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⑳-창조경제와 기업가정신
기획연재⑳-창조경제와 기업가정신
  • 인터넷팀 기자
  • 입력 2014-06-02 11:56
  • 승인 2014.06.02 11:56
  • 호수 1048
  • 4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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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고난을 통하여 완숙된다

S은행 점포통폐합과 눈물의 비디오를 아시는가. IMF구제금융 선포 이후 구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은 역사의 유물이 되었다. 10년 전, 제일은행 ‘내일을 준비하며’라는 눈물의 비디오를 보자. 나의 잘못도 아니고 우리의 잘못도 아닌 비극이 다시 오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비디오를 다시 한 번 봤다. 젊음을 바친 직장에서 떠나며 후배들에게 비장하게 말하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한보그룹과 기아그룹의 부도 등으로 부실금융기관의 대명사가 된 S은행은 IMF구제 금융과 함께 퇴출은행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은행은 경영효율성 제고를 위해 점포통폐합을 실시하게 되었다. 점포통폐합은 비용절감을 통한 점포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자산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이다. 점포당 생산성 향상을 높이기 위해 재직자의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등 조직 슬림화 차원에서 실시하게 된 것이다. 내부적으로 인원감축을 통한 점포의 통폐합 등 조직의 내실을 다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IMF에 긴급구제 금융을 신청하고 은행을 떠나야만 하는 한 여직원의 고백이 모두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직장을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은 물론 이 비디오를 보는 일반인들도 눈물을 펑펑 쏟았다. 당시 대기업과 관공서며 청와대까지 직원 교육용으로 쓰이게 되었다.

눈물의 비디오 주인공들 중에서 당시 제일은행 홍보팀에서 이 비디오를 제작한 이응준씨는 외환위기 한파에 몰린 1997년 겨울 8분 남짓한 영상물을 제작했다. 그는 지금 제일은행을 떠나 K은행 홍보팀에서 근무 중이다. 이 비디오는 1997년 말부터 1400여개가 만들어졌다. 영상물에는 영업점 통폐합을 앞둔 당시의 제일은행 테헤란로 지점 직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부실기업처리 업무를 담담하게 처리하는 실상을 담은 것이다. 철밥통의 대명사라고 일컬어지던 은행원이 명퇴라는 이름으로 은행을 떠나게 된 것은 엄청난 세월을 통과히는 과정이였다.

‘명퇴’라고 하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동화, 평화, 대동은행의 간판이 이어사 사라지고 우량기업이 한순간 역사 속으로 흘러갔다. 이때 사람들이 느끼던 불안감은 상상을 초월했고, 제일은행 직원 1만명 중 4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주인공 이삼억 차장은 건강을 잃어 2000년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명퇴 후 자영업에 뛰어든 상당수 직원들이 많은데 하루아침에 나온 터라 준비부족으로 딱히 내세울 무기도 없던 터라 창업에 실패하여 자살한 직원도 있다.

왜 그토록 눈물을 흘렸는가? 머지않아 자신들도 매 맞을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비디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눈빛은 좌절을 경험한 눈빛이다.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한 은행 간부가 말했다.

“직원 절반을 내보낼 때의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1998년 외환은행 부행장 메어포터의 말이다.

금융기관 그것도 대형은행의 몰락이란 깨진 전설이 되었다. 미국의 간판 초대형 은행마저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금융위기를 맞았다. 이제 은행의 대마불사 신화가 무너졌고, 우리경제의 투명성과 대외개방이 획기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은행의 부실을 없애기 위한 부실금융기관 감독원칙이 요구된다. 미국은행 중 자산 규모 2위인 씨티그룹이 무너진 것은 너무나 큰 사건으로 우리에게 준 충격은 대단하다.

고난과 역경을 긍정의 힘으로 극복하자. 좌절을 극복하고 다시 건강한 시절을 회복하는 삶의 의미를 발견한 실존적 인물들이 많이 있다. 뇌성마비 장애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조지메이슨 대학에서 특수 보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유선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역경은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 넘기는 데 필요한 능력이 된다.

우리도 경제위기를 자신감으로 극복하자. 용기를 잃지 않고 이 정도는 헤쳐나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자. 일제강점기 36년 압박의 세월과 6.25 동란 후의 좌절과 비애를 거뜬히 극복해 낸 자랑스러운 국민이다. 고통이나 절망에서 이를 극복하면 더 강해지고 꿋꿋한 인물이 된다. 자기에게 닥친 시련 때문에 좌절하다가도 다시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좌절은 만병의 근원이다.

빅뱅이 현재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가 있었다. 자신의 좌절의 순간들을 솔직히 인정하고 꿈을 향해 끝없이 도전한 결과이다. 끝없는 학구열과 도전정신으로 ㈜놀부 김순진 회장이 박사학위를 받았다. 놀부보쌈의 김순진 회장은 고향 충남 논산에서 서른이 넘어 상경하여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음식점, 옷가게 등을 차렸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3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연구한 결과, 1987년 서울 신림동에 놀부 보쌈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1989년에 서울 상도동에 가맹 1호점을 내면서부터 더 이상 장사가 아닌 사업이 되었다. 초등학교 학력의 김 회장은 서른이 넘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해 한식 프랜차이즈 사업을 성공시킨 뒤 많은 체인점을 늘리며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김 회장 역시 여러 번의 어려움을 견뎌낸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시대상황에 의해 고난과 시련에 찌든 현실적 자아가 역경과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차라리 역전을 위한 좋은 기회로 삼아야겠다.

당신은 수첩에 이루고자 하는 꿈의 목록을 가지고 사는가? 막연히 열심히 해보겠다고 결심만을 하는가? 젊었을 때 이렇게 살았으면하고 후회해 본 적은 없는가? 존 고다드의 꿈 목록은 「이집트의 나일강」「이글 스카우트 대원 되기」등을 적어 내려 ‘21세기를 맞이할 때까지 어떻게 해서든 살아 있겠다를 끝으로 무려 127개나 된 소년은 리스트 위에 ‘나의 꿈의 목록’이라는 큰 글씨를 써 넣었다.

1972년 미국의 「라이프」 잡지에 존 고다드라는 47세의 남자를 주제로 ‘한 남자의 후회 없는 삶’이라는 기사가 게재된 적이 있었다. 그 기사로 인해 라이프 잡지는 사상 최고의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그 주인공인 존 고다드가 바로 32년 전 127개의 꿈의 목록을 작성한 소년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 47세에 그는 127개의 꿈 중 104개를 이룬 후였다. 그는 의사 직업을 갖고 플루트와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었으며 마르코폴로의 여행경로를 추적하여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성경을 통독했으며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을 다 읽었고 독수리 정찰대가 되어 바다를 잠수했으며, 결혼해서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아 108개의 꿈을 이루었다. 또한 1980년에는 우주비행사가 되어 달에 감으로써 125번째 목표를 달성하였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목표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까? 도전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목표가 없기 때문일까, 혹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게으름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좋지 못한 습관 때문일까? 앤서니 라빈스(Anthony Robbins)의 저서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의 주제를 새삼 새겨볼 때이다.

 

창조경제와 기업가정신 <김의식교수>
#이 칼럼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인터넷팀 기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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