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홍준철 기자] 김세현 전 친박연대 사무총장이 7.30 재보선지역인 부산 해운대갑 출마를 선언했다. 김 전 사무총장은 <일요서울>과 인터뷰에서 “지역연고도 없는 구정치인보다는 부산을 잘 알고 지역현안에 밝은 인사가 돼야 한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출마설이 나오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 후보가 나와야 한다며 승리할 자신감도 피력했다. 한편 ‘당권’ 도전을 선언한 서청원 전 대표의 ‘집사’역할을 해온 김 전 사무총장은 “서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감옥에 간 의리있는 정치인”이라며 “서 대표가 당대표가 돼야 박근혜 정권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6월11일 공덕동 김 전 사무총장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 지방선거가 끝났다. 어떻게 지냈는지.
- 서청원 전 대표가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 맡아서 함께 수도권, 충청도, 부산 대구 등 전국 95곳 단체장을 만났고 2만km가 넘게 돌아다녔다. 선거 결과를 보니 국민들이 참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여당을 혼낼 수 있었는데 기회를 줬다. 국민이 국가 개조 명령을 내렸다고 본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첫 번째가 여야 그만 좀 싸워라 두 번째는 경기가 너무 어렵다 민생이 어렵다 국회의원이라고 개폼 그만잡고 경제 좀 살리라는 목소리가 크다. 국회의원들에 대한 윤리와 도덕기준을 엄격하게 요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가 정치인들이 싸우지 말고 일 좀 하라는 주문이 많았다. 국회가 어떻게 개회한다고 공고를 내냐 상시국회를 열라는 명령도 했다.
▲ 7.30 재보선 해운대 기장갑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데… 출마 결심을 한 배경은
- 나와 부산의 인연은 임진왜란까지 올라간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4월 18일 선조인 김회수 조부께서 돌아가셨다. 왜구가 부산앞바다에 새까맣게 나타난 게 그해 4월이다. 당시 부산성이 함락당하고 부산 사람들 다 피난갔다. 그런데 조부는 군인이 아닌데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며 왜구에 맞서다 동래성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이로 인해 선조임금이 충렬공이라는 시호를 조부에게 내렸다. 부산 동래구 충렬사에 조부가 배양돼 있다. 고향에서 4백년 이상 집안이 살아 부산사람들이 다 이웃이다. 부산에 있는 동아대 영문과를 나와 서울에서 영어 선생을 했다. 1981년 부산을 떠나 학사 장교, 대위로 군생활을 마치고 선생도 하고 사업도 친박연대 사무총장도 했다. 그러다 3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고향에서 뜻을 펼치고 싶어서 출마하게 됐다.
▲ 해운대 기장갑에 야권단일후보였던 오거돈 전 부산시장 후보 출마설이 나오고 있다.
- 오거돈 전 후보를 상대할 유일한 상대는 나다. 서병수 당선자가 0.3% 차이로 이겨 사실상 진 거나 다름없다. 부산에 뿌리를 갖고 있고 변화를 바라는 해운대 구민들에게 깨끗하고 지역현안을 잘 아는 사람, 3당 사무총장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나와야 맞상대가 된다. 지금 여당내 거론되는 현기완, 안경률, 이종혁 인사들은 다 옛날 구정치인이다. 지역 연고도 없는 후보다. 해운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가 유일한 후보다.
▲ 야권에서 전략공천을 할 경우 여당 내에서도 큰인물론이 나올 수 있는데.
- 오거돈 후보가 나온다면 여당은 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역 지지기반이 있고 지역을 잘 알고 잘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을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중앙당에서 전략공천을 한다면 내가 전략공천 적임자다. 전략공천이 안 된다면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경선을 해야 한다.
▲ 지난 19대 총선에서 촌지 사건으로 공천권이 박탈되는 일이 있었다.
- 모 인터넷 신문 기자가 캠프 사무실에서 내가 돈을 줬다고 주장했다. 근데 사무실이 투명한 유리로 돼 있어 돈봉투를 줄 상황도 못 된다. 무엇보다 돈 봉투를 준 사람은 내가 아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전화 통화한 기록이 없다. 검찰에서 국립과학연구소에서 돈봉투에 묻은 지문까지 검사했지만 내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해당 기자에 대해 거짓말 탐지기를 했더니 양성반응이 나왔다. 나는 피의자나 용의자도 아니고 참고인 조사 한번 받고 무혐의 처리됐다. 그때 문제가 됐으면 지금 출마를 하지 못한다.
내가 고등학교 영어 교사를 하면서 촌지 안 받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한 번은 한 학부모가 언덕배기 있는 우리 집에 찾아와 촌지를 준 적이 있는데 쫓아가서 돌려줬다. 돌려주면 쫓아오고 다시 쫓아가고 서너 번 그러다 결국 돌려줬다. 그 학부모와는 지금도 연락한다.
▲ 당권 도전을 하는 서청원 전 대표와 막역한 사이다.
- 서 대표와는 학연, 혈연, 지역 연고 아무런 관계도 없다.

한나라당에서 청년자원봉사 총단장을 맡았는데 임명장을 서 대표가 줬다. 그 이후에도 별 인연은 없다가 청산회 산악회가 만들어져 총괄회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됐다.
2006년 4월 26일 계룡산에서 청산회 시산제를 열었다. 내가 행사 기획하고 영상물도 만들고 사회도 보고 무대설치도 하고 사람도 모았다. 당시 5천명이 넘게 왔는데 6~7백명이 은평구에서 찾아왔다. 당시 행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서 대표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고생 많았어요. 행사 너무 좋았어요. 고마워요.’라고 전화가 왔다. 통상 국회의원이 아랫사람 부리기만 하는데 직접 전화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서 대표는 겸손하게 존대말하고 실력을 알아보는구나 사람을 귀하게 보는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면 정치를 같이 하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2006년부터 인연이 시작돼 친박연대 사무총장을 맡았고 서 대표가 감옥에 있을 당시 옥바라지도 하고 친박 연대 당무 보고를 하느라 거의 매일 교도소에 가 면회를 하면서 인간적으로 더욱 가까워졌다. 당시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합당을 성사시켰다. 지방선거 출마하려는 사람들이 합당에 반대했다. 합당 협상 말미에는 당내에서 독자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내가 다 설득했다. 내가 생각하는 당의 기준은 박근혜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면 하고 안 되면 하지 말자고 설득했다.
▲ 서 대표와 김무성 의원이 불꽃 튀는 대결이 점쳐지는데.
- 서 대표가 당 대표가 돼야 한다. 서 대표가 교도소에 간 이유가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감옥에 갔다. 한나라당 당대표 시절에도 감옥에 갔지만 당시 선거 치러야 하는데 돈이 필요해 서 대표가 이회창 총재를 대신해 감옥에 간 것이다. 인생이나 정치나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 서 대표는 돈을 받지도 않았는데 1년 6개월 동안 박 대통령 때문에 감옥에 갔고 옥중 단식까지 했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을 잘 알고 박근혜 정권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온 몸을 던질 사람은 서 대표뿐이다. 의리를 지킨 서 대표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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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