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항시 대기·맨 꼭대기 층 자리 잡은 VIP
사생활 보호·신분 확인 철저해 유명인사들 선호
거실·화장실·회의실 등 호텔 특실 못지 않아
환자 호명 사회적 지위로 대신한다는 후문도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어디서든 V.I.P(Very Important Person)가 받는 혜택은 남다르다. 백화점, 신용카드, 통신비 등 생활 곳곳에서 VIP는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VIP실 연결 비밀통로에서부터 입원실은 맨 꼭대기층 위에 자리 잡고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경계한다. 지난 19일 상태가 호전돼 일반병실로 옮긴 이건희 삼성 회장, 구속 수감 14일 만에 입원한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 부쩍 다시 병원을 찾는 재벌 총수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입원한 VIP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름 석 자만 대면 알만한 이들이 병원을 찾을 때 공통적으로 향하는 그곳, 삼성서울병원, 서울대학교병원, 신촌 세브란스 VIP 병동을 [일요서울]이 찾아가봤다.
[일요서울]이 찾아간 세 병원의 VIP실은 모두 맨 꼭대기 층에 위치했다. 이유는 VIP 환자의 응급상황 발생 시 헬기로 후송한 후 곧바로 병실로 입실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각각 입원해 있는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학교병원의 경비는 삼엄했다. VIP 병실을 찾는 이들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최고의 장점으로 꼽는 만큼 이들 병원은 외부인에 대해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고 입원 중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 19일 병세가 호전돼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입원해 있는 삼성서울병원은 VIP 병실은 20층 입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경비 직원들이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병동 밖에서 병원 사진을 찍는 취재진에게 사복을 입은 누군가가 다가와 촬영한 사진의 내용을 확인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취재진에게 다가왔던 그는 소속을 밝히지 않은 채 촬영한 사진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떠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둘러싼 세간의 관심에 대한 경계 수위가 높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보건복지부위원회에 따르면 삼성서울병원은 총 61개의 VIP 병실을 19층, 20층으로 나눠서 보유하고 있다. 병실료는 규모에 따라 1일 57만 원에서 174만 원까지 나뉘어 있다. 특히 20층은 삼성家 직계나 정·재계 유명인사만 사용하는 곳으로 구분돼 있어 인터폰을 통해 신원을 확인해야만 병동 복도로 들어갈 수 있다. 지하주차장과 중환자실과 바로 연결되는 비밀 통로가 있다는 후문도 있다. 이처럼 삼성서울병원 VIP병동은 항상 보안 요원들이 대기하며 의사들조차도 출입이 제한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20층 병실의 특실은 10여개로 평균 크기는 112.2㎡(약 34평)이지만 이 회장 병실 크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 VIP 병실을 찾은 대표적인 인사로는 이명박정부 시절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다. 이는 삼성서울병원 VIP 병실이 상류층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병원으로 불리는 사례로 볼 수 있다.
VIP도 대기해야 하는 서울대학교병원
서울대학교병원 역시 경비가 삼엄했다. 현재 서울대병원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지난 13일부터 구속수감 14일 만에 건강문제로 구치소에서 나와 입원해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혈중 면역억제제 농도가 수감 전보다 낮아져 원인 파악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서울]이 찾은 서울대학교병원 VIP 병동 입구는 유리문으로 막혀 있었으며 의사·간호사 등 병원 관계자 외에는 출입이 철저히 제한됐다. 또한 병동 앞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제지하는 담당 직원이 따로 배치돼 있었으며 입원 환자에 대한 정보는 표시돼 있지 않았다.
서울대학교병원의 특실 병동은 본관 12층에 위치해 일반병동인 124·125병동과 함께 있지만 분리된 공간으로 떨어져 있다. 가격 역시 내부 시설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병실료는 최소 49만 원에서 115만 원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공립 병원이므로 전직 대통령이 입원할 경우에는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에 따라 입원비·치료비 등 진료비 전액을 면제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등이 입원한 바 있다.
서울대학교병원의 VIP 병실 크기는 특실의 2배로 42~82m²(약 12~24평) 넓이에 환자 가족이나 수행비서가 머무를 수 있는 별실이 따로 있다고 전해진다. 또 조리할 수 있는 부엌 공간과 거실이 따로 분리돼 있고, 화장실도 2개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동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을 정도의 시설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특히 VIP 특실에는 한 대 당 1000만 원대인 최고급 환자 침대가 있다고 전해진다. 침대 옆 단추를 누르면 침대 머리, 허리, 다리 부분을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다만 30여개의 특실 병동 중 VIP 병실은 4개뿐이라 전직대통령과 재벌 총수들도 입원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외형만 봤을 때는 다른 대형병원의 VIP 병실과는 다르게 평범한 분위기를 풍긴다. 복도 끝에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다른 층의 일반병실 환자와 보호자들도 이용이 가능했다.
또 하나의 생활공간 세브란스병원
세브란스병원은 현재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정도의 인물이 입원해 있지 않아 다른 병원만큼 삼엄한 경비 태세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관계자 외 출입은 철저하게 막고 있었다.
