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최선입니까” 개운치 않은 브라질월드컵 출정식
“이게 최선입니까” 개운치 않은 브라질월드컵 출정식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4-06-02 14:19
  • 승인 2014.06.02 14:19
  • 호수 1048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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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전 부진한 공격과 허술한 수비로 홍명보호 답습
포스트 박지성 발굴, 체력과 정신력 극대화가 성패 좌우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2011년 유행어까지 만들어내며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주인공 주원(현빈 분)은 자신이 경영하는 백화점 임원들이 기획안을 들고 올 때마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는 말로 다그치고 꾸중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데 지난달 28일 국내에서 열린 마지막 평가전인 튀니지전에서의 무기력했던 홍명보호를 보면 이 질문이 떠오른다. 본격적인 숭부를 걸어보기 전이어서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개선되지 않은 상황은 본선무대에서의 먹구름을 예고하고 있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달 8일 논란 속에서 최종엔트리 23인을 선정해 한차례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예년보다 젊은 선수들과 해외파를 대거 기용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에 최종엔트리에 선정된 23명의 태극전사들은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개인별 훈련 및 본격적인 전술훈련에 들어갔다.

하지만 최종 엔트리의 첫 평가인 튀니지전에서 홍명보호는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또 한 번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이날 홍명보호는 전체적으로 팀플레이에서 매끄럽지 못한 장면들을 연출하며 튀니지에 0-1로 패했다.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장해 75분을 소화한 박주영(왓포드)은 지난 3월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가벼운 몸놀림으로 득점포를 가동한 데 비해 이번 튀니지와의 평가전에선 다소 무거운 몸놀림을 보였고 위협적인 슈팅은 후반 교체 직전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결국 박주영은 후반 30분 김신욱(울산 현대)과 교체됐다.

이는 박주영뿐만 아니라 다른 공격수들도 마찬가지. 손흥민(레버쿠젠), 구자철(마인층) 등 공격력을 갖춘 선수들은 제대로 된 공격을 펼쳐보지 못한 채 상대 수비조차 제대로 뚫지 못했다. 답답한 공격은 중거리 슛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하지 못했다.

한국 축구의 주요 무기였던 세트피스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전반 15분 기성용이 찬 코너킥을 홍정호가 헤딩슛으로 연결한 정도만 위협적이었다.

수비도 시간이 흐를수록 쉽게 공간을 내줘야 했다. 이에 튀니지 공격진은 허를 찌르는 크로스와 순간적인 침투 패스를 바탕으로 공격에 나섰다. 반면 한국 수비진은 한발 늦게 수비했고 특히 중원에서부터 압박 부재로 인해 상대 공격진이 쉽게 한국 진영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

여기에 전반 41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다우아디의 프리킥이 골키퍼 정성룡의 정면으로 쉽게 향할 정도로 수비 위치 선정에서조차 불합격판정을 받았다.

결국 전반 43분 튀니지의 단 한 번의 역습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한국 수비진은 3명이나 있었지만 빠르게 치고 올라온 다우아디에게 한 번에 뚫리면서 수비불안과 조직력 부재를 단적으로 들어냈다.

이날 홍명보호는 볼 점유율과 공간 점유율에서 우위를 지켰으나 슈팅수에서는 튀니지에 밀렸고 상대는 1.5군으로 구성된 수준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했다.

튀지니 전 홍명보호에 없는 3가지

이처럼 졸전을 펼친 홍명보호에 대해 우선 100% 올라오지 않은 선수들의 몸 상태를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선수들 중 상당수가 최근 시즌이 종료된 유럽무대에서 뛰다보니 아직 몸이 무겁다는 게 중론이다.

통상 선수들의 개인 컨디션을 점검하는 지표로 경기 중 패스를 받을 때 공을 몸에 붙여 놓는 트리핑 감각을 따져보는데 이날 선수들의 퍼스트 터치가 다들 좋아 보이지 않았다. 몸에 속도를 붙이는 가속 스피드와 세밀함이 중요한 마무리(패스, 크로스, 슈팅) 기술도 매끄럽지 못했다. 이는 선수 개인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는 걸 보여줬다.

이에 대해 이케다 세이코 대표팀 피지컬 코치는 “선수들의 몸 상태는 60~70%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선수들이 자신의 플레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다보니 조직적인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컨디션 상태는 이번 졸전의 이유로는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이날 경기 중 가까이서 선수들을 추스를 수 있는 경기장 안의 감독이 없었다는 점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 마디로 박지성이 없었다는 것.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벤치의 감독 역할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을 추스르는 역할을 하는 박지성 같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경기가 안 풀리면 누군가는 나서서 소리도 지르고 눈빛도 마주치고 해야 했지만 홍명보호는 하나 같이 조용했다.

후반 중반 홍정호(아우크스 부르크)가 상대의 깊은 태클에 부상으로 쓰러져 선수들이 다소 흥분했을 때도 누군가 잡아주는 역할이 없었다. 결국 위기관리 능력의 한계만 드러냈다.

