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으면 가는 곳이 요양시설, 관심을 가져달라”
“ 늙으면 가는 곳이 요양시설, 관심을 가져달라”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4-06-02 10:22
  • 승인 2014.06.02 10:22
  • 호수 1048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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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요양병원 화재 참사… 또 안전문제 대두

75세 A씨, 요양원 입원 1주일 만에 상처투성이로 응급실 행
보건노조 “실태 조사하고 인력 확충 및 대책 수립해야 할 것”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요양병원에 불이 나 21명이 사망하는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8일 오전 0시27분께 전남 장성군 삼계면에 위치한 ‘효 실천 사랑 나눔 요양병원’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80대 노인 방화 환자 20명, 간호사 1명 사망

요양병원 별관 3층 다용도실. 이곳에서 시작된 불은 병실로 빠르게 번졌다. 불은 28분 만에 모두 진화됐지만 이미 환자 20명과 간호조무사 1명이 유독가스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뒤였다.

조사 결과 화재 원인은 방화로 밝혀졌다. CCTV를 분석하던 경찰은 김모(81)씨가 화재 발생 9분 전에 다용도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그리고 김씨가 빠져나온 뒤 화재로 인한 연기가 복도로 새 나온 점을 확인했다. 경찰은 곧바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김씨를 체포했다.

현재 요양병원 희생자 유가족들은 병원 측에 여러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사고 발생 당일 오후 피해자 가족대표는 요양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병원 측이 평소 과다한 신경안정제를 투약했다는 일부 유가족의 진술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사망자의 시신을 확인한 결과 팔목에 줄로 묶은 흔적이 있다. 보건복지부가 명확한 진상을 파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화재진압과 인명구조를 지휘한 이민호 전남 담양소방서장은 “구조 상황을 보고 받았으나 소방대원이 가위로 손목을 묶은 것을 절단하고 구조한 일은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문제제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유가족들은 지난 29일 피해자들의 손목 등을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피해자들의 손목과 팔목에는 검붉은 색을 띤 상처 자국이 일부분 남아있었다. 유가족 측은 “병원이 가족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환자들의 손목을 결박한 흔적이 보인다”면서 “구조 작업을 했던 소방대원이 ‘환자들의 손과 발이 묶여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논란이 계속되자 경찰은 ‘환자들의 손과 발이 묶여 있었다’고 진술한 소방대원을 상대로 거짓말탐지기를 동원해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사망자 부검을 시작했다.

“넘어져 상처 났지만 병원에서 치료 안 해”

요양병원 화재에서 희생자가 많았던 이유로는 안전시설 미비와 관리 인원 부족 등이 거론되고 있다. 화재가 발생한 별관에는 34명의 환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간호조무사가 1명밖에 없었다. 만약 병원 인력이 더 있었다면 희생자는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요양병원을 둘러싼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 증상이 있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병원 측에서 치료를 소홀히 하는 피해 사례도 적지 않다. 간호사나 간병인으로부터 폭행·폭언을 당하거나, 음식·위생 등 기본적 서비스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요양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오모(60)씨는 지난해 80세를 넘긴 어머니를 집 근처 요양원에 모셨다. 고령에 거동도 편치 않은 어머니를 위한 선택이었다. 어느 날 오씨는 오후 9시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요양원을 찾았다가 건물 내부 불이 모두 꺼져있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요양원을 찾은 오씨는 담당자에게 “요양원은 사고 위험성 때문에 밤에도 실내 보조등을 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불을 다 꺼놓았느냐”고 물었고 담당자는 “노인들이 대부분 일찍 취침에 들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며칠 뒤 다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요양원을 찾은 오씨는 어머니 얼굴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 상처 부위가 찢어지고 살짝 부어있는 것을 본 오씨는 깜짝 놀라 담당 관리인에게 이유를 물었다. 관리인은 “넘어져서 다쳤다”며 “사고 당하신 날 바로 병원에 가서 치료 받고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리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오씨는 다음 날 요양원을 다시 찾아 병원 진료 기록과 영수증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관리인은 그제야 병원을 가지 않았다고 사실대로 고백했다. 요양원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 오씨는 바로 담당 행정기관을 찾아 이 같은 사실을 신고했다. 알고 보니 요양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민원을 제기한 상태였다. 이에 담당부서는 바로 사실 조사에 착수했고 며칠 뒤 요양원은 폐쇄 조치됐다.

요양시설의 거짓말에 속은 사람은 오씨 뿐이 아니다.
손모(77)씨는 요양원에 입소시킨 사랑하는 아내 A씨가 폭행을 당하자 2012년 신도림역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손씨는 2011년 7월 평소 지병으로 고생했던 A씨(당시 75세)를 인천에 위치한 요양원에 입소시켰다. 입소 후 매일같이 A씨를 보기위해 요양원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A씨는 요양사의 도움을 받으며 걷기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간호사가 손씨에게 한 장의 서약서를 내밀었다. 환자의 손을 묶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요양사가 너무 힘들면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한 손씨는 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런데 다음날 A씨가 실신했다. 그리고 하루만에 A씨는 응급실로 실려 갔다. 당시 A씨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입술은 부어 있었고 구석구석 타박상도 있었다. 엉덩이에서도 상처가 발견됐다. 손씨가 요양사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요양사는 “교대근무를 하려고 왔더니 이미 A씨의 입이 부어 있었고 여러 상처가 있었으며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폭행이 아닌 몸부림치다 생긴 상처로 보고 무혐의 처분했다. 이에 손씨가 직접 1인 시위에 나선 것이었다. 손씨는 “요양병원에서 발생한 사건은 당장 나에게는 관심 없는 일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내 부모는 물론 나도 늙으면 갈 수밖에 없는 곳이다. 문제점 개선을 위해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프링클러 설치도 안한 질 낮은 병원 난립

이처럼 요양병원들이 가지고 있는 환자 안전관리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요양병원에 대한 관련법에서도 소방시설 규정이 허술하다보니 스프링클러 설치도 하지 않은 병원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이번 화재 참사로도 알 수 있듯이 관리 인력 부족 또한 심각한 문제다. 비상시 환자들을 대피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요양사로 일하고 있는 김모(54·여)씨는 “간호조무사가 해야 할 일을 요양사가 떠맡는 경우가 많다”면서 “우리는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서툴다. 하지만 인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기준 국내 요양병원은 모두 1284개다. 4724개의 노인요양시설까지 모두 합치면 6000여 곳이 넘는다. 그러나 이 많은 시설 중 대다수는 제대로 된 관리 감독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요양병원 1284개 중 의료기관평가인증을 받은 병원은 230개에 불과하다. 1000여 개가 넘는 요양병원이 평가도 받지 않은 상태로 운영중이다.

거기에 2012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발표에 따르면 요양병원 의사 1명이 담당하는 평균 환자 수는 30명이 넘는다. 간호 인력은 1명이 최대 47.1명을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행 의료법상 야간 당직은 환자 200명당 의사 1명과 간호사 2명만 근무하면 된다. 화재가 난 병원도 당시 환자 34명에 1명의 간호조무사가 근무 중이었다. 이번 사고를 두고 ‘예고된 인재’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해 의료계 내부에서도 문제점 파악 및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30일 성명서를 내고 이 같은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에 ▲요양병원 운영 실태 전면 조사 ▲환자 안전 법안 및 보건 의료 인력 특별법안 처리 ▲안전업무 비정규직 고용 금지 등을 요구했다. 이어 “요양병원 환자 안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jhooks@ilyoseoul.co.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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