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범죄인 인도 절차 허술, 제3국 탈출 용이
프랑스는 운신 폭 넓고 가족 있어 도피생활 유리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종교 지도자’ ‘그룹 회장’이라 불리던 유병언, 그의 도주 행각이 여느 범죄자 못지않다. 금수원 탈출, 비밀별장 은신, 차량도주, 교란, 밀항, 망명 시도 등 국민들은 언론을 통해 중계되는 그의 도주 소식을 영화보다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다. 유씨는 올해 73세다. 아무리 태권도로 몸을 단련해 왔다지만 경찰·검찰의 검문과 수색을 피해 20일 넘게 도주하는 길이 편하지만은 않을 터. 검찰은 이제 유병언 체포를 위해 장기전에 돌입할 모양새다. 현상금을 높여가며 시민들의 신고를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결정적인 제보도 없다. [일요서울]에서는 장기전에 돌입하는 유병언 추적 상황을 진단하고 그의 도피 시나리오와 함께 새롭게 밝혀지는 계열사 현황을 알아보고자 한다.
금수원에서 경찰의 단단한 포위망을 뚫고 탈출한 유병언이 순천의 비밀별장 ‘숲속의 추억’에서 꼬리가 밟힌 뒤 감감무소식이다. 이후 유씨의 운전기사 양회정씨의 차량이 전주의 한 장례식장에서 발견되면서 전주로 도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지만 차량 지문검사와 체포된 양씨 및 구원파 신도들을 통해 차에 유씨가 타지 않은 것이 확인이 됐다.
수사관계자들은 유씨와 구원파 신도들이 전략적으로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교란작전을 펼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유씨가 양씨와 지난달 25일 순천에서 급히 헤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에서는 유병언 전 회장이 순천 일대를 벗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색을 강화하고 있다.
시나리오1
해외 망명, 프랑스·체코?
최근에는 유씨가 해외로 망명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사기관이 허를 찔린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높다. 외교부는 유씨 측이 망명을 시도한 국가가 어디인지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외교관례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유씨 가족들의 행동을 따라가 보면 유씨가 어디로 망명을 신청하려 했는지 대략 짐작해 볼 수 있다. 먼저 현재 유씨의 장녀 섬나씨는 프랑스에 있다. 비록 프랑스 수사기관에 의해 구속돼 국내 송환을 앞두고 재판을 준비하며 시간을 끌고 있지만 또 프랑스에는 유씨가 사 놓은 마을도 있다. 프랑스 남부지역에 있는 시골마을 쿠프베피 마을이다. 해발 557m 언덕 정상에 위치한 마을로 농가 19채, 수영장ㆍ테니스장 등이 자리하고 있다.
5월말에는 미국에 있는 차남 혁기씨가 미국에서 항공편을 이용해 프랑스로 출국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유씨의 프랑스 망명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국내에 있던 장남 대균씨도 프랑스 입국을 시도한 바 있다.
체코도 유력한 망명지로 떠오르고 있다. 유씨의 매제인 오갑렬(60)씨가 체코대사를 지낸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 전 대사는 유 회장이 2011〜2013년 프랑스 등 유럽 지역에서 개인 사진전을 개최할 때 대사 지위를 남용해 이를 도운 혐의로 외교부 중앙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시나리오2
해외 밀항, 여수·군산·궁평?
수사기관에 의해 해외망명 시도가 발각된 가운데 다음 도피 시나리오로는 항구를 통한 밀항이 유력시 되고 있다. 특히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춘 순천은 광양, 여수, 군산 등 항구 도시가 한 두 시간 거리에 있기 때문에 포위망을 뚫고 충분히 도주를 시도할 수 있는 위치다.
중국으로의 밀항을 꿈꾼다면 화성에 있는 궁평항도 유력한 밀항시도지역으로 점쳐지고 있다. 궁평항은 지난 2012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밀항을 시도하다 붙잡힌 곳이기도 하다. 궁평항의 한 어민은 “몇 천만 원만 주고 가자고 하면 가죠. 날씨만 좋으면 공해상으로 나가는 건 문제가 아니다. 요즘은 장비들도 좋아서 가능하다”고 전했다.
충남 서산도 밀항이 가능한 항구다. 지난 2008년에는 4조 원대의 다단계 사기를 친 조희팔이 중국으로 밀항을 떠나기도 했다. 이밖에 인천도 밀항이 가능해 수사기관에서는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으로의 밀항이 주목받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가깝고 입국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또 밀항꾼’들이 있어 금액만 맞으면 밀항자들의 신분이나 도주경로 등을 발설하지 않아 은밀한 밀항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중국은 범죄인 인도 절차가 상대적으로 허술한 데다 동남아시아 국가와 인접해 있어 제3국 탈출이 용이하다.
보통 전문 브로커를 통해 일반 어선을 타고 서해로 나가 중국 어선으로 갈아탄 뒤, 출입국 심사를 피해 산둥지역 같은 배가 닿을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방식이 많이 사용된다.
시나리오3
국내 은신처 은신, 금수원 컴백?
당초 수사기관이 가장 우려를 한 부분이 구원파 신도들이 조직적으로 유씨 일가를 숨겨주는 경우였다. 유씨가 운영했던 기업들이 전국에 분포해 있는 만큼 숨을 공간도 많은 데다가 신도들의 조직적인 비호가 있다면 수사기관이 유씨 일가를 구속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마지막으로 목격됐던 순천의 ‘숲속의 추억’ 별장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전략적인지를 알 수가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 수사기관과 유씨의 도피 행각을 ‘정규군과 게릴라의 싸움’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수사기관이 순천으로 유씨 추격에 나선 것은 5월 25일이었다. 당시에는 별장을 수색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염소탕집을 수색하러 갔다. 그런데 염소탕집 주인이 수사기관이 들이 닥치자 소리를 지르고 저항을 했다. 그 사이에 별장에 있던 유씨는 짐을 급하게 챙겨 달아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별장에서는 염소탕집이 보이지만 염소탕집에서는 별장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유씨는 수사기관이 염소탕집을 수색하는 동안 별장 뒤 폐터널을 통해 도망을 쳤다. 유씨가 검찰을 가지고 논 것이다.
전문가들은 “은신처에서도 정작 자기가 숨어 있는 데와 그 이전에 검찰이 들이 닥칠 만한 데를 이중으로 만들어 놓고 본인은 퇴수로까지 확보해 놓을 것을 보면 상당히 지능적이다”라고 말했다.
순천이 있는 전남지역에는 유병언의 핵심 근거지가 될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대표적인 곳이 여수인데 여수에는 청해진해운 본사가 있다. 또 다른 곳으로는 두 아들이 대표로 있는 몽중산 다원 영농조합이 있다. 그 다음으로는 완도 인근 보길도와 노화도에도 영농조합들이 있다. 그 외의 섬들도 유씨에게 은신처가 될 수 있는 공간들이다.
현재 유씨가 국내 은신처에 숨는다면 금수원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본인이 좋아하는 자연과 함께 할 수 있고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외부출입이 어려운데다가 수백명에 이르는 열성 신도들이 인의 장막을 치고 있어 수사기관이 쉽게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만 보내며 유씨를 잡지 못하는 수사기관으로서는 검거에 대한 압박으로 어떻게 해서든 금수원 진입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게다가 최근 금수원 내에서 유씨 도피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명 ‘김엄마’에 대한 체포 영장도 발부된 상황이어서 수사기관의 금수원 진입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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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