세브란스병원의 VIP 병동은 본관 20층에 위치해 있어 남산에서 한강에 걸친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가장 꼭대기 층에서 운영되는 VIP병실은 총 18개로 알려져 있다. VIP병실은 165m²(약 50평) 규모로 환자용 침실, 보호자 침실, 거실, 회의실 등 방과 거실로 구성돼 있다고 전해진다. 또 각각의 출입문도 따로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보호자용 침실에는 마사지 기능이 있는 침대와 오디오, 50인치 PDP TV가 설치돼 있고 화장실에는 고급 비데와 월풀 욕조가 있다. 분리 공간인 거실에는 63인치 PDP TV가 있고 소파와 탁자, 찻잔 및 식기 등이 마련돼 있으며 병실의 꽃은 전문 플로리스트가 수시로 갈아주는 것으로 알려진다.
세브란스병원 역시 컴퓨터와 인터넷, 팩스, 프린터 등 사무기기가 기본적으로 설치돼 있으며 회의실도 존재한다. 또 간이주방에서 간단한 취사가 가능하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VIP 병실 내에는 대형 유화 그림이 걸려 있으며 이 그림 뒤로 산소탱크, 마스크 등 의료기기들을 숨겨 병실 분위기가 나지 않도록 돼 있다.
사생활 보호 뒤로 악용 우려↑
지난해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VIP 병실 악용 가능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를 8월을 기준으로 전국 41개 대형병원에서 96개 병동, 430개 병실을 운영하고 있다. 또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VIP병실에 입원한 환자는 총 20만 명 이상으로, 연평균 6만7000여명이 VIP병실을 다녀간 셈이다. 2010년 6만4351명, 2011년 7만302명, 2012년 6만6414명 등이다.
김 의원은 “순수 치료목적에만 이용해야 하는 병실임에도 수감 중 건강상 이유를 핑계로 VIP 병실을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형집행정지를 받은 987명 가운데 질병을 이유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은 사람은 938명(95%)에 이른다. 이에 김 의원은 “문제는 형집행정지 대상자 선정이 의사 한 명의 진단서만으로 가능하게끔 돼 있다는 것”이라며 “허위진단서 발급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을 만큼 제도적으로 허술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은 오래전부터 문제로 거론돼 왔던 바 있어 이번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구속수감 14일 만의 입원 행보에 대해서도 시선이 곱지 않다.
일전부터 김 의원은 “대형병원들이 VIP 병실을 운영하는 것은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허위진단서까지 만들어가며 질병을 이유로 VIP 병실에 들어가 형집행정지 제도를 악용하는 것은 문제”라며 “형집행정지 제도가 법의 취지와 국민의 법감정에 맞게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재소자가 형집행정지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심사위원회 기능을 강화하고, 형집행정지 기간을 설정해 기간연장 시 심사위원회의 철저한 검증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지역별로 지정병원을 두고 교도관이 관리·감독하도록 해 VIP 병실에서 형집행정지를 피하려는 시도 자체를 막아야 함을 강조했다.
현재 알려진 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형병원들 중 빅5로 손꼽히는 서울대학교병원, 세브란스병원 등의 VIP 및 특실 가동률은 60~70%인 것으로 전해진다. 고가의 이용료를 지불해야하는 만큼 적자는 아닌 것으로 알려진다.
이 중에서도 최고가 특실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서울성모병원은 2009년 두 개의 최고급 VIP실 공간을 합친 특실을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87㎡(약 86평)의 공간에 가족실, 회의실, 거실, 주방 등을 갖췄으며 방마다 PDP와 음향시설을 마련했다.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지하 주차장에서 VIP 병동까지 전용 엘리베이터 역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VIP 병실을 위한 24시간 전담 보안인력을 갖춘 병원은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으로 알려진다. 간호사 등으로 꾸려진 이 부서는 VIP 고객의 의전 및 간단한 진료상담, 진료 스케줄 조정, 입원 등을 에스코트하는 것이 주 업무다.
치료 서비스는 큰 차이 없어
최근 이 같은 VIP병동 운영은 더욱 고급화되고 있는 추세다. 고액의 외국인 환자가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외국인 환자들이 따로 호텔을 가지 않고 병원에서 가족들이 함께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고액의 외국인 환자, 재벌 총수, 정치인, 연예인 등이 특실을 주로 이용하는 만큼 호텔같은 특실을 꾸리는 추세인 셈이다.
대부분의 병원은 VIP 병실 의전 프로그램, 서비스 등을 대외비로 관리하며 함구하고 있다. 긍정적인 내용이 드러나더라도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일각에서는 VIP 의전 노하우를 경쟁 병원이 모니터할 수 있음을 경계해 비공개로 운영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인력구성과 운영시스템 등을 알려주는 것은 밑천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VIP 병실 세계를 명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VIP 병실이라고 해서 특별 우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 병원 관계자는 “환자를 진료하는 서비스는 특실, 일반실에 관계없이 같다”면서 “같은 환자복과 이불 등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VIP실에 오는 고객들은 환자라고 부르지 않고, 사회적 지위에 따라 그에 맞게 부른다는 소문은 있다”며 “최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처럼 환자의 상태가 심각할 경우 담당 의사 및 스태프들은 24시간 대기 상태로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또 “식사의 경우 VIP는 따로 검진식이 따른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면서 “담당 스태프을 선발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외모도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는 후문은 있다”고 말했다. 이어 “VIP 병동 관계자가 아닐 경우 병원 안에서도 VIP 병실의 내용을 알기는 힘들며 그저 ‘우리와는 다른 세상’ 정도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seun897@ilyoseoul.co.kr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