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대회 때 세계 경제대공황으로 시작
예방해야 한다 vs 낭설일 뿐이다 ‘대립’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재계에도 징크스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이 중요한 공사를 결정할 때, 논리와 계산 이외의 요소는 조금도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고 철저하게 분석한 뒤 과학적인 근거에만 입각해 일을 진행하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도 때론 미신 아닌 미신에 시달린다. 일부 재계 관계자들은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길한 징조들이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거칠 것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도대체 어떤 징크스가 따라 다닐까.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월드컵이 세계 경제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언뜻 생각하기엔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그동안 월드컵은 엄청난 경제 파급 효과를 일으키는 호재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다음 달 12일(이하 현지시간)부터 4주 간 개최된다. 이를 앞두고 미국 경제 전문 방송 CNBC는 ‘월드컵이 시장 경기에 되레 악재가 될 수 있다’고 한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자국 팀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이를 지켜보는 팬들의 혈압이 높아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장도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대리오 퍼킨스라는 이름을 가진 롬바르드 스트리트 리서치 이코노미스트는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4년 주기로 돌아오는 월드컵과 경제적 재앙이 묘하게 시기가 겹친다면서 이번 브라질 월드컵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월드컵은 1회 우루과이 대회 때부터 경제적 재앙과 운명을 함께했다. 1회 대회가 열렸던 1930년은 대공황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2차 대전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해다. 대공황은 1929년 시작돼 1939년까지 지속된 세계적 경제의 하강국면이다.
대공황은 산업화된 서방국가들이 경험한 가장 길고 극심한 공황이다. 대공황의 발단은 미국이었으나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생산의 위축과 가혹한 실업, 그리고 심각한 수준의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시점을 1990년 이후로 옮겨오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1990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예외 없이 경제 위기가 돌아왔던 것이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이 미국 경기 침체와 시기가 겹쳤다. 유럽도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국제통화기금에 출자된 액수는 152개국 총 1960억 달러 수준이기도 했다.
일례로 당시 일본 부동산 가격은 매일 상승했다. 일본 땅을 모두 팔면 미국 땅을 4번 사고도 남을 정도라는 말까지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거품이 많이 낀 버블경제였을 뿐, 일본은 갑작스러운 경제 변화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그 후 일본은 오랫동안 극심한 경제침체에 빠져들었다. 10여 년간 경제 성장률이 0%였다. 그리고 이 기간은 아직까지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린다.
한 차례도 예외 없어
또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는 미국을 시작으로 선진국 채권시장이 붕괴된 바 있다. 미국 중앙은행은 1990년 시작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1992년 9월부터 1994년 2월까지 17개월간 기준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3%로 유지했다. 그러다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자 1994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년 동안 기준금리를 3%포인트나 급격히 올렸다. 그러자 미국 국채 30년물의 금리는 1994년 말 8% 위로 치솟았다. 채권 가격이 폭락한 이때가 바로 채권시장 대학살 시기다.
프랑스 월드컵이 열렸던 1998년에는 아시아가 외환위기에 빠졌다. 당시 세계 최대 헤지펀드였던 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도 파산했다. 우리나라 역시 여전히 경제 지수를 논할 때 외환위기 전과 후로 구분할 만큼 당시 외환위기는 엄청난 사건으로 남아 있다.
아울러 2002년 세계경제는 연초 미국을 중심으로 강한 반등을 보여 본격적인 회복 기대를 낳았으나 미국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주가 및 달러화가치가 하락해 부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미 주택시장이 붕괴하면서 2008년 금융위기,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이어졌다. 다음 월드컵이었던 2010 남아공 월드컵에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당시는 17개국)의 채무위기가 시작됐다.
이를 두고 퍼킨스는 “이 같은 우연의 일치는 이번 월드컵 때는 뭐가 잘못될지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면서 올해 거품이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가 지목한 거품은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경기부양책인 아베노믹스가 첫 번째다. 퍼킨스는 “일본의 공격적인 통화완화는 여러 기대감으로 닛케이지수 급등과 엔화(가치)붕괴를 촉발했다”면서 “지금은 이 같은 정책들이 추동력을 잃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도쿄 증시의 닛케이 225지수는 2012년 아베 총리 취임 이후 40% 넘게 폭등했다.
이어 그는 “4월 세율 인상 여파로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고, 중앙은행은 추가 양적완화(QE)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며 “아베노믹스는 흔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경기 회복세 정체와 주택시장 둔화 역시 위험 요인으로 봤다. 미국 경제 회복세가 탄력을 받을 조짐이 있지만 주택시장 회복이 경제에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 위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른다면서 무수한 경우의 수가 가능하며,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할 상황으로 사태가 전개될 수 있다는 전망과 이에 따른 글로벌 시장 붕괴도 그 가운데 하나라는 주장도 내세웠다.
다만 국내 금융권은 이러한 월드컵의 저주를 단순한 소문으로 보는 것이 맞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낭설에 불과하다. 시기가 매번 겹쳤다고는 해도 우연의 일치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다만 개별적 문제로 봤을 때는 향후에도 악재로 다가올 수 있는 요인들에 대한 예방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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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