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용 고무장갑 끼고 화재 진압… “안전도 빈부격차 심하다”
농업용 고무장갑 끼고 화재 진압… “안전도 빈부격차 심하다”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4-06-16 10:48
  • 승인 2014.06.16 10:48
  • 호수 1050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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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직 전환’ 요구하는 소방관

5년 간 29명 순직, 연이은 참사에도 변함없는 소방 환경
“국가안전처 아닌 소방 업무 전문부처 신설 필요하다”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관의 근무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처우를 개선해준다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연이은 참사로 국민들이 목숨을 잃자 소방관들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들은 광화문으로 달려가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을 위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노후 용품, 인력 부족 등 소방의 문제는 결국 국민 안전과 연관된다. [일요서울]은 그들의 이유 있는 외침을 들어봤다.

지난해 2월 경기도 포천시 제조공장 화재를 진압하던 윤영수(당시 33세) 소방관이 무너진 건물 벽에 깔려 숨졌다. 지난해 5월에는 경북 안동 임하댐 헬기 추락사고 실종자를 구조하던 박근배 소방관이 순직했다. 8월 경북 김해시 폐타이어 처리업체 화재 진압 중에는 김윤섭 소방장이 순직했다.

최근 5년간 순직한 소방관은 모두 29명에 달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소방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달 21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장성 요양병원 화재 당시 먼저 도착한 소방관은 3명이었다. 3명으로 화재 진압은 가능해도 부상자 구조는 힘들다.

국가공무원 아닌 소방관 인력·장비 모두 부족

소방 장비와 인력 부족은 소방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방조직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지난 12일 소방발전협의회 고진영 회장은 [일요서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소방이 지방 예산에 의존하는 지방직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전국에서 근무하는 3만9500여 명의 소방공무원 가운데 99.8%는 지방직 공무원이다. 소방본부는 시·도청에서 근무하는 일반직 행정직과 같이 시·도지사 관할에 속한다. 따라서 1.7%의 국가 지원을 제외한 모든 예산은 지방 예산으로 충당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서울과 같이 재정 자립도가 높은 지자체와 전북·전남과 같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소방 예산은 차이가 난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에 속한 소방본부는 안전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안전도 빈부격차가 있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예산이 부족한 지역 내 소방관들은 직접 자비로 소방 용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용품 없이 현장에 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농업용 고무장갑을 끼고 화재진압에 나서는 소방관들도 있다. 고 소방관은 “소방은 국민 누구나 평등하게 보장받는 국가 서비스”라며 “그러나 재정자립도에 따라 서비스 질이 달라진다면 이는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부족한 소방 인력도 지방직의 한계다. 지방으로 갈수록 혼자 화재진압을 하는 소방관이 많다.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규정에 따르면 소방 펌프차 1대에 4명이 타야하지만 이러한 규정을 충족시키는 곳은 전국에서 10%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방직 공무원은 1년에 증원할 인력을 행정직과 소방직으로 나눈다. 그러다보니 행정직에 비해 소방직은 증원 인력이 적을 수밖에 없다. 고 소방관은 “소방공무원을 증원시키려면 일반 공무원 인력을 축소시켜야 한다. 그러나 예산·인사·임명권을 가진 행정직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살을 깎으면서 소방공무원을 증원시키지 않는다”며 “오히려 반대로 국가에서 내려온 소방의 몫을 다른 쪽으로 전환해 사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소방공무원 중 국가직인 사람들은 소방방재청에 근무하는 322명과 각 광역단체 소방본부장뿐이다.

부상당한 소방관 경찰병원으로…

지난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정부는 대책으로 소방방재청 해체 및 국가안전처 신설을 발표했다. 현재 해경·소방방재청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현 소방방재청은 해체되고 신설되는 국가안전처 산하로 편입된다. 국가는 국가안전처로 편입되면 소방공무원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소방공무원들은 소방방재청 해체 반대를 외치고 있다. 10년째 주장한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요구’와 ‘소방방재청 해체 결정’은 결국 소방관들의 1인 시위를 불러왔다. 고 소방관은 “지방공무원인 소방관의 예산과 인사·임용권은 시·도지사에게 있다. 소방방재청에서는 컨트롤 권한이 전혀 없다. 업무가 이원화 돼 있기 때문”이라며 “국가안전처에 편입돼도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다. 조직만 비대해질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소방은 재난 구조라는 특수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된 담당부처도 없는 상태다.

