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을 알아차린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감에 피가 마르는 순간, 그들은 실체를 드러냈다.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이 민첩하게 하나 둘씩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모두 쇠파이프와 각목, 골프채 등의 흉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고, 무려 14명에 달했다.조그마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급박한 순간이었다.이들이 재빨리 담을 넘으려는 순간 잠복해 있던 40명의 형사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이들을 덮쳤다. 그러나 행동대원들의 저항은 예상보다 훨씬 격렬했다. 들고 있던 쇠파이프와 각목 등으로 거세게 반항했던 것. 결국 그들과 경찰측의 한바탕 격투가 벌어졌다. 한밤중의 숨막히는 격투끝에 경찰은 이들 행동대원 14명중 8명을 현장에서 검거하고 11월 25일 두목 등 4명을 추가로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범행 예행연습
두목 김모(56)씨는 지난 5월 교도소와 사회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모아‘문준이파’라는 조직을 만들어 범행을 계획했다. 김씨는 이들을 열쇠조, 인질조, 작업조, 행동대원 등으로 분류하여 각각의 조직원들에게 개별임무를 부여하고 체계적으로 범행계획을 세웠다.이들은 부유층을 상대로 범행대상을 물색하던 중 ‘모 신용금고 부사장으로 근무한 바 있는 이씨가 인천에서 돈이 많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이씨의 집에 현금과 엔화, 달러를 포함한 값나가는 금품이 자그마치 2조 6,000억원이 넘는다는 소문에 솔깃해진 문준이파는 이씨를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조사결과 두목 김씨는 ‘이번 일이 성공하면 각각 100억원씩 나눠주겠다’는 말로 조직원들을 쉽게 끌어 모을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김성길 경장은 “이들은 범행전 이미 서너차례에 걸쳐 이씨의 집과 주변을 현장 답사했으며 몇몇 행동대원들은 실제로 직접 담을 넘는 등 예행연습까지 했다”며 이들의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100억씩 나누려 했다”
누군가의 입으로부터 새나간 정보로 인해 범행직전 덜미가 잡힌 문준이파.2조가 넘는 돈을 털어 100억원씩 나눠가지려 했던 그들의 ‘꿈’은 막상 담을 넘어보지도 못한 채 물거품으로 돌아갔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몇가지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사건을 담당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김성길 경장으로부터 사건의 뒷얘기에 대해 들어봤다.우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부분은 모 금융기관의 전직 임원이 과연 2조가 훨씬 넘는 돈을 보유하는 것이 가능한지의 여부다.조사결과 이번 범행의 대상이 된 이씨는 모 신용금고의 부사장을 지낸 바 있으며, 인천지역의 갑부집안인 것으로 밝혀졌다.
김경장은 “이씨가 거주하는 집은 오래되어 다소 낡은 감이 있지만 넓은 정원을 갖춘 전형적인 호화저택의 짜임새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 경장은 이어 “이씨의 실제 상황은 엄청난 현금과 금괴를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과 다르다”며 “인천지역에서 대대로 재력있는 집안이었으나 현재는 가세가 많이 기운 상태”라 귀띔했다. 그러나 문준이파는 세간에 나도는 ‘뜬소문’을 철썩같이 믿고 대박의 꿈을 품었던 것. 설령 그들이 이씨의 집에 침입하는데 성공했을지라도 그들은 적잖이 실망을 했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엄청난 현금다발과 금괴 등을 담아 쉽게 옮기기 위해 50포에 이르는 마대자루와 화물차까지 특별히 준비한 문준이파의 기대와 이씨의 실제 사정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조사결과 이씨의 집에 금괴나 현금다발 따위는 전혀 없었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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