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업체 인수가능성 낮아…인도·중국업체 관심 보여
최고 수준 기술력 갖췄지만 국내 통신장벽 넘기 어려워

[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증권가에는‘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용어가 있다. 외국인 투자자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인이거나 한국계 자금을 바탕으로 하는 투자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단기적으로 치고 빠지는 투자전략으로 한국의 일반투자자처럼 주식매매를 한다. 이들의 수법은 비리의 온상으로 지적돼 2014년 사라져야 할 것으로 지목된다. 반대로 국내 기업명을 혼합해 쓰지만 실제로는 외국계 기업인 경우도 있다. GM대우, 홈플러스, 맥심 등과 같이 지분 전량이 매각된 회사도 있고, 에쓰오일처럼 지분의 절반 이상이 외국계기업에 매각된 사실상의 외국계 기업도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을 국내 기업으로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다. 이에 따라 [일요서울]은 국내 기업명이지만 지분은 외국계인 기업의 명단을 공개한다. 그 열아홉 번째로 ‘팬택(대표 이준우)’다.
국내 유일 휴대폰 전문업체 팬택의 미래가 밝지 못하다. 채권은행단이 지난 3월 5일 팬택에 대해 워크아웃 결정을 내린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팬택에 투자하겠다는 국내 업체가 전무하다.
반면 인도의 스마트폰 제조업체 마이크로맥스는 팬택 인수에 관심을 보인다. 마이크로맥스는 워크아웃 중인 팬택에 대한 투자나 인수 의사를 채권단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마이크로맥스는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급성장한 회사다. 2010년 휴대폰 제조에 처음 뛰어든 지 4년 만에 인도 2위, 세계 10위권(2013년 3분기)에 진입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메이저 휴대폰 업체들도 비공식 라인을 통해 팬택 인수를 저울질하고 있어 외국 자본 매각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채권단은 기술유출을 우려해 최대한 막아보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마저도 오래 가진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과거 팬택의 해외 매각 가능성이 불거질 때마다 ‘기술유출 우려’는 방패막이가 됐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내부적으로도 팬택을 외국자본에 매도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던 기류가 최근들어 크게 누그러진 것으로 전해진다. 채권단 측은 “국내 업체가 인수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해외로 파는 것 외에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도 그럴것이 팬택은 글로벌 1위 삼성전자와 3위 LG전자 등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중저가 스마트폰 생산업체가 팬택을 인수한다면 단번에 프리미엄급 라인업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통신시장의 높은 벽 때문인지 인수를 꺼려한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이 때문에 국내 인수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 힘을 얻는다.
팬택의 전성기와 흑역사
팬택은 1991년 설립됐다. 창업자 박병엽 전 대표가 자본금 4000만 원으로 세운 무선호출기(삐삐) 제조업체가 시초다. 맥슨전자의 영업 사원이었던 박 전 대표는 무선호출기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경기도 부천에 있는 아파트를 팔아 자본금을 마련했다.
삐삐 보급이 확대되면서 팬택은 1992년 28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1994년 국내 최초의 문자 호출기를 출시했다. 이듬해인 1995년 음성호출기와 광역호출기를 잇따라 선보였다. 삐삐 붐이 절정이었던 1997년에는 매출이 762억 원으로 불어났다.
1997년 팬택은 사업 방향을 바꿔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 분야에 뛰어들었다. LG전자의 전신인 LG정보통신으로부터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계약을 따내 이 해 5월부터 휴대전화 생산에 들어갔다. 이 해 8월 팬택은 주식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1998년 미국 모토로라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모토로라는 1500만 달러를 투자해 팬택의 2대 주주(지분율 20%)에 올랐다. 2000년 매출은 2871억 원이었다.
2001년 하이닉스반도체의 자회사였던 단말기 제조업체 현대큐리텔을 인수했다. 이듬해 8월 현대큐리텔은 이름을 (주)팬택앤큐리텔로 바꿨다.
2005년 ‘SKY’라는 브랜드로 휴대전화 단말기를 제조하던 SK그룹 계열사 SK텔레텍을 합병했다. 그러나 이후엔 하락그래프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2006년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이 노키아, 삼성, 모토로라 등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팬택의 실적이 악화됐다. 이 해 12월 팬택과 팬택앤큐리텔 등 팬택 계열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던 12개 금융기관은 팬택 계열 회사들의 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박 전 대표는 4000억 원대로 평가 받던 보유 주식을 모두 채권단에 넘겼다. 이듬해인 2007년 4월 주식이 상장 폐지됐다. 박 전 대표는 이후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으로 팬택의 경영을 맡았다. 2009년 팬택은 매출 1조 1805억 원, 순이익 385억 원을 올리며 경영을 정상화했다. 2009년 12월 팬택앤큐리텔을 합병했다. 2010년 4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리우스, 8월 베가를 각각 출시했다. 2011년 6월 미국에 첫 안드로이드폰 크로스오버를 출시했고, 같은 해 12월 5년에 걸친 기업개선작업이 종료됐다. 2013년 4월 미국의 버라이즌을 통해 모션인식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 ‘퍼셉션'을 출시했지만 최근 또다시 워크아웃을 맞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최대주주는 2013년 2월 제3자배정 유상증자 후 산업은행에서 미국의 퀄컴 사로 변경됐다. 퀄컴의 보유 지분은 11.96%이다.
그러나 또다시 경영이 악화되면서 앞날을 장담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한편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팬택의 채무상환을 오는 6월까지 유예하고 팬택에 대한 실사를 벌이고 있다. 6월께 실사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추가 자금지원이나 구조조정 방안 등 경영정상화를 위한 전략을 수립한다는 방침이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