 주역
이 내정자의 국정원장 내정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이유는 이 내정자의 과거 이력 때문이다.
이 내정자는 지난 1996년부터 1998년까지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을 지냈다. 당시 이 내정자는 2차장으로 재직하면서 김대중 대통령 후보 낙선 북풍 조작 사건에 개입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북풍 조작 사건은 지난 1997년 대선에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김 후보와 북한이 연계돼 있다는 재미교포 윤홍준씨의 기자회견을 안전기획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해 꾸민 사건이다.
당시 검찰 조사에서 안기부는 공작금으로 1만 9천달러를 윤씨에게 전달하고 기자회견문 작성과 회견장소를 물색해 언론이 이를 보도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내정자는 1998년 3월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당시 이 후보는 안기부 해외담당 책임자로 있었고 윤홍준씨의 김대중 후보 비방 기자회견을 배후 조종한 것으로 드러난 이대성 해외조사실장의 직속 상관이었다.
당시 검찰은 안기부 조직 특성상 이 전 차장(이병기 내정자)이 윤홍준씨의 비방회견을 지시했거나, 추진상황을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윤씨의 기자회견 당시 해외 출장 중이었고 북풍공작을 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결국 이 내정자는 사법 처리 대상에서 빠졌다.
이 내정자는 이후 일본 게이오기주쿠 대학 객원교수를 지내고 2001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안보 특보로 정치권에 복귀했다. 그리고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정무특보로 활약했다.
이 내정자는 정무특보로 재직하면서 돈 배달 사건을 일으켰다. 2002년 12월 이 내정자는 한나라당 사무총장이었던 김영일 의원과 의논해 이인제 의원이 이회창 후보를 돕도록 회유하기 위해 돈을 전달하기로 했다.
검찰 조사 결과 이 내정자는 김영일 의원에게 5억원을 받아 2억 5000만원씩 담은 상자 2개를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이인제 의원 공보특보를 지냈던 김윤수씨에게 서울의 한 호텔 지하주차장에서 차떼기 방식으로 전달했다. 그런데 김씨가 2억 5000만원을 이인제 의원 부인에게 건네고 나머지 돈은 중간에서 가로챘다. 당시 사건은 한나라당에 치명타를 안겼다. 불법 대선 자금의 사용처가 정치인 매수에 쓰이면서 정치권의 추악한 치부가 드러난 사건으로 규정됐다.
공작정치에 연루된 사람 국정원 개혁 가능할까
이후 2004년 3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이 내정자를 선대위 전략기획단장으로 내정했다. 하지만 2002년 당시 돈 배달 사건이 문제가 됐고 결국 이 내정자는 전략기획단장직 사의를 표명하고 자신의 공천신청도 철회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 내정자는 외교관 출신이지만 지난 1981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보안사령관직을 그만두고 정무장관에 임명됐을 때 비서관으로 기용된 이후 체육부장관 비서관, 내무부장관 비서관, 노태우 대통령 의전비서관을 지내는 등 줄곧 정치권을 맴돌았던 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다 정치권과 연루된 사건까지 있다보니 과연 국정원을 개혁할 인물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한편 이병기 국정원장 내정자의 재산은 총 26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임 남재준 국정원장의 2배가 넘는 규모다.
지난 3월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관보에 공개한 ‘2014년 고위공직자 정기 재산공개변동사항’에 따르면 이병기 국정원장 내정자는 본인과 배우자, 장남 명의로 총 26억 1640만 원을 신고했다.
이병기 내정자는 신고 재산 가운데 부동산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 후보자는 서울 도곡동 삼성타워팰리스 1차 아파트 (16억 3200만 원),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임야(1870만 원), 경기도 화성시 북양동 임야(2억 9410만 원)를 본인 소유로 신고했다.
자동차는 배우자가 소유한 2012년식 그랜저와 장남 명의의 쏘나타 하이브리드 등 총 2대가 있다. 총 합산 19억 4480만 원이다. 예금은 본인과 배우자, 장남 명의로 총 6억 2898만 원을 보유했다. 본인 명의의 예금은 4억 7976만 원이었다. 배우자는 9650만 원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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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