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리는 중국 인민 민란 조짐
꿈틀거리는 중국 인민 민란 조짐
  • 중국 상해=우수근 통신원 
  • 입력 2004-12-13 09:00
  • 승인 2004.12.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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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대정부 시위현장

거대한 둑에서 자그마한 구멍을 발견, 자기 손으로 막음으로써 결국 대재해를 막아낸 한 네덜란드 소년의 영웅담. 그래도 그때는 구멍이 하나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던가. 만약 엄청나게 거대한 댐에 구멍이 하나 둘씩 뚫리며 서서히 그 댐 전체의 균열로 이어진다면? 그 댐의 바깥쪽 동편에는 7천만의 이웃이 살고 있는데 말이다. “다행히 우리 가족들은 무사했지만 대단했다고 합니다.”현재 상하이의 한 대학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중국인 짱모(30대·여)씨는 사천성의 한 시골마을 출신이다. 한 토론회 석상에서 기자를 발견하고는 슬쩍 불러내어 얼마 전 자기 고향 마을 근처에서 발생한 시위에 대해 넌지시 들려주었다. 그녀에 의하면 지난 10월말경, 사천성의 한 시골마을에서 그곳 인민정부(중국에서는 관공서를 인민정부라 호칭한다.

이를 테면, 상하이 시청은 상하이시 인민정부로, 용산구청을 용산구 인민정부)의 터무니 없는 농지 배상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다가 공안당국과 충돌,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와 같은 시위는 물론 불법이다. 사실 중국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민중봉기이며 이는 사람들이 모여야 이뤄질 수 있는 것. 따라서 중국당국은 여하한 이유건 군중의 운집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이를 잘 아는 농민들인지라 처음에는 개별적으로 인민정부를 찾아가 농지 배상의 불합리에 대한 시정을 건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민정부의 무성의와 부패의혹으로 인해 운집되기 시작, 결국 불상사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인민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대화에 응했다면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그녀. “호미로 막을 것을 결국 가래로도 못막은 격이잖아요. 앞으로도 이러한 일이 더욱 빈발할텐데 어떻게 할 것인지 정말….” 더욱 편하고 나은 삶을 추구하려 함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현상이다.

이는 물론 이곳 중국인들에게도 변함없이 적용된다. 특히 아직까지 경제발전의 과실과는 거리가 먼 내륙지방 사람들은 도시민과의 생활수준 차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인민들의 시위문제는 중국정부가 생각하는 것 보다 한결 심각한 것 같다. 먹고살기 힘든 내지에서의 농민시위야 그렇다치더라도 이제는 그 불씨가 동부 연안의 대도시지역으로 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還政府淸白” “還坼遷濃民戶合法權益”(정부는 청백리 자세로 돌아오라!. 철거 이주농민의 합법적 권익을 돌려다오!) 붉은 천에 하얀 글씨로 적혀있는 위 현수막은 기자가 직접 확인한 시위현장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 현수막은 중국 최대의 경제도시 상하이, 그것도 최고 부유지역의 바로 인근에 지금도 걸려있어 긴박감을 더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기자는 중국의 상하이에서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있는 ‘대담한’시위현장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저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눈가리고 아옹하려하며 또 이런 부당함을 감싸주려 한단 말입니까!”현수막 밑에 설치한 가건물(시위자들의 숙소격) 앞에서 만난 한 시위참가자의 말이다.

현재 어림잡아 약 400명 정도가 참가(직접 참가는 아니지만 심정적인 참가자를 포함하면 천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교대로 시위현장을 지키고 있다는 이들은 현수막이 달린 가건물 뒤에서 지금 건설중에 있는 고급아파트 지역에서 살았던 주민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건설회사가 아파트를 건설하겠다며 그들의 거주지를 매입, 이주하였다는데 매입과정에서의 사기가 뒤늦게 밝혀져 관할 인민정부에 이를 알리며 정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관할 정부당국은 이미 ‘돈의 논리’에 매수된 채 무작정 건설회사 편을 들고 나와 결국 건설을 중지시키게 한 것이다. “이들 자본가(즉 건설회사)에는 정의란 것이 없다. 그런데 더욱 괘씸한 것은 인민정부가 이들과 결탁, 부정을 지지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물러설 수 없다!”

“외국인 양반, 지금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다우. 설령 마오쩌뚱 주석이 살아있었더라도 그런 부정부패분자들을 모조리 인민재판에 회부시켰을 거야!”그들의 의지는 대단히 단호했으며 상당히 격앙되어 있었다. 어떻게 ‘감히’ 정부에 대항하고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 여기저기서 거침없는 답변이 돌아올 정도였다. 그러면서 그 중 한사람은 불현듯 기자의 소매를 낚아채며 간이숙소 바로 옆에서 건설중이던 건물의 유리 앞에 붙여져 있는 하얀 대자보 쪽으로 끌고갔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약간 긴장하게 된 기자의 눈에는 시위에 이르기까지의 경위와 함께 시위자들의 요구사항이 적혀 있는게 보였다. 그리고 그 말미에는 이제는 정의가 더 이상 짓밟혀서는 안되며 우리의 정의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수될 것이라는 취지가 빼곡히 적혀있었다.중국당국은 아직도 대부분의 시위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또한 넓디 넓은 중국대륙인지라 시위가 발생한다 해도 이를 직접 목격하기란 쉽지 않다.

아울러 운좋게(?) 목격한다 해도 외국인은 일체 접근금지 당하게 된다. 하물며 외국언론 관계자는 구금조치 당하기까지 하는데 기자는 현재 중국에서의 시위현장을 생생히 목격, 사진까지 찍고 있는 것이다!“중국의 소수민족 독립움직임은 이제 현저히 완화되었습니다. 사탕을 내세운 중국정부의 회유책이 빛을 보고 있는 중이죠. 현재는 주로 소수민족과 주류인 한족간의 대립으로 인해 당국이 미간을 찌푸릴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는 정부를 겨눈 것이 아니므로 당국은 싸움을 말려주기만 하면 그만이죠. 하지만 최근 들어 잦아지고 있는 인민시위는 그 과녁의 핵심에 정부가 있으므로 중국정부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중국에서 국제정치경제를 강의하고 있는 독일인 프랭크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중국이 향후 몇년간 이에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면 중국은 매우 위험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는데 이렇듯 바야흐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댐은 이제 그 가운데에도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상해=우수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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