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세월호 승무원들에 대한 첫 재판(공판준비기일)이 참사 56일 만인 10일 광주지법에서 열렸다.
광주지법은 이날 오후 2시 법정동 201호 법정에서 이준석 선장을 포함한 승무원 15명에 대한 (기일 전)공판준비절차를 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는 본격적인 공판에 앞서 사건의 쟁점과 증거를 정리하는 절차다.
이날 법정에서는 쟁점정리 및 심리계획 수립을 위한 검찰과 변호인 간의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 검찰의 기소 취지 진술에 이어 변호인 측에서는 (공소사실 중)다툴 부분을 특정하는 진술을 이어갔다. 이어 검찰의 증거신청이 이뤄졌다. 이에 대한 변호인 측 의견과 변호인의 증거신청은 오는 17일 오전 10시로 예정된 제2회 공판준비기일에 진행된다.
피고인들의 변호인 측은 구호조치가 미흡했다는 점이나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에서 먼저 구조됐다는 사실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피고인들도 사고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으며, 퇴선 당시 이미 배가 상당히 기울어 더 이상 배안에서의 구호조치는 불가능했다며 살인이나 도주 등의 의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선장 이씨의 경우 퇴선 전 탈출 방송을 지시하는 등 일부 구호조치를 이행했으며 피고인 박모씨, 피고인 오모씨 등 일부 선원들은 배 안에서 '구명벌 등을 터트리려 시도했다' '퇴선 뒤 해경과 함께 승객·익수자를 구조했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대체로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취지의 변호인 진술이 이어지자 방청석에서는 항의성 고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시간제한으로 의견을 듣지 못한 손모씨 등 나머지 4명의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인정 여부 절차는 오는 제2회 공판준비기일에 이어진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대표는 모두절차에 앞선 의견 진술을 통해 "가족들은 철저한 진실규명과 엄정한 처벌을 원한다"고 밝혔다.
대표는 "우리 아이들이 왜 그렇게 갑자기 죽어가야 했는지, 그 이유도 모른 채 바다 속에서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우리 아이들에게, 적어도 누가 무엇을 잘못했으며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 앞에 약속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게. 다시는 똑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게. 그러려면 우리가 낱낱이 알아야 한다"며 "사소한 사항 하나하나 모두 밝혀 달라. 그리고 그 사실들을 토대로 정말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재판부에 당부했다.
현재 이 사건의 쟁점으로 떠오른 사안은 승객을 버려두고 탈출한 선장 이씨 등에 대해 '부작위'(不作爲·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할 것이냐의 여부다.
검찰은 선장 이씨와 1등 항해사 강모(42)씨, 2등 항해사 김모(47)씨, 기관장 박모(55)씨 등 4명을 살인 혐의 등으로 나머지 선원 11명은 유기치사, 유기치상, 수난구호법 위반 혐의로 각각 구속기소했다.
또 선장과 사고 당시 운항지휘를 맡았던 3등 항해사 박모(25·여)씨와 조타수 조모(55)씨에 대해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 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에 대한 가중처벌) 혐의를 적용했다.
법조계는 구호조치 없이 탈출한 선원들로 인해 승객 수백여 명이 사망한 점으로 미뤄 업무상 과실치사· 선박 매몰·유기치사·수난구호법 등의 혐의 입증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최고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와 무기징역이 가능한 특가법상 도주 선장 및 승무원에 대한 가중처벌은 치열한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
형법 제18조는 '부작위범'에 대해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인해 위험 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 발생을 방지하지 않은 때에는 그 발생된 결과에 의해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작위범은 각종 법령이나 계약에 의해 일종의 '보증인' 역할이 부여된 사람이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에도 해당된다. 결국 부작위범의 경우 고의나 과실 등의 여부가 범죄 성립의 중요한 요건이다.
검찰은 인명구호 의무가 있는 선장 등이 통신시설을 이용해 승객에게 대피 안내를 할 수 있고 해경과 어선 구조선이 도착한 상황임에도 자신들만 탈출해 미필적 고의에 따른 살인 혐의가 인정된다는 판단이다.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을 퇴선시키지 않을 경우 익사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던 점도 살인죄 적용의 근거로 작용했다.
살인죄 적용 여부 등의 쟁점 부각에 앞서 침몰사고 전반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고 발생 경위, 침몰 및 구조 당시의 각종 상황, 향후 조치 등 모든 과정 하나 하나가 재판 과정에서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아울러 제기된 각종 의혹의 진실도 낱낱이 규명하는 한편 재판 결과를 토대로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피해자 가족 대표는 법정에 소환된 피고인들에게 "꼭 진실을 말해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피해자 가족 대표는 이날 "300여 명을 바닷속에 수장시킨 선장과 선원들은 반성한마디 없다"며 "이들을 모두 사형시켜야 한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가족 대표는 공판준비절차가 끝난 뒤 광주지법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원들은 재판정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웃고 들어왔다"며 "이것만 보더라고 선원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원들 중 2명은 진술을 통해 '배에 들어가서 유리창을 깼다'고 했다"며 "이는 모두 거짓말이다. 입을 맞추는 행태 같다"고 비난했다.
또 "이들 중 아무나 세월호에 들어가 '모두 나와라'고 소리만 쳤어도 배에 타고 있던 학생들은 살았을 것이다"며 "선원 모두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법원이 이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법이 잘못된 것"이라며 "가족들은 첫 재판을 보고 분노하고 있으며 유족들 가슴에 상처를 남겼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희생자 가족들은 선원들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야 한다"며 이들이 수감돼 있는 광주지검 구치감 입구에 앉아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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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