그러다보니 현재 현직 소방관들은 ‘소방 업무의 전문화’를 요구하고 있다. 소방 업무만 담당하는 기관 신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 소방관은 “소방 업무는 그 특수성을 알고 있는 소방관들이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현재 소방에 관련된 내용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행정직이다. 그들은 현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면서 소방을 컨트롤한다. 재난 현장은 우리가 책임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행정 공무원이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사실은 화재 진압 중 부상당한 소방관을 위한 전문 병원이 아직까지 단 한 곳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소방관들은 장기 치료가 필요한 화상을 입으면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현재 부상당한 소방관들은 경찰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경찰위주로 돌아가는 병원 특성상 화상 전문 치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경찰병원에서 치료받는 것도 부상 입은 소방관의 치료에 대해 문제제기가 된 후 바뀐 조치다.

국민 안전 담당 소방관 경찰과 다른 이유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은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과 비슷하다. 그러나 ‘경찰청-지방경찰청-경찰서’와 같이 지휘체계가 확립된 경찰과 달리 소방은 지방자치단체 산하에 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방공무원은 1948년 치안국 소방과에 소속돼 있었다. 그러나 경찰 행정 내에 속한 국가직이었지만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1970년 정부조직법 개정과 함께 소방 업무가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되면서 지방직으로 전환됐다. 그러다 2004년 재난관리 전담기구 소방방재청이 신설되면서 지방직 소방업무가 앉고 있는 문제점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단순히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것에 그쳐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었다. 예산, 인사권 등을 가지지 못한 소방방재청은 소방 업무에 대한 컨트롤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경찰청-지방경찰청-경찰서-파출소로 나뉜 경찰 업무와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한번 지방직으로 전환된 소방 업무가 다시 국가직으로 돌아오는 길은 험난했다. 예산이 문제였다. 고 소방관은 “1976년쯤 소방공무원을 다시 국가직으로 전환하자는 이야기가 거론됐다”면서 “그러나 전환되지 못한 이유는 당시 지방 예산의 90%를 소방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소방이 어떤 식으로 운영돼야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단지 예산만을 생각했을 뿐”이라며 한탄했다.

“우리나라 실정 맞는 현장 중심형 시스템 필요”

그렇다면 소방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시킨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소방 고위공무원 A씨는 “그동안 대구지하철 화재, 태풍 매미, 세월호 참사 등을 겪으며 아직까지도 소방이 현장대응보다는 보고서 작성이 우선시 되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로 떠올랐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현장 중심형 재난관리시스템 구축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A씨는 “재난 현장 전문 대응역량 강화를 위해 소방을 전문 대응 전담조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방재청의 기능을 재정립해 현재 국가와 지방으로 이원화된 소방을 일원화시켜 소방공무원으로 구성된 소방청을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부족한 인력 보강 및 현대화된 장비를 보급하고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초기 재난현장 수습 전담 기동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 컨트롤 타워 기능을 단순화 시켜 총괄 조정과 지원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인력과 장비 등을 지원하고 부처 총괄과 조정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A씨는 “효율적인 체계 운영을 소관 부처별로 구성·운영하고 수습 분산관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관업무에 따라 중앙재난사고수습본부를 운영하고 예방대책과 위험정보 등을 사전 공유해 재난 대책 마련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방방재청은 국가안전처에 소방청을 외청으로 별도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중앙과 지방의 소방조직 지휘체계 확립을 위해 ‘소방청-지방소방청-소방서’체계 구축도 건의했다. 그러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기 때문에 이 같은 건의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소방은 국민 안전과 직결된다. 소방 업무에 대해 소홀한 것은 국민에 대해 소홀한 것과 마찬가지다. 단순히 예산만 놓고 따질 문제가 아니다. 대형 참사가 발생한 뒤 후회하면 늦는다. 제 2의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소방에 대한 현실적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jhooks@ilyoseoul.co.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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