이는 홍 감독이 올 초 박지성을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인 이유다. 하지만 은퇴를 선언한 박지성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대체자원을 찾아내는 문제도 해결할 과제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4-2-3-1 포메이션에서 공격 꼭짓점에 위치한 박주영이 무거운 움직임을 보이며 공격패턴이 꼬여버렸다. 홍 감독은 전술 스타일상 타기형 스트라이커를 세우지 않기 때문에 원톱이 공격 2선(손흥민-구자철-이청용)과 위치 전환 등을 통해 파괴력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박주영은 실전에 나서지 못한 석 달간 공백의 여파인 듯 이렇다 할 슈팅조차 때리지 못했다.

이에 공격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박주영 개인의 컨디션 회복도 중요하지만 이와 별도로 김신욱, 이근호(상주 상무)를 비롯해 제로톱, 투톱 등의 두 번째, 세 번째 공격 대안과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더욱이 홍 감독이 월드컵 본선 1년을 앞두고 지휘봉을 잡으면서 그간 수비 조직력에 시간과 노력을 쏟은 데 비해 공격 라인 조정과 완성도 점검이 뒤로 밀려 있어 아직까지 정상적인 공격에 올라선 적이 없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또 이번 경기에서 수비마저 무너지면서 그간 홍 감독이 외쳐온 하나의 팀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어 큰 아쉬움을 남겼다.

엔트리 논란과 부상극복 최대과제

비록 많은 문제점을 남긴 튀니지전이었지만 아직 월드컵 첫 상대인 러시아전까지는 20여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섣불리 예단하기는 이르다.

이날 홍 감독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고 지난달 30일 최종전지훈련지인 미국 마이애미로 출국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튀니지전을 통해 훈련 방법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홍 감독은 “1년 전에 부임해서 많은 준비를 했고 우리의 부족한 점과 강점을 파악했다. 튀니지전을 끝으로 어떤 훈련을 할지를 정했다”며 “패배로 끝난 튀니지전에서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 몇 가지를 골라서 준비할 것”이라며 “세계적인 선수들과 거친 플레이를 해야 한다. 남은 기간 동안 개인적인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중점을 두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홍 감독은 또 “지금 선수들의 몸 상태는 80% 정도다. 체력 훈련을 두 차례 계획하고 있고 심폐기능과 파워를 올릴 수 있는 훈련을 하겠다”면서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성패는 체력 수준을 얼마만큼 극대화 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고 설명했다.



경기 후 조르제 리컨스 튀니지 감독도 “평가전 패배로 상황이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에 가서 체력적, 정신적으로 가장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엔트리 선정 논란의 주인공이었던 박주영과 윤석영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또 선수들의 부상도 축구대표팀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홍 감독의 지나친 감싸기와 ‘황제 훈련’ 논란까지 일었던 박주영은 이번 튀니지전에서 부진하면서 2선에 포진한 손흥진, 구자철, 이청용 등이 박주영과의 협력 플레이 대신 개인플레이에 의존해야 했다.

또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좋은 컨디션을 보인 박주호(마인츠)를 밀어내고 대표팀에 발탁된 윤석영(QPR)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윤석영은 올 시즌 내내 소속팀에서 벤치신세를 면치 못하면서 박주영과 마찬가지로 실전감각이 무뎌진 상태다.

윤석영은 전반 초반 두 차례 부정확한 크로스로 공격 기회를 끊었고 수비에서도 인상적이지 했던 터라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는 게 관건으로 떠올랐다.

또 이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왼 손을 가슴에 대고 경례해 논란을 일으켰던 기성용도 오른쪽 무릎 부상에서 회복한 뒤 맞은 첫 번째 경기였던 만큼 경기 감각을 찾지 못해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기성용은 출국 전 기자회견에서 “경기를 하기 전에 무릎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면서 왼손 경례 논란에 대해서도 “여기(무릎부상)에 집중하다 보니깐 (경례에) 집중하지 못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와 함께 당초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던 김진수(알리벡스 니가타)는 일본리그에서에서 발목 부상으로 결국 낙마했다. 대신 시즌 도중 오른쪽 새끼발가락 부위의 염증이 악화돼 수술을 받은 박주호가 브라질 월드컵 본선무대 진출의 꿈을 이루게 됐다.

송준섭 축구대표팀 주치의는 “박주호가 축구화를 신고 공을 다룰 정도까지 회복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주호 역시 부상으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마이애미 전지훈련 때 왼쪽 풀백 라인을 강화해야 하는 숙제를 남겼다.

이외에도 튀니지전에서 홍정호가 후반 14분 튀니지 공격수 이삼 제마의 태클에 쓰러져 왼쪽 발목에 부상을 입어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선수들의 부상관리가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제 홍명보호는 지난달 31일 마이애미 전훈 캠프 숙소인 턴베리 아일 리조트로 이동해 본격적인 최종 주전 경쟁에 들어갔다. 또 오는 10일 가나와의 평가전을 통해 브라질 월드컵 H조 러시아와의 조별 리그 1차전에 나설 베스트 11을 확정할 계획이다.

홍 감독은 사실상 1차전 성적이 조별리그 통과의 성패를 좌우하는 만큼 ‘러시아 사냥’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이에 훈련 스케줄 역시 1차전에서 100%의 컨디션을 만드는 것에 맞춰져 있다.

여전히 불안한 문제점들을 노출하고 있지만 홍 감독이 말한 “침체돼 있는 한국에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처럼 원정 8강을 위해 태극전사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명승부를 기대해 본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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