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시스템 교체 두고 외부출신 회장-은행장 대립
내분으로 LIG손보 놓치면 M&A 잔혹사 이어질 것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모피아와 연피아가 맞붙었다.” KB금융그룹이 또다시 내홍에 시달리고 있다.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의 대립은 이제 새롭지도 않다. 그것도 내부보다는 외부의 피가 강한 회장과 행장이 만난 결과라 더욱 그렇다. 물론 KB금융 측은 양측 대립이 아니라며 부인 중이지만 금융권에서는 이를 이미 기정사실화한 상태다. 결국 문제의 씨앗이 된 전산시스템 변경은 물론 LIG손해보험 인수전 등 중대사안들도 ‘올스톱’ 된 상황이다.
현재 화두로 떠오른 KB금융의 전산시스템은 현재 IMB 또는 유닉스 양자택일 구도다. 앞서 국민은행은 지난달 이사회를 열고 기존 IBM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 기반으로 전산시스템을 전환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병기 국민은행 감사가 전산시스템 교체 결정의 근거가 되는 보고서에 오류가 있다며 재검토를 요청했고, 사외이사들은 이를 거부하면서 일이 커졌다.
결과적으로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사회는 전산시스템 교체를 내세웠고 이건호 국민은행장과 정 감사는 교체를 중단해야 한다고 맞섰다. 그것도 내부에서 협의가 이뤄지지 않자 이 행장은 금융감독원에 당행 특별검사를 요청했다. 스스로를 금융당국의 손에 맡겨서라도 짚고 넘어가겠다는 의지다.
한때 이 행장 측은 법원에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것까지 고려했다. 현재는 가처분 신청을 보류한 상태지만 금감원의 특별검사는 진행 중이다. KB금융 경영진과 이사진 중 누군가는 책임을 떠안고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도 커졌다. 이렇게 되면 외부에서도 KB금융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게 된다.
IBM 또는 유닉스 양자택일 두고 입장 팽팽히 엇갈려
사실 KB금융의 본질은 금융업이고 전산시스템 교체는 이를 위한 도구다. 그런데도 전산시스템 변경을 두고 이처럼 날을 세우는 것은 결국 힘겨루기라는 지적이다. 이마저도 모자라 외부에 ‘SOS’를 치고 만천하에 내부 싸움을 알리면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대해 임 회장은 “내부 사항을 외부기관에 의뢰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며 유감을 나타냈고 이 행장은 “추후 감독당국에 보고서가 올라가면 문제가 제기될 만한 부분이 발견돼 보고하게 됐다”며 굽히지 않았다.
결국 전산시스템 변경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3일 긴급이사회와 감사위원회로 이 문제를 마무리하려던 KB금융은 결론을 짓지 못하고 추후 회의에서 재논의 하기로 했다. 사안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채 자신의 입장만 반복하다가 빈손으로 돌아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KB금융이 아무리 부인해도 임 회장과 이 행장의 불화설이 번질 수밖에 없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은 모두 내부가 아닌 외부 출신이다. 임 회장은 행정고시 출신에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낸 ‘모피아’고, 이 행장은 금융연구원 출신의 ‘연피아’다. 임 회장은 3년간 지주사 사장을 지내며 출신을 희석시켰지만 관료였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이 행장도 불과 2년 남짓 은행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을 지내고 행장으로 임명된 터라 사정은 비슷하다.
이에 KB금융 내부에서는 “외부 출신들이 남의 집에 와서는 계속 싸운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KB금융 내부 관계자는 “내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다 보니 자기 진영을 구축한 후 오로지 측근들의 말에 기대게 된다”면서 “최근 민병덕 전 행장을 제외하고는 회장이든 행장이든 대부분 외부에서만 내려왔다. 그러니 현재 KB 내부가 어떤 모양새겠느냐”고 토로했다.
피해를 보는 것은 내부직원뿐 아니라 KB금융 주주 및 이용고객들도 마찬가지다. 내분이 계속되면서 KB금융의 주가도 함께 약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국민은행과 카드의 전산시스템은 교체준비 기간이 없다는 이유로 존속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뿐만 아니라 현재 참여 중인 LIG손해보험 인수전도 경매 호가식 재협상에 들어가면 신경을 쏟지 못하게 된다. 그동안 실패를 거듭해온 KB금융의 M&A 잔혹사가 다시 한 번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금감원의 특별검사 결과까지 나오게 되면 누군가는 옷을 벗어야 할 개연성이 농후하다.
주주 및 이용고객도 피해는 마찬가지…경영진 총사퇴론까지
한편 국민은행 노조는 경영진의 총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또한 자체 진상조사단을 꾸려 내분에 대한 자체 조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국민은행 노조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임 회장과 이 행장의 사퇴표명을 촉구하며 경영진이 자진사퇴 의지를 표명하지 않을 경우 전면적인 경영진 퇴진운동에 돌입하겠다”며 “금감원 특별검사와 별개로 노조 자체 진상 조사단을 구성하고 투쟁 상황실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노조는 “각종 금융사고와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확인된 경영실패도 모자라 내부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로 표출한 것은 경영진의 무능력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며 “이번 갈등 사태의 뿌리에는 관치 낙하산 인사들이 초래한 KB금융의 허약한 지배구조 문제가 내포돼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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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