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재 ‘진혼제’연 대한불교 예명원 김현정 원장
49재 ‘진혼제’연 대한불교 예명원 김현정 원장
  • 조아라 기자
  • 입력 2014-06-09 09:43
  • 승인 2014.06.09 09:43
  • 호수 1049
  • 6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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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현지취재]세월호 참사 희생자 넋을 위로하고 국가 안녕 위해...

▲ <사진=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일요서울 | 조아라 기자]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49일째인 지난 3일. 전국에서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49재가 봉행됐다. 장례 의식 중 하나인 49재는 칠칠일(49일) 동안 이승에 머물렀던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떠나보낸다는 의미다.

49재는 대개 북방불교에서 전승된 불교의식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도교와 전통 무속신앙과 연결돼 49일간 저승에서 판결을 받는다는 내용의 전래도 있다. 무속인이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위령제를 지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대한불교 예명원 김현정 원장은 세월호 침몰 49재를 맞아 무속인들과 함께 진도 현장을 찾아 세월호 참사로 인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국가 안녕을 위한 "진혼제"를 지냈다. [일요서울]은 김현정 원장과 동행해 진도 현지를 찾았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5시. 서울에서 진도 팽목항으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했다. 무섭게 내리쬐던 초여름의 햇볕도 전 날 내린 비에 씻긴 지 오래였다. 꼬박 5시간을 달려 도착한 진도 팽목항에는 잔뜩 흐린 비구름만이 가득했다. 바람은 차고 날은 추웠다. 육안으로 봐도 물살은 빠르게 흘러갔다.

잠시 팽목항에 머문 버스는 곧 5분 정도 떨어진 서망항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김 원장과 일행은 두 대의 어선에 나눠 타고 바다로 떠났다. 이날 배에 탄 인원은 서른 명 남짓. 그 중에는 직접 천도(薦度) 재를 진행할 무녀 20여 명도 함께였다.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전 날 발효된 풍랑주의보대로 파도는 높았다. 베테랑 선장도 파도가 거세어 배를 댈 장소를 찾아 30분 남짓을 달렸다. 배는 서망항에서 1마일 떨어진 해상에 멈췄다. 넘실거리는 파도가 고스란히 배 위로 전해졌다. 세월호 사고가 난 지점은 천도재가 진행되는 곳에서부터 13마일 정도 떨어진 곳이라고 했다.

“사고가 난 해역 가까이 가고 싶어도 그곳은 파도가 너무 거세어 배를 멈추고 재를 지낼 수 없는 곳이다. 재는커녕 멈춰 서 있기도 힘들다. 바다에서 재를 지내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흔하면 큰일날 일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하면 이렇게라도 할까 싶다.” 파이넥스 호의 선장 전석봉 씨는 울렁이는 파도를 보며 말했다.

▲ 장구를 치며 명부시왕의 이름을 읊는 의식
배가 멈추자 분주하게 음식상이 차려졌다. 배 주변에는 죽은 자의 넋을 받는 종이인형 넋전이 둘러졌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김 원장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과의 대화에 나섰다. 사방으로 징을 치며 혼잣말을 읊조리는 모습이 경건했다. 김 원장의 인사가 끝난 뒤 큰 무녀가 장구를 치며 명부시왕(冥府十王)의 이름을 읊는 것으로 재가 시작됐다. 명부시왕은 사후세계의 심판관이다. 그 중 염라대왕은 대표적인 명부의 왕으로 신앙되고 있다. 장구를 치며 재를 주관하던 큰 무녀는 북받쳐 오르는 슬픔에 잠시 눈물을 닦아내기도 했다. 이후 무녀들은 쌀을 담은 밥그릇을 무명에 쌓아 바다 속에 던졌다. 밥그릇을 건져 올리면 혼이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다는 무녀의 말처럼 깨끗했던 쇠 밥그릇에는 동그랗게 큰 자국이 생겨 있었다.

▲ 넋을 건져올리는 의식
밥그릇을 다 건져낸 뒤에는 혼령을 부르는 씻김굿인 사령제(死靈祭)가 시작됐다. 큰 무녀는 풍악소리에 맞춰 청배(請拜) 무가를 추며 신을 굿판에 청했다. 사령제는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 저승으로 천도하고 산 사람의 안녕을 빌기 위한 의례다. 일종의 한풀이다. 무녀는 굿으로 한을 풀어야 이승과 저승을 떠도는 잡귀가 되지 않다고 했다.

사령제를 진행한 큰 무녀의 의식 이후 자연스럽게 음식 방생으로 이어졌다. 방생을 시작하자 원통한 넋 때문인지 흐릿했던 하늘에선 끝내 빗방울이 떨어졌다. 김 원장은 49재를 준비하면서 일반적인 제사 음식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도 함께 준비했다. 피자, 빵, 초콜릿, 탄산음료 등도 바다에 함께 뿌려졌다.

“원장님께서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준비를 하실 줄 몰랐다. 재를 보면서 마음 속 죄가 조금 씻기는 느낌이었다. 사회의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말이다. 혼자서는 진도까지 찾아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원장님 덕분에 진도까지 함께할 수 있었다.” 49재에 참여한 김혜성 씨는 큰 무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 바다에서 건져올린 쇠 밥그릇
▲ 혼령을 위로하는 의식

음식에 이어 극락왕생을 바라며 국화와 종이학의 방생도 이어졌다. 김 원장이 직접 준비한 종이학 300여 마리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엄마를 상징한다고 했다. 종이학에는 먼 길 떠나는 자식을 곁에서 지켜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모든 방생이 끝난 뒤엔 무녀들이 무명천을 가르는 것으로 천도재가 마무리됐다.
▲ 무명천을 가르는 천도재 의식
▲ 꽃을 방생하는 김현정 원장

“중간에 비가 와서 재를 축약한 게 아쉬웠다. 그래도 넋을 위로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재를 진행할 큰 무녀들을 모시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뜻이 맞아 모이게 됐다. 희생자 모두가 극락왕생하길 바란다.”
김 원장은 49재 "진혼제"를 마친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chocho621@ilyoseoul.co.kr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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