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오류에 내부통제 시스템 부재도
파산 직전 부실금융기관 취소 소송 향방은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한맥투자증권이 주식시장 개장 57년 이래 주문 실수로 파산하는 최초의 증권사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 해당 주문은 초고속 직접주문전용선(DMA)을 활용한 탓에 문제 시 일차 책임도 증권사에 있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프로그램 오류와 함께 한맥증권의 내부통제 시스템 부재를 지적하고 나섰다. 반면 한맥증권은 거래소의 일부 책임을 물으며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부실금융기관 취소 소송을 내는 등 억울함을 호소하는 형국이다.
2013년 12월 12일. 한맥증권으로서는 기억하기 싫은 날이다. 선물·옵션 동시만기일인 이날 한맥증권은 전산입력 사고로 1600만원짜리 코스피200 옵션상품을 실수로 25만 원에 팔았다. 단 2분간의 주문실수로 3만7902건의 계약이 체결됐고 한맥증권은 순식간에 466억 원의 손해를 봤다.
찰나의 실수는 작은 증권사를 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한맥증권의 자본금은 불과 260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 주문 실수 이후 한맥증권의 부채는 자산을 311억 원 초과했다. 일부 증권사들은 이익금을 돌려줬지만 버티는 외국계 헤지펀드도 있었다. 결국 한맥증권은 지난 1월 부실금융회사로 지정됐고 6개월 영업정지를 당했다.
거래 속도 높이는 직접주문전용선…부메랑으로 돌아와
이처럼 짧은 시간에 한맥증권이 파산 위기에 몰린 것은 차익거래 자동매매 프로그램 오류와 DMA 활용 때문이다.
한맥증권의 프로그램은 속도에만 중점을 둬 안전장치가 다소 미비했다. 당시도 시스템에서 이상주문에 대한 제어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간단한 제어 명령만으로도 막을 수 있었던 주문 실수를 필터링 없이 그대로 놓쳐버린 것이다.
DMA도 한맥증권 사태에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DMA는 트레이딩 데스크와 거래소를 직접 연결하는 고속 매매시스템을 일컫는다. 주식 주문이 증권사를 거치지 않고 거래소에 바로 연결된다는 이야기다. 한맥증권도 이러한 DMA를 활용했고 이상주문은 날개 돋친 듯 체결됐다.
앞서 KTB투자증권과 KB투자증권의 선물 주문실수도 DMA와 관련이 깊다. KTB투자증권은 지난해 6월 급락장에서 7000건 이상의 선물매수 주문을 냈다. 지수선물은 갑자기 급등했고 KTB투자증권은 10분 만에 11억 원의 손실을 봤다.
KB투자증권은 다소 억울한 경우다. 홍콩계 헤지펀드인 이클립스퓨처스는 지난 해 1월 지수 선물을 지정가로 매수 주문했다. 그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12만건의 주문이 들어갔고 취소조차 되지 않았다. 이클립스퓨처스가 낸 16조 원가량의 매수 주문은 단 5분 만에 확정됐다.
다음 날 회원사인 KB투자증권은 선물 대량주문에 대한 현금증거금 3100억 원을 대납해야만 했다. 이후 KB투자증권과 이클립스퓨처스는 관계를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 자동매매 프로그램 오류와 DMA 활용 배경을 올라가면 알고리즘 매매 문제에 봉착한다. 알고리즘 매매는 컴퓨터가 알고리즘에 따라 매매를 결정하고 실행한다. 미리 설정된 변수와 조건인 알고리즘에 따라 그야말로 번개같은 주문 반복이 이뤄지는 식이다. 현재 사용되는 알고리즘 매매시스템은 1분에 1만5000건 이상의 주문을 소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단타매매도 이 알고리즘 매매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초단타매매는 고성능 컴퓨터로 초 단위로 수 차례 주문을 내는 주식거래 기법이다. 0.0X초, 0.00X초와 같이 초 단위를 수백, 수천개로 잘게 쪼개는 것이 가능해 고빈도매매, 극초단타매매로도 불린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스캘핑보다도 매매 빈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뒤늦은 킬 스위치…중소형 증권사엔 별 도움 안 돼
현대 주식시장에서는 속도가 곧 수익을 의미한다. 하루에도 수천번의 주문을 내는 시스템은 곧 이익을 안겨다 주는 것으로 통용됐다. 가격상의 일시적 괴리에서 발생하는 차익을 그대로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거래 수수료율이 낮은 선물·옵션은 아예 프로그램이 전담하는 실정이다. 프로그램으로 자동주문을 걸어놓고 초단타매매를 하면 수익이 차곡차곡 쌓이는 식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온 증권가가 속도전에 물들어 경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때 주문실수를 걸러줄 필터링이 없으면 해당 증권사는 수익을 추구하다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더 나아가 시간이 지연되면 주식시장 전체가 붕괴될 위험성도 잔존한다. 금융당국이 한맥증권 사태에 놀라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선 이유다.
이와 관련해 한국거래소는 알고리즘 매매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킬 스위치’ 제도를 도입했다. 킬 스위치는 증권사 신청에 따라 착오가 발생한 알고리즘 계좌에서 제출된 모든 호가를 일괄 취소하고, 추가적인 호가 접수를 차단하는 제도다.
하지만 일단 주문이 체결된 이후에는 킬 스위치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다. 또 알고리즘 거래계좌로 미신고된 계좌인 경우 발동이 되지 않아 신고가 필수다. 현재 전체 계좌가 약 3만~4만 계좌인 데 반해 알고리즘 거래계좌는 불과 50~100개 계좌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한맥투자증권 사태의 문제는 주문실수를 막을 수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이 허술했다는 점도 있다”면서 “사고 방지와 관련한 내부규정은 증권사 스스로가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맥증권 측은 지난 9일 금융위를 상대로 부실금융기관 취소 소송을 내고 거래소의 대응을 비난했다. 이재광 한맥투자증권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사고 발생 당일 거래소에 구제 신청과 관련한 협조를 구했지만 거래소가 거부했다”며 “거래소를 상대로 배임·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검토했지만 금융당국이 회사에 파견한 관리인들이 소송 진행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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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