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하청업체’ 전락 친박 비주류의 반기
지나친 편중 인사…“결국 터질 게 터졌다”
법조인 출신 발탁에 부담될 듯
[일요서울 | 박형남 기자] 안대희 전 대법관의 국무총리 중도사퇴가 박근혜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인사 참사’라고 말할 수 있다. 임기 절반도 돌지 않은 대통령의 인사권이 청문회조차 못하고 야당과 언론의 검증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이번 인사 참사에 '김무성 의원 견제론'이 한 몫 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초대 국무총리 인선 때부터 인사 낙마가 이어지게 한 박 대통령의 ‘수첩 인사’ 원칙이 주요 비판 대상이다. 하지만 이번 안 전 대법관의 자진사퇴를 두고 정치적 목적 때문에 대통령의 인사권이 물을 먹은 것 아니냐는 견해도 많다. 특히 인사를 모두 관리하며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총책임자라고 지목되고 있다. 안 전 대법관의 자진사퇴에 얽힌 인사 참사의 전말을 살펴봤다.
박근혜 대통령이 안대희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낙점했던 것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다.‘국가개조론’에 비춰봤을 때 강단과 추진력을 갖춘 총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안 전 대법관만한 인물이 없다는 게 여권 내 중론이다.
하지만 안 전 대법관이 자진사퇴하면서 당내 인사들은 ‘임기 말 징후’라고까지 표현하면서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세월호 구원투수’로 나섰던 안 전 대법관의 자진사퇴는 박 대통령에게 ‘폭탄’을 안겨줌과 동시에 ‘조기 레임덕에 빠지게 만드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얘기다.
여권 관계자는 “여론의 검증을 받은 인물을 내세우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점에서 인사 스타일 대변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면서도 “안 전 대법관의 자진사퇴로 인사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인사시스템 도마위~ 국정 공백 장기화
실제 박근혜 정부 들어 중도 낙마한 케이스는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 김병관 전 장관 후보자, 김종훈·황철주·한만수 후보자 등이 있다. 이들은 인사검증 과정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김 전 총리 후보자는 토지 불법 증여, 가족 문제 등의 의혹이 불거져 자진사퇴했다. 김종훈 전 미래부 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취득과 사생활을 둘러싼 야당의 공세와 의혹 제기를 버티지 못했고, 황철주 중기청장 내정자는 주식백지신탁제로 공직을 포기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내정자는 한 건설업자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커지자 사퇴했다.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는 국외 비자금 계좌를 운영하며 탈세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백기를 들었다.
그리고 안 전 대법관은 고액 수임료 수수에 따른 전관예우 논란과 각종 의혹들이 하나둘씩 터지면서 자진사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치권 일부에선 안대희 재혼설을 둘러싼 의혹과 동서인 KMDC에 관련된 의혹, 대기업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얘기까지 나돌면서 이를 견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으로서는 후보자들의 낙마로 허탈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박 대통령이 발탁했으나 인사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인사 참사’의 원인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안 전 대법관의 사퇴로 인한 충격파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엄청난 부담으로 남게 됐다는 점도 이전 정부에서의 인사사고와 다른 점이다.
우선 세월호 정국을 정면 돌파하려 했던 박 대통령의 인적 쇄신 구상이 헝클어지면서 국정 공백이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안 전 대법관의 자진사퇴로 박 대통령의 ‘국가 대개조’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국가정보원장과 대통령국가안전실장 등 안보 콘트롤타워가 없는 상황에서 총리 인선마저 원점으로 돌아갔다. 또 내각과 청와대 개편까지 맞물려 관가가 일손을 놓을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또 안 전 대법관이 법조인 출신이라는 점도 지적을 받고 있다. 과거 주요 요직 후보자들이 대부분 법조인 출신들이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법조인 출신들을 등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8명의 법조인 출신을 주요 요직에 등용시켰던 것이다.
“지나친 편중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청와대에서는 “적임자”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안 전 대법관의 자진사퇴는 이 같은 박 대통령의 법조인 편중 인사가 결국 탈이 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보여줬다. 이는 향후 인사에서 박 대통령이 법조인 출신들을 등용하는 데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상임위원장 인선까지 개입 “김기춘 겨냥…책임론 제기”
더 나아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 비서실장이 총리 후보자 사전 검증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되다 보니 이러한 인사 참사가 발생했다는 지적도 있다.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검사나 판사 출신 공직 후보들이 변호사로 전업한 뒤 많은 수입을 올리거나 로펌에서 거액의 연봉을 받은 것이 알려지면서 청문회에서 낙마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안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로 임명하려 했던 것은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김무성 의원을 견제하려 한 것이다. PK지역 출신인 안 전 대법관이 임명되면 PK독식 논란으로 인해 서청원 의원이 당권 도전에 유리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당내 돌아가는 사정이 청와대와 친박 주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다 보니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김 비서실장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기 전부터 비주류이자 비당권파가 김 비서실장의 ‘전횡’에 대해 칼을 갈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당의 모든 일정과 인사 등을 좌지우지하려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비주류에서는 당을 청와대 하청업체로 보는 것에 불만을 쏟아낼 만도 하다.
비당권파인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 비서실장이 국회를 장악하려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해 국회는 물론 국정까지 다 잡고 있다. 아무도 못 이긴다. 대통령에게 보고할 게 있으면 김 비서실장을 거쳐야 한다. 특히 미방위 위원장 선출 과정에서 친박주류 홍문종 의원과 진영 의원이 맞붙었다. 이 과정에서 홍 의원이 ‘큰집(청와대)에서 진영 의원에게 아무것도 주지말라고 했다’는 말까지 했다고 나돌고 있다. 진 의원 역시 김 비서실장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 비서실장이 국회 상임위원장 선출 문제까지 개입한 것 등으로 인해 의원들끼리 사석에서 (김 비서실장에 대한)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김 실장의 ‘일방독주’에 대해 당내에서는 불만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특히 친박주류에선 안 전 대법관이 전관예우 등으로 인해 낙마 위기에 몰리자 ‘안대희 살리고 김기춘 죽이자’라는 말도 나돌았다. 그러나 안 전 대법관이 자진사퇴하면서 '안대희-김기춘 빅딜'은 시도도 하기 전에 무산됐다. [박스기사 참조]
결과적으로 청와대가 지방선거 이후 비주류 측이 전면에 들어설 것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안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 카드로 꺼내 당권도전에 나설 김무성 의원을 견제하려다 막다른 상황으로까지 내몰린 것 아니냐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나돌고 있다.
사실상 안대희 자진사퇴는 박 대통령의 김무성 제거 전략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여기에 ‘왕실장’ 김 비서실장의 책임론이 일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인사책임자로서 ‘민심’과 동떨어진, 실패한 인사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내에서는 “사퇴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다.
국무총리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새누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지난달 29일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총리(후보자)가 사퇴했는데 인사위원장이 책임 없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본인도 그렇게 느끼시고 (책임있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 시점에서 김 비서실장까지 그만두면 정부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당장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김 비서실장이 여권 핵심 인사들에게도 향후 거취를 정리할 가능성을 내비쳤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새 총리 인선 작업 등을 마무리한 뒤 거취를 정할 것이란 얘기가 설득력있게 나돌고 있다. 이는 두 차례 사의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만류했을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김 비서실장이지만 이번 인사 참사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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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