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밝혀진 진실 “유가족 한 풀었지만…”
15년 만에 밝혀진 진실 “유가족 한 풀었지만…”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4-06-09 11:18
  • 승인 2014.06.09 11:18
  • 호수 1049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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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건] 대구 여대생 고속도로 의문사

유가족 계획적 살인 VS 경찰 무단 횡단 사고사
“증거 부족 및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할 수 없다?”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대구의 어느 고속도로에서 사망한 여대생 A(당시 19세)씨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15년 만에 드러났다. 경찰이 단순 사고사로 수사종결했으나 유가족이 여러 의문점을 제기해 집요하게 노력한 결과다. 범인은 당시 인근공단에서 일하던 스리랑카인 B씨. 그는 사건 당일 정씨를 집단 성폭행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재조사를 통해 15년 만에 범인이 잡혀 유가족이 한을 풀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증거불충분과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B씨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유가족 측은 이에 대해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15년 만에 밝혀진 A씨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1998년 10월 17일.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K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A(당시 19세)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남자친구와 함께 오후 10시 30분께 교문을 나섰다가 10분 뒤 행방불명됐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5시 10분께 정씨는 학교에서 4km 떨어진 고속도로에서 무단횡단을 하던 중 덤프트럭에 치여 그 자리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A씨가 사라진 16일 오후 10시 40분부터 17일 오전 5시 10분까지 6시간의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 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A씨의 속옷이 사고 현장에서 30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됐다. 이를 본 유가족은 ‘성폭행 후 계획된 살인’을 의심했지만 경찰은 A씨 사망사건을 고속도로 무단횡단에 의한 사고사로 결론내렸다.

사라진 속옷 경찰 수사 의지없어

그러나 유가족들은 경찰의 수사 종결을 납득할 수 없었다. 단순 사고사라고 볼 수 없는 의문점이 많았던 탓이다.

우선 덤프트럭 운전자의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고 유가족과의 만남을 기피하고 있다는 점이 의문스러웠다. 또 A씨의 교통사고 현장에서 출혈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고 속옷도 없어진 상태에서 겉옷만 입고 있는 것은 성폭행을 당한 것이 확실하다고 추측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사라진 속옷 중 팬티와 거들은 사고현장에서 30m 떨어진 가드레일 아래 도로에서 발견됐다. 이곳은 교통사고 직후 덤프트럭이 차를 세운 곳이다.

유가족이 A씨의 속옷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 영안실을 찾았을 때 병원 직원이 A씨의 바지주머니 안감을 보이며 팬티라고 주장했고, 발견 당시에는 입고 있지 않았던 새 브래지어가 A씨에게 입혀 있었지만 경찰은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A씨의 부검서에는 “역과(자동차가 밟고 넘어간 것) 손상에서는 출혈이 없어 역과시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기록됐다. 이에 유가족은 범인이 A씨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뒤 누군가의 도움으로 교통사고 해결사 조직을 동원해 고속도로 무단횡단 교통사고로 위장, 완전범죄를 기도했고 범행 은폐를 위해 범인이 경찰과 부검 교수, 영안실 직원에게 로비·외압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의문을 제기하는 유가족에게 “교통사고가 아님을 증명해 오면 덤프트럭 운전자를 구속하겠다”고 말하는 등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또 경찰은 발견된 A씨의 속옷에 대해서 “늘어지고 색이 바란 것으로 보아 처녀(A씨)의 것이 아니다”며 무시했다. 이에 유가족은 15년 동안 경찰을 상대로 100여 건에 달하는 진정·고소 등을 제기하면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검출된 DNA 용의자 B씨와 일치

그러다 2002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발견된 속옷의 DNA 채취를 통해 A씨의 속옷임을 밝혀냈다. 또 속옷에서는 남자의 정액도 함께 발견됐다. 유가족에게는 한줄기 희망이었다.

그리고 사건 발생 15년 뒤인 지난해 9월 DNA를 통해 마침내 범인이 검거됐다. 범인은 당시 인근 공단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던 스리랑카인 B씨였다. 그는 사건이 발생했던 1998년 10월 16일 외국인 노동자 2명과 함께 귀가하던 중 A씨를 납치해 자전거에 실은 다음 고속도로 굴다리 밑으로 데려가 집단 성폭행을 했다고 자백했다. 그 후 자신들은 현금과 학생증을 빼앗은 뒤 돌아갔고 A씨가 사망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에 유가족은 “B씨가 증거 인멸을 위해 A씨를 살해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담당검사는 인터뷰에서 “옛날 부검 결과와 교통사고 조사 내용 재감정에서 A씨는 덤프트럭과 충돌로 사망했다고 나와 있다”며 “트럭 앞부분에 머리카락과 혈흔 등이 있다. 적어도 죽은 상태로 고속도로에 던져진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검찰은 B씨를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열린 재판에서 재판부는 B씨를 공소시효 만료 및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 결과에 대해 A씨의 유가족 측은 “미리 예상했던 일”이라며 “전면 재수사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미 예상한 일 전면 재수사 필요”

A씨의 아버지 정모씨는 지난 2일 라디오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당사자가 살인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건의 핵심 인물(수사진, 트럭 운전사, 부검의 등)이 증인으로 나오지 않아 무죄 판결을 예측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어 “당시 사진 정황이나 모든 증거를 수사관들이 없애버렸다. 따라서 모든 것은 전면 재수사해야 한다”면서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재판부가 무죄판결을 내린 이유인 증거불충분과 공소시효 만료다. 검찰은 A씨의 속옷에서 채취한 DNA와 B씨의 DNA가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13년 전 DNA를 채취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유가족 측에 의하면 A씨의 속옷이 ‘누군가 불태워버려’ 현재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재조사는 불가능하다. 증거불충분을 보강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또 1998년 당시 특수강간죄는 공소시효가 10년이었다.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지 6년이나 지난 것이다.

이에 대해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검찰은 이미 소를 제기할 수 없음과 죄를 입증할 증거가 없음을 알면서도 기소했다”며 “아주 나쁘고 악의적인 쇼를 벌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표 소장은 “검찰이 DNA채취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전혀 항소할 이유가 없다”면서 “그러나 공소시효 여부와 관계없이 어떤 방식으로든 철저한 재수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검찰은 “피해자가 사망해 간접·정황증거로만 범죄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직접 증거만 인정했다”며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A씨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드러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hooks@ilyoseoul.co.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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