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를 주무르는 장모파워
사위를 주무르는 장모파워
  • 이수향 
  • 입력 2005-03-11 09:00
  • 승인 2005.03.1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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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갓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된 듯하다. 현대 사회에서 장모는 항상 사위의 편에 서서 딸을 부탁하던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출가한 딸의 모든 생활을 일일이 조정하는 권력자로 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부갈등 못지않게 장모와의 심각한 갈등을 호소하는 사위들이 늘고있다. 장모가 한 집안의 막강한 권력자로 부상하고 있는 실태를 취재했다.

개천의 용 vs 강남 외동딸

증권사에 다니는 결혼 1년차 장우민(32·가명)씨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심한 복통을 호소한다. 병명은 신경성 위염. 반년전 처갓집 바로 옆동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부터 그는 생전 앓아보지도 못한 위장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원인은 ‘별나고 드센 장모’로 인한 스트레스와 중압감에서 비롯됐다.장씨는 “드센 장모로 인해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장모는 장씨가 결혼할 때부터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명문대를 나와서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장씨지만 넉넉지 못한 집안환경에서 자수성가한 일명 ‘개천의 용’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강남의 부잣집 외동딸로 금지옥엽 자라나 피아노를 전공한 그의 아내와는 분명 ‘출신’부터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장모는 장씨의 모든 것을 무시했으며 결혼할 때부터 아내의 아까운 재능을 집안에서 썩히게 한다며 불만을 나타내왔다. 더구나 장모의 성화에 처갓집 바로 옆동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장모는 장씨부부의 일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외동딸로 자라나 유난히 장모와 깊은 친밀감을 갖고 있는 그의 아내는 하루의 일과를 장모와의 통화로 시작하는 동시에 일거수일투족을 상담한다. 또 장씨가 출근한 후 친정으로 달려가 하루종일 같이 붙어사는 것은 기본이다.

이혼부추기는 장모

장씨는 결혼 후 아내와 처음으로 크게 싸운 일에 대해 얘기했다.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던 장씨가 새벽까지 회식을 하고 돌아온 다음날이었다. 간신히 출근을 한 장씨는 아침부터 회사로 걸려온 장모의 전화에 한바탕 곤욕을 치러야했다. 장씨는 “수화기를 들자마자 다짜고짜 소리를 질러대는 장모로 인해 한동안 회사에서 얼굴을 들고다닐 수 없었다”며 흥분했다. 이 일로 잔뜩 화가난 장씨는 아내에게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퇴근 후 집안에 들어선 장씨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사태가 기다리고 있었다.장모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얼굴로 버젓이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장모는 인사도 받지않은 채 대뜸 준비해 온 이혼서류부터 내밀었다. “술꾼이랑 내 딸을 살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술 더 떠 장모는 ‘결혼할 때 보태준 집값과 중형 승용차까지 몽땅 내놓고 헤어지라’며 소리를 질렀다. 일이 커질 것을 우려한 장씨가 간신히 무마시키긴 했지만 그 사건이후 장모의 파워는 더욱 세졌다.

가족계획까지 관여

장모의 간섭은 가족계획에까지 이어졌다. 하루빨리 손자를 보기 원하는 부모님의 성화에 아내와 출산문제를 논의한 장씨는 다음날 장모의 거센 비난과 훈계를 들어야했다. “아까운 재능 썩힌 것도 속상해 죽겠는데 벌써부터 애엄마를 만들어 집안에 눌러 앉게 할 생각이냐”는 것이었다. 장모는 아내에게도 “하고 싶은 일 하며 즐기다가 애는 나중에 가지라”며 피임을 강요했다. 장씨는 “부부사이의 일인 출산문제까지 장모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건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그 뿐만이 아니었다. 장모는 부부의 경제권에도 개입했다. 몇 달전 장씨가 주식으로 손해를 본 사실을 알게 된 장모는 그를 불러앉혀놓고 자존심을 한껏 짓밟아놨다.

“맨손으로 장가온 주제에 기껏 마련해준 집까지 날릴 셈이냐”는 식이었다. “장모가 장인까지 마음대로 주무를만큼 드센 성격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결혼한 딸의 인생에 이렇게까지 개입하려면 뭐하러 결혼을 시켰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 장씨의 말이다. 장씨는 현재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 “더이상 장모의 얼굴을 보고싶지 않다”는 그는 “이제는 장모와 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아내에게도 만정이 떨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내가 장모랑 결혼한 건지 아내랑 결혼한 건지 이제는 구분조차 안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혼인신고도 못하게해

결혼 3년차인 박진우(33·가명)씨의 경우는 좀 더 심각한 경우다. “장모 앞에서 항상 죄인된 기분”이라는 그는 “장모 목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맥박이 빨라진다”며 고통을 호소했다.국내 모 대기업에서 대리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현재 4살 연하 아내의 대학원 학비까지 대주며 성실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박씨가 장모에게 듣는 말은 매번 ‘비전이 없다’는 말이 고작이다. 그는 “뻔한 월급쟁이 봉급으로 어떻게 살 생각이냐는 말은 하도 들어 아주 이골이 날 지경”이라 토로했다. 특히 “의사한테 시집보내려고 기껏 많이 가르쳐놨더니 고작 샐러리맨을 사위로 맞았다“며 대놓고 속상해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결혼한지 3년이 넘었지만 아직 혼인신고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장모는 ‘만에 하나 잘못될 경우 인생에 흠집낼 일 있냐. 좀 더 살아보고 해도 늦지 않다’며 극구 말리고 있다. 박씨는 “장모의 명령에 좌지우지되는 결혼생활에 이미 흥미를 잃었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심하면 손찌검까지도 일삼아

박씨가 잠시 망설이다 털어놓은 얘기는 과히 충격적이었다. 얼마전 박씨와 심한 다툼을 한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친정으로 가버렸다. ‘친정에서 잘 타일러 돌려보내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은 박씨의 착각에 불과했다. 다음날 아내와 함께 집안에 들이닥친 장모는 “내 딸 고생시키려고 결혼했냐”며 대뜸 손지껌부터 해대더라는 것. 그것도 모자라 장모는 “어차피 혼인신고도 안했으니 겁날 것 없다. 능력도 없으면서 내 딸 앞길 망치지 말고 당장 헤어지라”며 직접 아내의 짐을 싸서 친정으로 데려갔다. “남들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있는데도 불구하고 매번 능력과 비전을 운운하는 장모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박씨는 “결혼 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전세값을 도움받은 것이 화근이었다”며 착찹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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