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보도개입 파문 초유의 사태 오고 있다
KBS 보도개입 파문 초유의 사태 오고 있다
  • 오두환 기자
  • 입력 2014-06-02 10:10
  • 승인 2014.06.02 10:10
  • 호수 1048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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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길환영 사장 ‘보도개입 의혹’ 진상조사보고서

김시곤 전 국장 “대통령 비판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길 사장, 일부는 시인했지만 나머진 “기억에 없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29일 KBS 이사회(이하 이사회)가 길환영 사장 해임제청안에 대한 표결을 6월 5일로 연기했다. 김시곤 전 국장의 사퇴 기자회견에서 촉발된 ‘청와대 보도방향 개입’으로 시작된 공정성 논란이 정리되기는커녕 이사회가 임무를 방기해 사태가 더욱더 커졌다. 사실 이번 이사회에서는 표결까지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KBS기자협회에서는 이사회를 앞두고 ‘청와대·길환영 사장 ‘보도개입 의혹’ 진상조사보고서를 제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사회는 표결을 연기해 버렸다.

이사회의 길환영 사장 해임제청안 표결 연기로 KBS 노동조합(기존 노조)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 노조)는 29일 오전 5시부터 공동 파업에 돌입했다. 직원 80%가 소속된 두 노조의 공동 파업은 2010년 노조가 분리된 이후 처음이다.

이사회는 28일 오후 4시부터 열린 정기이사회에서 제안사유 중 ‘공정성 훼손’ 부분 등을 놓고 9시간 동안 격론을 벌였지만, 표결처리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21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홍보수석이 ‘지금 사태가 위중하니까 수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잠수사들 사기를 올려 달라’며 협조요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보도협조 관행을 시인했음에도 이사회는 표결을 연기해 버렸다.

김 전 국장은 기자회견 당시 자신의 사퇴 이유가 ‘청와대의 압력’ 때문이라고 밝혔다. KBS기자협회의 진상조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김 전 국장은 길 사장이 “BH, 청와대로부터 연락이 왔다. 회사를 그만둬라. 잠시 3개월만 쉬면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또 길 사장이 “이걸 거역하면 나도 살아남을 수 없고, 이건 대통령의 뜻”이라고 회유하며 눈물까지 흘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길 사장은 이러한 말을 한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길 사장은 “자진사퇴 해라”며 자진사퇴를 제안했고 “자넨 나하고 같이 간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의 뜻’ 발언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며 “청와대 쪽에서 사퇴를 시켜라, 그런 얘기 들은 적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상조사 보고서에는 임창건 전 보도본부장이 5월 9일 길환영 사장이 유족들에게 사과를 하러 가기 전,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김시곤 국장에게 다 얘기해놨으니, 김시곤 국장의 사표를 받아라”고 지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길 사장의 발언을 뒤집는 내용이다.

진상조사 보고서에는 보도개입 의혹에 대해 밝힌 부분도 있다. 먼저 ‘해경 비판 자제 지시’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김 전 국장은 “청와대에서 해경을 비난하지 말 것을 여러 번 요청했다”며 “5월 5일 사장이 보도본부장실을 방문해 해경에 대한 비판은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길 사장은 “의견 제시한 것은 사실이나 청와대와 무관하며 유족이나 여기 저기서 나온 의견을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앞서 밝힌 것처럼 정 국무총리가 홍보수석이 이미 협조요청을 했다는 사실을 밝혔으며 실제 4월 28일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김 전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도 사실로 밝혀졌다. 세월호 사고 유족들을 대표하는 김병권 위원장으로부터 확인한 결과 해경 비판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도 없었다. 또 당시 9시뉴스 원고를 살펴보면 원고 수정 전후의 내용에서 해경비판 강도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진상조사 보고서에는 김 전 국장을 통해 대통령 보도 원칙, 국정원 아이템 순서 지시, 청와대출입기자 인사개입, 윤창중 성추행 사건 등에 대한 보도 개입 의혹과 관련된 내용도 담겨 있다.

특히 김 전 국장은 “대통령 관련 뉴스, 러닝타임 20분 내로 소화하라는 원칙이 있었다”며 “대통령 순방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 이른바 꼭지 늘리기 고민”이라며 “대통령 비판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길 사장은 “20분 내로 하라고 구체적으로 애기한 적 없다. 대통령 관련 뉴스가 로컬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앞에 배치 돼야 하겠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한 것 같다”며 일부 사실을 인정했다.

김 전 국장은 “국정원 수사 관련 뉴스는 순서를 좀 내리라든가, 이런 주문이 었었다” 또 윤창중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톱 뉴스로 올리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으나 길 사장은 “기억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고 적혀있다.

이밖에 진상조사보고서에는 길 사장이 지난 5월 16일 임창건 전 보도본부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뉴스가 멈출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감수하겠다”라고 답변한 내용도 실려있다. 당초 길 사장은 이같은 발언이 알려지고 사원들의 분노가 커지자 KBS 사원들을 상대로 한 ‘특별 담화’에서 이를 부인했으나 보고서에는 “임 전 보도본부장이 거짓말을 해야 할 동기 유무에 있어서나 임 전 본부장의 발언이 진실일 개연성이 높다”고 밝혔다.
freeore@ilyoseoul.co.kr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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