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잠식한 반얀트리 호텔 주식 담보로 사채 인수
현대엘앤알 외 엘리베이터·유앤아이 유상증자 참여도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현대그룹이 매물로 내놓은 현대증권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현대증권은 최근 그룹 내 유상증자와 사채 인수 등으로 계열사 지원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매각 후 그룹과 분리될 현대증권이 굳이 계열사를 지원해야 할 이유는 사실상 없다. 그럼에도 현대그룹은 현대증권을 통해 계열사들을 추스르고 다독이는 모양새다. 이로써 현대그룹 구조조정 아이콘인 현대증권 매각의 향방이 흔들리고 있다. 또한 현대그룹의 자구책 마련 의지도 한풀 꺾이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대증권이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엘앤알의 사채를 전액 인수했다. 지난달 2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대엘앤알은 610억 원의 무보증 사모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또 현대증권은 현대엘앤알이 가진 에이블현대호텔앤리조트 주식과 공사대금 채권 등을 담보로 이를 전부 받기로 했다.
앞서 현대그룹은 반얀트리 서울 호텔 인수를 위해 2012년 현대엘앤알을 설립했다. 하지만 인수한 반얀트리 호텔(에이블현대호텔앤리조트)은 예상보다 저조한 실적을 보였고 현대엘앤알은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현대엘앤알은 현재 영업수익이 전혀 없다. 또한 누적결손금은 460억여 원, 부채비율은 연결기준 640%다. 에이블현대호텔앤리조트는 지난해 말 기준 자본잠식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증권이 현대엘앤알의 사채를 인수하는 것은 계열사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으로 비쳐진다.
또한 현대증권은 지난 3월에도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지난해 12월 역시 현대유앤아이 유상증자에 뛰어들었다. 규모는 각각 현대엘리베이터 62억 원, 현대유앤아이 200억 원이다.
이처럼 현대증권이 매각을 앞두고 그룹 내 계열사를 지원하는 데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곧 분리될 현대증권이 그룹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것은 매각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떠올리게 한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현대증권을 비롯한 그룹 내 금융사를 모두 처분하겠다는 구조조정 계획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경제개혁연대는 현대증권의 계열사 지원이 자본시장법상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에 대한 신용공여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현대증권의 특수관계인 등에 대한 지원규모가 자기자본의 8%를 넘지 않기 때문에 아직 관련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현대엘앤알 사채의 경우 1순위 상환으로 반얀트리 호텔 매각과 동시에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면서 “과거 반얀트리 호텔 인수 때부터 참여해왔던 것의 일환”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일정 담보물이 제공됐고 신용공여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며 “증권 매각작업도 산업은행 주도 하에 계속 진행되는 중”이라고 전했다.
한편 현대증권의 계열사 지원과 관련해 구설수에 오른 현대그룹주는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9일 전날보다 5.8% 내린 3만5750원을 기록했다. 또 현대상선은 같은 날 3.41% 하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이 두 회사는 이번에 사채를 발행한 현대엘앤알의 대주주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현대엘앤알 지분은 현대상선(49.0%), 현대엘리베이터(23.1%), 현대로지스틱스(23.0%), 현대증권(4.9%) 등이 소유하고 있다. 3대주주인 현대로지스틱스는 연내 상장을 추진했으나 위험요소로 무기한 보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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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