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의 신화를 창조한 히딩크 감독의 “I am still hungry.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라는 말이 떠오를 것이다. 이 시대의 영웅, 금세기 최고의 기업가로 재조명되고 있는 애플컴퓨터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졸업식에서 한 연설의 마지막 구절이 “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자)”이다.
히딩크나 스티브 잡스가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인류 사회의 행복을 위하여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실천한 덕분이다. 창조경제의 실천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면 가장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은 남을 위해 베풀 수 있는 마음일 것이다. 탐욕을 내려놓고, 상생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진 자가 솔선수범하는 나눔과 섬김의 실천적 정신, 창조경제적 기업가 정신의 새로운 가치관을 신 양반정신으로 조명코자 한다.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이 남다르다. 교육을 통한 지식의 획득이 성공하는 길이라 생각하는데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식들이 곧고 바른 사람이 되고 남을 섬길 줄 아는 길로 나아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품위에서도 어느 정도의 인격과 학식을 갖추고, 남에게 베풀 만큼의 재산도 있고, 또한 이웃에 나누어줄 줄 아는 섬김이 수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근대 이전에 우리 사회를 이끈 주도세력인 양반(兩班)의 정신과 의미가 통한다.
조선조 국왕이 조회(朝會)할 때 남쪽을 향한 국왕을 중심으로 문반(文班)은 동쪽에, 무반(武班)은 서쪽에 섰는데, 이 두 반열을 양반이라 했다. 문반과 무반이 처음으로 구별된 것은 경종 때 실시된 전시과(田柴科)에서였다. 관제상의 문무 양반체제로 발전된 것은 성종 14년 고려가 당나라의 문무산계(文武散階)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다. 이때의 문반은 정치, 무반은 군사를 담당하고 있었을 뿐 문무반(文武班)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 그러나 당의 제도는 문반 위주로 되어 있어, 공양왕 2년에 무과(武科)가 설치되고, 태조 때 문무산계가 제정·실시되면서 다소 보완이 되었고, 세종 18년에 무산계에도 정종(正從) 9품이 제정되면서 문무산계가 갖추어져 「경국대전」에서 성문화되었다.
이때부터 문무반이라는 양반개념이 제도적으로 확립되었다. 관료체제가 정비됨에 따라 문무반직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가문(家門)까지도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신분 계급 사회가 아니라 이것이 별로 쓰이지 않는 용어다. 그렇지만 양반이라는 말은 본래의 뜻이 변하여 지금은 점잖은 사람을 말할 때, 또는 남자를 가볍게 대하여 부를 때 쓰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양반이나 귀족이라 하면 거부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이는 양반의 진수와 미덕을 알지 못하는 결과다. 양반이라 함은 단순히 돈 많고 권력을 휘두르는 특권층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진짜 양반에 대해 살펴보면 쌀 천석, 글 천석, 인심 천석 등의 미덕을 고루 갖춘 집안을 양반집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재산만 있다든가, 글만 있다든가, 인심만 있다고 해서 진짜 양반이 될 수 없었다. 우리가 지(知), 덕(德), 체(體)를 골고루 갖춰야 전인적이고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듯이 양반도 글, 재산, 인심을 고루 갖춘 명문 집안을 일컫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양반이 갖춰야 할 세 가지 요소인 ‘품위가 있고, 경제력이 풍부하며, 나눌(섬김)줄 아는 품격을 갖춘 자를 ‘新양반’이라 불러본다.
몇 해 전에 가짜 모조품 시계가 명품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더니, 이제는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이라는 대학교수가 논문을 표절하고 학력이 거짓으로 판명되어 세간의 이목을 끈 일이 있다. 기본을 상실한 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과 돈을 이용해서 출세해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고 한들 존경받을 수 없고, 오래 가지 못하는 세대가 왔다.
정녕 앞으로는 이러한 편법을 한 치도 용납할 수 없는 세대가 올 것이 자명한 일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10억 원 정도의 자산가치가 있으면 부자라고 했는데, 이제는 30억, 50억 원 정도가 있어야 부자라고 한다. 얼마 전 보도된 내용을 보면 2014년 부자의 기준치로 직장인 66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부자의 기준은 135억 원이라는 평균치가 나왔다고 한다. 이러한 속도로 부자의 자산가치가 증가된다면 몇 년 후에는 과연 얼마가 있어야 부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는 한 노파가 거액을 장학금으로 쾌척한 사례와 히딩크가 월드컵 축구에서 받은 보답으로 장애인시설과 드림필드를 준공한 사실 등은 매우 돋보이는 사례다. 또, 유한양행의 설립자인 故 유일한 박사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자로 꼽을 수 있다. 그는 유한양행의 수익금을 각종 공익단체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날 때에도 자신의 유한양행 소유주식 및 전 재산을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에 기증하는 등의 사회 환원을 하였다. 그의 딸인 故 유재라 여사 역시 돌아갈 때 전 재산 200억여 원을 사회에 환원해 대를 잇는 아름다운 모습이 화제가 된 바 있다.
1980년대 반도체장비 제조회사 미래산업을 창업한 ‘벤처창업 1세대’ 정문술 전 KAIST 이사장이 학교 측에 2001년 당시 개인 기부액으로는 최대인 300억 원을, 이번에 또 215억 원을 기부 약정으로 KAIST에 총 515억 원을 내놓게 됐다. 그는 “한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개인적 약속 때문에 이번 기부를 결심했다”며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 기쁘다”고 말했다. 미국의 기부행위를 보자. 3대째 기부의 가족 전통을 이어 받은 빌 게이츠는 280억 달러(한화 29조 6천억)를 게이츠 재단에 기부했고, 워렌 버핏은 374억 달러를 사회에 환원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사회로부터 받은 만큼 사회와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남에게 인심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의 사전적인 뜻은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다. 사전적인 뜻처럼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의무’이다. 이와 같은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나눔(섬김)’이며 이것은 ‘신양반정신’의 핵심이며 양반의 조건 (글, 재산, 인심)에 중심이 된다.
소위 잘 나가는 졸부라든지 일부 권력실세인 정치가나 관료그룹은 양반이 아니다. 또한 명예와 부를 동시에 가진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인도 양반이 아니다. 양반이라는 말은 특정계급이나 직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양반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고 특성이다. 그 조건과 특성에 맞으면 누구든지 양반이나 귀족이 될 수 있다.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어느 계층에 속하였든 재산도 어느 정도 있고 거기에 맞는 지식도 있고 배운 만큼 남에게 베풀 줄 아는 ‘新양반정신’의 가치관이 재조명될 때다. 이제는 아무리 돈이 많고 많이 배웠어도 ‘나눔(섬김)’이 없으면 인정받지 못하며 사회적으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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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식 교수>

김의식 교수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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