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규 민정수석이 노무현 대통령과 고시공부를 함께한 절친한 친구 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말 대사정설’ 배경에는 노 대통령의 강한 의지도 어느 정도 투영돼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즉 취임이후 줄기차게 강조해 온 노 대통령의 부패척결 의지를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는 박 수석이 연말 사정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실제로 사상 초유의 육군본부 압수수색 사태를 불러온 육군 장성진급 인사비리 의혹 수사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올라온 제보가 단초가 됐다. 지난 10월 군 장성 인사 발표뒤 육군 준장 진급자중 음주운전 경력 등 하자가 있는 대령들이 포함돼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민정수석실이 이를 군 검찰에 넘기면서 사건이 확정된 것. 인사비리 의혹이 증폭되면서 수사 배경과 관련해 ‘청와대 배후설’ ‘청와대-군부 갈등설’ 등 새로운 의혹이 불거졌던 것도 따지고보면 민정수석실이 처음 제보를 받았고 이를 군 검찰에 넘겼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측은 “투서나 비리 제보가 접수되면 검증을 거쳐 이를 해당 수사기관에 이첩해 왔던 게 관행”이라며 수사 배경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일축하고 있다.오히려 민정수석실을 주축으로 한 사정당국은 지난 4·15총선 이후 청와대에 올라온 민원성 제보를 비롯해 부패방지위원회에 접수된 비리, 국정원과 경찰의 비리 정보 등을 취합해 비리 혐의가 짙은 내용을 중심으로 검찰에 사실 여부를 확인토록 조치하는 등 연말 사정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와관련,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민정실 자체 수집자료 수십 건, 부방위 비리자료 6건, 경찰청 자료 13건, 국정원 정보자료 수십 건, 청와대 민원성 제보 수십 건 등 모두 100여건에 달하는 비리자료가 검찰에 전달된 것으로 안다”며 “연말연시를 즈음해 전국적으로 동시 다발적인 사정태풍이 불어닥칠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정 대상자는 공기업 사장 및 임원을 비롯해 고위공직자와 광역 기초단체장 등이 주 타깃이 될 것이고, 거물정치인 등 정치인 다수도 포함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실제로 사정당국은 지난 10월 국회 문화관광위 국감에서 제기된 미개장 난지도 골프장에서 ‘공짜 골프’를 친 특권인사들에 대해 내사에 착수, 강력한 인사조치 단행을 검토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열린우리당 심재철 의원이 입수한 골프장 이용자 중에는 고위공직자들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출입한 인사만 3,000여명에 달하고 있어 사정당국의 내사 결과에 따라 공직사회는 한바탕 홍역을 치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거물정치인 2명도 사정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거물정치인은 비록 지금은 정계를 은퇴했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원로급 인사다.
하지만 이 두 거물정치인이 90년대 말 독도 주변을 공동관리 수역으로 규정하는 내용의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일본측으로부터 수십억불을 스위스 계좌를 통해 전달 받았다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이같은 의혹은 한일어업협정 체결 당시 실무자로 참여했던 전직 공무원이 사정당국에 익명으로 제보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는데, 사정당국은 다소 신빙성은 떨어지지만 의혹이 제기된 만큼 은밀히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정당국은 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이미 검찰에 기소된 인사들 외에 각종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정치인과 단체장에 대한 내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청와대 민원실이나 부방위 등에는 정치인 및 단체장 비리와 관련한 각종 제보가 봇물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3월 개정된 정치자금법 시행이후 후원금 등 정치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치인들이 이권개입 등 검은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는 제보 내용이 많다.
실제로 후원금 모금에 여러 제약요소를 신설한 정치자금법 개정이후 수많은 의원들이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게 현실이다. 적지 않은 의원들이 벌써부터 빚에 쪼들리고 있고, 일부 의원들은 의정활동 및 지역구 관리를 위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사정이 이렇다보니 검은 유혹에 넘어갈 개연성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와관련,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의원은 “정치자금 마련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고 전제한 뒤 “1년도 채 안된 시점에서 빚에 시달리면 누구나 이권개입 등 검은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미 이권 개입 등 비리 혐의가 포착된 정치인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 중진 P의원은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고, 열린우리당 초선 K의원은 인허가 청탁과 관련한 뇌물 수수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적지 않은 기초단체장들이 각종 비리 혐의로 구설수에 올라 있다.사정당국이 사정 타깃으로 삼고 있는 대상도 바로 이러한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인사들이다.
검찰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 사정기관에서 접수된 각종 비리 관련 제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불법비리 혐의로 기소된 정치인들이 재판 과정에서 무죄를 선고받거나 형량이 대폭 깎이는 사례가 빈번해 자존심이 무척 상해 있다. 따라서 검찰은 이번 사정작업 과정에서 무너진 자존심 회복과 검찰권 위상을 되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반면 사정당국의 연말 대사정 분위기를 감지한 정관계는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다. 본격적인 겨울 한파가 찾아오기도 전에 정관계 주변에는 이미 냉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분위기다.
홍성철 anderia1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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