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안에 따라 각양각색, 영향력 있는 인물 집중 로비
김영란법 통과 앞두고 새로운 로비창구 찾기 혈안 중
[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금품로비 시세가 알려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믿지 못한다는 반응이 많다. 만약 알려진 게 사실이라해도 그건 표면적인 금액일 뿐 보이지 않은 금액이 더 있을 것이란 추측이다. [일요서울]도 마찬가지다. 이번 기사를 취재하면서 보이지 않는 돈까지 찾으려한 건 의도 자체가 잘못이라는 점에 봉착했다. 다만 검찰 수사를 통해 알려진 금품로비 정황을 토대로 정관계의 시세를 파헤쳐보도록 한다.
최근 정관계 금품로비로 주목받고 있는 곳은 STX다. 강덕수 전 회장 구속 직후 정관계를 막론한 로비설이 떠오르면서 그 실체를 가리기 위한 사정당국의 수사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일각에선 강덕수 비자금 리스트가 열리고 있다는 추측까지 나돈다.
강 전 회장의 비자금은 현재까지 47억 원으로 알려진다. 인허가나 금융대출 관련 인맥들에게 개인 대 개인으로 1억~2억 원씩 전달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따르면 송광조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이 STX그룹 측으로부터 거액의 금전을 받은 정황을 잡고 수사중이다. 송 전 청장은 부산지방국세청장과 국세청 감사관으로 근무하던 2011년 3월과 같은 해 10월 각각 500만 원씩 1000만 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송 전 청장은 또한 지난해 CJ그룹 금품로비 의혹으로 수사를 받았지만 사법처리되지 않았다.
검찰은 송 전 청장이 CJ로부터 수백만 원과 골프접대를 받은 사실을 봤을 때 적극적인 금품로비 대상자라기보다는 수시 관리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이재현 CJ회장은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미화 30만 달러를 준 혐의를 받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형사처벌할 정도의 범죄 혐의를 확인하지 못해 국세청에 비위 사실을 통보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검찰은 STX그룹 측으로부터 자녀 명의로 10만 달러(1억여 원) 상당을 수수한 유창무(64) 전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에 대해서도 조만간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선급(KR) 비리를 수사중인 검찰도 전·현직 임직원들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금품로비를 벌인 정황을 포착, 주요 간부들을 상대로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한국선급 본부장 A씨가 2011년 해수부(당시 국토해양부)의 고위 공무원 여러 명에게 수백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제공한 단서를 잡았다. 또 같은 해 해수부 일반 공무원들에게도 상품권 수십만 원을 전달하고 2012년 12월 해당 공무원들에게 식사와 향응을 제공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전임 오공균 전 회장 또한 2007년 11월 한국선급의 매출과 직결된 선박안전법 개정 등과 관련해 정치권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임직원들이 국회 재경위원회와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쪼개기 형태로 후원금을 기부하도록 지시해 정치자금법 위반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일각에선 금융권도 상당히 긴장해야 한다는 후문이다. 대출을 담당하는 은행권은 로비 액수가 더 큰 것으로 알려지는데 과거 이정배 파이시티 사장이 우리은행으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청탁하면서 부장급 인사에게 20억 원대 로비를 한적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박연차 정관계 로비사건' 때와 ‘신동아의 옷 로비 의혹 사건' 때도 검은 돈이 등장했다.
박연차 정관계 로비 사건은 1999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홍기옥 세종캐피탈 사장 사이의 세종증권 매각 사건을 조사하던 중 박 회장이 수많은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검찰은 이상철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국회의원 5명을 기소했다. 이들도 적게는 수천만원을 받은 의혹을 샀다.
마찬가지로 옷로비사건은 한 해 앞선 1998년 5월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고위층 인사의 부인에게 고가의 옷을 로비한 사건이다. 검찰은 한 달 후 이 사건이 이형자의 실패한 ‘로비'라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의혹이 걷히지 않아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고, 결국 특별검사제가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현직과 전직 차이 있다
현직과 전직에 대한 로비 시세의 차이도 존재한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대관팀 직원 B씨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현직은 그 일을 직접하는 사람이다. 전직인 사람은 영향력을 행사할수는 있을 지 몰라도 현직만큼은 아니다"라며 로비 액수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했다. 다만 매번 현직과 전직 중 현직의 액수가 더 많은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업무 연관성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돈의 액수는 그 일과 관련되고 그 사람의 직무능력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설명이다.
한편, 그동안은 대가성이 입증돼야만 처벌이 가능했던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이하 김영란법)이 논의되고 있어 주목받는다. 하반기 재논의를 통해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직무관련성만으로도 처벌대상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일 담화문을 통해 “김영란법을 국회가 조속히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함에 따라 앞으로 기업 또는 이익단체들의 로비 방식에 일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김영란법이 적용되면 금품이나 향응의 범위는 ▲돈 ▲유가증권 ▲물품 ▲숙박권 ▲부동산 ▲골프 ▲교통·숙박 등을 제공했을 경우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유관기관 관계자를 모시고(?) 진행하는 골프행사나 해외시찰 모두 처벌대상이 된다. 은밀히 챙겨주던 돈봉투나 상품권은 말할 것도 없다.
국회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C기업 관계자는 “오너가 국회에 출석하는 수모를 막는 것이 존재 이유다. 평소에 (의원 관계자를) 잘 모시는 것이 (오너의 국회 출석을 막는) 유일한 대비책이었다"며 “김영란법이 통과되면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지 난감하다. 다른 대안찾기에 고심 중이다"라고 말했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