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보도 개입 논란 KBS…제작 거부 사태 장기화
청와대 보도 개입 논란 KBS…제작 거부 사태 장기화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4-05-26 10:16
  • 승인 2014.05.26 10:16
  • 호수 1047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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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 둘러싼 끊이지 않는 노사 갈등

KBS PD협회 24시간 제작거부…뉴스는 계속 파행
길환영 사장 “좌파 노조의 방송 장악 반드시 막을 것”

▲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KBS 양대 노조와 기자협회, PD협회, 경영협회, 기술인협회, 촬영감독협회, 전국촬영기자협회 소속 직원들이 ‘KBS 길환영 사장 퇴진 요구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세월호 참사 보도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된 KBS사태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청와대의 개입을 폭로하면서 KBS노조가 “길환영 사장 사퇴”를 외치기 시작했다. 보도국 제작 거부로 ‘반쪽뉴스’가 계속되는 가운데, KBS PD협회마저 24시간 제작거부를 선언하면서 KBS사태를 지켜보는 이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길 사장은 청와대 개입 논란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또 노조를 가리켜 “좌파노조”라며 “좌파 노조에게 방송이 장악되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KBS 사장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 정권부터 계속돼 왔다. 공영방송을 둘러싼 끊임없는 악순환을 [일요서울]이 정리해봤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망언이 일으킨 바람이 거세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교통사고 사망자 수와 비교한 ‘말실수’로 시작된 KBS사태는 그 덩치가 커져 결국 ‘길환영 사장 사퇴’를 외치기에 이르렀다. 김 전 국장이 노조와의 자리에서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 뉴스 개입했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지난 16일 KBS기자협회 총회에서 청와대가 KBS인사와 뉴스 보도 등에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김 국장은 “지난 9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회사 앞에 몰려와서 농성했을 때 임원회의를 통해 정면 돌파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내가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면서 “그러나 기자회견을 앞두고 사장이 전화로 올라오라고 했다. 사장은 BH, 청와대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이건 대통령의 뜻이라고 말하며 눈물까지 흘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청와대 개입으로 뉴스에서 대통령 비판은 단 한 차례도 없었고 정부 여당 비판도 기억하기로는 한 차례만 있었다”며 “마찬가지로 민주당도 비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길환영 사장의 보도 원칙에 대해서 김 국장은 “대통령에 대한 뉴스는 20분이라는 기준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에 KBS는 당일 <뉴스라인>을 통해 ‘김시곤 前 KBS 보도국장 “재임 내내 보도 압력”’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또 KBS새노조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로 청와대의 KBS보도와 인사에 대한 개입이 드러났다”며 “KBS 전 직원을 청와대 노예로 만든 길환영 사장은 퇴진해야 하며,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에 대해 길 사장은 “청와대 외압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길 사장은 일부 언론 매체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사퇴할 시기가 아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지만 이 상황에서 사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그는 김 전 국장의 주장에 대해 ‘허위·날조’로 본다며 “단순히 의견을 말했을 뿐 지시나 개입은 전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길 사장은 앞서 KBS기자협회 총회에서도 “뉴스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큐시트를 보내면 ‘이게 뭐예요’라고 물어봤을 뿐”이라며 “이 대화를 왜곡해 사사건건 개입했다고 확대해석할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청와대의 외압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청와대 쪽에서 김 전 국장을 사퇴시키라고 하는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또 길 사장은 이번 KBS사태에 대해서 “기자 직종 이기주의도 있는 것 같고, 노조가 명분 없는 불법 파업을 하기 위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좌파 노조에 의해 방송이 장악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는 보도본부의 비민주적 취재 보도 시스템의 문제점을 개선할 기회”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장 출근 저지1990년대부터 이어와

KBS노조의 사장 출근 저지 역사는 지난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기원 사장이 KBS사장으로 임명됐지만 노조는 ‘낙하산 사장’에 대해 반대 투쟁을 선언하고 ‘서기원 사장 출근 저지시위’ 및 ‘서기원 사장 퇴진 운동’을 이어갔다. KBS노조원들은 20여일 동안 제작거부를 강행했었다.

현재 공영방송 KBS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체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역대 KBS사장들에게는 ‘친 정권 편파방송’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항상 붙어 있다. KBS 뉴스에 대한 공정성 논란도 계속됐다. 참여정부 시절 정연주 사장 재임 당시에는 ‘코드 방송’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2004년 탄핵정국에서는 국회의 탄핵안 가결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줘 한국언론학회로부터 “공정치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명박정부 때는 선거 캠프 방송전략을 담당했던 김인규씨가 KBS사장으로 임명되자 낙하산 퇴진 요구가 이어졌다. 당시 KBS노조는 김 사장의 퇴임을 요구하며 한 달이 넘도록 파업을 이어갔다. 김 사장 재임당시 KBS는 4대강 사업, FTA 등에 대해 친정부적 보도를 일삼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길환영 사장의 청와대 개입 논란 역시 역대 정부에서 있었던 논란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역대 사장들이 아닌 KBS 사장 임명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명에 의해 사장으로 임명되면 자연스레 청와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KBS사장 임명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동의 또는 제도적 보완, KBS 자체 임명 등 여러 방식이 오르내리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임명 방식 변화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KBS사태 언제까지…

길 사장은 지난 21일 KBS 사내방송을 통해 ‘사퇴 거부’ 특별 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을 통해 길 사장은 보도 간섭 및 청와대 외압 논란과 관련해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러나 KBS노조 입장은 강경하다. 보도국 제작거부에 이어 지난 23일 PD협회 역시 제작 거부를 선언한 것이다. 이사회는 26일 길 사장의 해임안을 상정키로 했다. 그러나 이사회에서 해임안이 부결될 경우 KBS사태는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청와대 개입 논란은 김 전 국장의 발언 외에 증언·증거가 없는 상황이다. 김 전 국장 역시 보도국 간부였기 때문에 해임에 대한 보복으로 거짓증언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KBS노조 측은 보도국장의 입을 통해 드러난 사실이라는 입장이다.

청와대 개입 논란 및 제작 거부를 둘러싸고 길 사장과 노조가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한편, 지난 23일 스포츠국 부장급 간부 5명이 “시청자의 신뢰와 기대없이 KBS 월드컵호는 출항할 수 없다”며 보직에서 물러났다. 이로 인해 브라질 월드컵 중계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jhooks@ilyoseoul.co.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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