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짧은 기간 안에 고도성장 할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었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이번주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혁신적인 디자인을 창조해낸 이노디자인(대표 김영세)이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의 좌우명은 ‘미래에 미리 가본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스스로 미래에 왔다고 상상하면서 미래의 디자인을 현실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디자인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그림에 소질이 있던 그는 방과 후 단짝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의 형 방에서 ‘인더스트리얼디자인(Industrial Design)’이라는 잡지를 보게 됐다. 잡지에는 가정용품, 조명기구, 재떨이 등 온갖 생활용품들이 들어 있었다. 그 순간 ‘생각을 그리는 일, 즉 디자인’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김 대표는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줄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대학교 대학원 산업디자인과를 수료했다. 그 후 1979년 미국 뒤퐁사의 디자인컨설팅을 거쳐 오늘날 이노디자인 대표를 맡고 있다.
제품 기획은 디자이너가 결정한다
1999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월드 디자인 컨퍼런스에 참석한 김 대표는 ‘디자인 퍼스트’라는 이론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제품 기획은 클라이언트가 아니라 디자이너가 주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과거에는 제조업체가 디자이너에게 제품의 사양을 건넸고, 디자이너는 주문대로 그리기만 했다. 제조업체가 만든 물건에 대해 디자이너가 외피를 입힌 산업혁명 이후 관행이었으나 이런 관행을 이노디자인이 바꿔놨다.
이노디자인을 찾는 제조업체는 이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디자인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김 대표는 “사람을 이해하고 심지어 사랑할 때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형상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디자인 경영이란 무엇인가
이노디자인은 “디자인은 우리의 미래이고, 브랜드가 최고의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디자인을 중시하면 고객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그 자체가 미래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기업이 디자인을 통해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CEO를 비롯해 모든 사원이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좋은 디자인을 채택해야 한다.
김 대표에 의하면 디자인 경영이란 CEO가 디자인을 배우고 아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소비자는 디자인을 마음대로 고르지만, 제조사로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고르기란 만만치 않다. 소비자는 자신이 선택한 디자인에 대해서 최고의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디자인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디자인경영이라는 것이다.
이노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의 세 가지 요소로 심미성, 경제성, 편의성을 손꼽는다. 즉, 좋은 디자인은 보기에도 좋아야 하고, 쓰기 편해야 할뿐더러 만들기도 쉬워야 한다.
또 디자인의 최종 목표는 이윤창출이다. 보기 좋고 쓰기도 편한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많이 안 팔린다면 그것은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다. 팔리지 않는 디자인은 성공할 수 없다.
편의성의 비중도 경제성 못지 않다. 과거에는 보기에만 좋아도 사용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보기 좋은 디자인을 채용한 제품이 쓰기도 편리해야 대박이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좋은 디자인은 큰돈을 움직인다. 수십조 원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좋은 디자인 덕에 회사가 잘되고, 고용이 창출되며 무엇보다도 이용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진다. 때문에 이노디자인은 디자인 강국이야말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역설한다.
이노디자인이 디자인한 아이리버 펜던트 MP3는 150만 개가량 팔렸다. 이렇게 대박을 친 디자인은 김 대표의 머리에서 나왔다.
김 대표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때 서울로 출장을 온 그는 압구정동 커피숍에 앉아서 지나가는 젊은 세대를 관찰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검은색의 못생긴 MP3플레이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면서 김 대표는 ‘목걸이형으로 디자인해 거기에 이어폰 줄을 집어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곧바로 냅킨을 펼쳐 스케치를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 목걸이형 MP3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노디자인은 2007년 여름 대덕연구개발특구에 디-스튜디오를 열었다. 대덕특구의 기업과 연구소에 제품기획, 디자인 개발, 마케팅 지원을 원스톱으로 서비스하는 토털 디자인센터다.
김 대표는 앞으로 ‘이노’라는 브랜드를 세상에 남길 것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 100년 장수 브랜드 샤넬처럼 말이다. 이노디자인은 현재에도 닛케이BP 선정 세계 10대 디자인 회사에 선정되는 등 활약이 대단하다. 이노디자인은 2005년 발매된 삼성전자의 액정화면을 회전시키는 최초의 제품을 디자인했으며, 큰 인기를 끌었던 ‘라네즈’의 슬라이딩 팩트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을 더욱 화장시키기 위해 ‘이노GDN’이라는 회사를 별도로 설립했다. 최초의 디자이너 디지털 브랜드인 ‘이노’를 마케팅하는 회사다.
이노디자인은 MP3플레이어, 가정용 전화기, 마우스 등 자체적으로 개발된 제품을 OEM방식으로 생산한다. 김 대표는 ‘이노’라는 이름을 남기기 위해 ‘디자인 바이 이노(Desing by Ino)’의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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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박시은 기자>
<출처=대한민국 최고의 CEO│지은이 이주민│미래북>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