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이 뒤엉켜 있다” 오보 후 정식 사과 없어
“공영방송 KBS, 앞으로 수신료 못 받게 될 것”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지난달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승객 300여 명과 함께 침몰했다. 한 달 전에 발생한 잊지 못할 참사는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방송3사를 포함한 언론은 자신들의 ‘속보’전쟁 속에서 확인되지 않는 사실을 방송해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잘못된 브리핑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는 실수도 저질렀다. 그 결과 언론 신뢰도는 급격히 추락했다. 특히 재난주관방송사 KBS는 시청률까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 와중에 KBS 수신료 인상안이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되자 불만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급기야 ‘수신료 거부 운동’으로 확산됐다.
공영방송이자 재난주관방송인 KBS가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저지른 최악의 오보다. 당시 KBS는 구조팀의 선내 진입 소식과 함께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나 해경은 “선체 안의 장애물로 인해 진입하지 못했으며 실종자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부인했다. 해당 자막은 오보와 별개로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그러나 KBS의 사과는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부 비판 보도 X
오보 줄이어… 신뢰 ↓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와 함께 KBS의 침몰도 일어났다. KBS는 사고 당일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보도를 내보냈다가 망신을 당했다. 이는 경기도교육청에서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 것으로 담당 기관에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내보낸 것이었다. 다음날인 4월 16일에는 ‘경비함정 81척, 헬기 15대, 구조인원 200여 명’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뉴스타파>에서 입수한 해경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이날 투입된 구조인원은 16명에 불과했다. 24일에는 ‘수색작업에 참여하는 잠수부가 720여 명으로 늘었다’고 보도했지만 다른 언론사에서는 ‘75명의 잠수요원이 교대로 투입됐다’고 보도해 KBS의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KBS는 연이은 오보에만 그치지 않았다.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은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도 보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진도체육관 방문 당시 실종자 가족들의 박수 소리만 보도됐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더딘 구조작업으로 인해 가족들의 항의와 울음소리도 이어졌다. 또 희생자 가족들이 국무회의에서 진행된 박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표한 것은 당일에 보도되지 않았다. “초기에 80명 구했으면 대단한 것 아니냐”고 말한 해경 간부의 직위 해제 소식, 세월호 인양 관련 내용이 담긴 목표 해경의 사고 당일 공문, 정홍원 총리에 대한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 및 차 안에서 잠 든 정 총리 등의 보도는 KBS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같은 보도 행태로 시청자와 세월호 희생자·유가족들의 신뢰를 잃은 KBS는 다른 방송사들과 함께 인터뷰를 거절당하는 등 취재의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인터뷰해봤자 나가지도 않는다”며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이 와중에 지나친 국민적 추모분위기 조성을 경계해야한다며 아나운서들에게 검은 옷을 입지 말라고 지시했던 김시곤 보도국장이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라고 말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측은 “어처구니없는 망언”이라며 공격했지만 김 국장은 “안전사고와 관련해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야기했던 것”이라며 “허위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김 국장의 주장은 유가족들의 마음을 녹이지 못했다.
결국 지난 8일 KBS간부들은 안산에 위치한 합동분향소를 찾았다가 유가족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쳤다. 이준안 취재주간은 김 국장으로 오인 받아 유가족으로부터 뺨을 맞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김 국장이 직접 찾아와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동시에 분향소 뒤편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KBS 중계 천막을 철거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김 국장이 오지 않자 결국 유가족들이 직접 KBS로 발걸음을 옮겼다. 희생자의 영정 사진을 들고 여의도 KBS 본관 앞에 모인 유가족 100여 명은 길환영 사장의 사과와 김 국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청와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결국 길 사장은 유가족을 찾아가 사과하고 김 국장의 사표 수리를 약속했다.
그러나 KBS는 9일 오후 김 국장의 보직을 KBS 방송문화연구소 공영성연구부로 옮긴다는 인사발령을 냈다. 김 국장은 사표도 내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는 유가족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분노가 커져갔다.
2500원→4000원 ‘인상’
“TV 수신료 빼주세요”
국회에 KBS 수신료 인상안이 의결된 8일은 유가족들이 김시곤 보도국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KBS로 향한 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수신료 인상안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계속되는 오보와 친정부 성향의 보도로 인해 신뢰를 잃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KBS가 자기 성찰은커녕 수신료 올리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시청자가 봉이냐”는 비난도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는 곧 KBS 간부 사퇴 촉구 서명운동과 수신료 거부 운동으로 확산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세월호와 대한민국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세대행동)’은 수신료 인상안이 상정된 다음날인 9일 KBS 수신료 거부 운동 포스터를 만들고 수신료 납부 거부 방법에 대해 안내를 시작했다. 세대행동은 “KBS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가린 정권보위방송”이라며 “지금도 온 국민 앞에서 감히 거짓말을 해대고 있는 너희들, 그러면서 수신료는 날치기로 올려 받으려고 수작부리는 구나”라고 비난했다.
KBS 수신료 거부 운동은 해당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전 국민적으로 확산됐다. 그동안 지켜만 보던 시청자들이 직접 칼을 꺼내든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오늘 수신료 빼달라고 전화했어요, 속 시원하네요”와 같은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수신료 거부가 쉬운 일은 아니다. 신모(30)씨는 TV 수신료를 제외해 달라고 한국전력에 전화를 걸었다. 평소 TV를 보지 않던 신씨는 수신료를 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전 측에 “TV를 보지 않으니 수신료를 빼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한전 측에서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신씨는 “한전에서 TV를 고물상에 판매한 뒤 증명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며 “뿐만 아니라 인터넷이 되냐고 묻더니 컴퓨터로 KBS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수신료를 내야한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TV 수신료는 공영방송 KBS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일정 금액을 징수하는 것이다. KBS는 홈페이지에는 “공영방송의 재정을 상업 자본에 의존하게 되면 시청률이나 광고주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정부 예산에 의존한다면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국민이 납부하는 수신료를 통해 기본 재원을 조달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회사원 이모(35)씨는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지 않고 있는 KBS에 수신료를 내고 싶지 않다”며 “KBS가 변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외면은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KBS 기자협회 김환영 사장 퇴진 요구
시청자들의 외면 속에 KBS 보도국 내부에서 반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3년차 38~40기 KBS 기자들이 내부 게시판에 ‘반성합니다’라는 제목으로 KBS의 현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이들은 “침몰하는 KBS저널리즘을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다”며 “세월호 사고 취재 내내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 시민들이 쏟아내는 비판의 무게에 마음 편히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없었다. 팽목항에서는 KBS잠바를 입는 것조차 두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왜 우리뉴스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건가”, “유가족들이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울부짖을 때 우리는 현장에 없는 정부와 해경의 숫자만 받아 적으며 냉철한 저널리스트 흉내만 내고 외면했다”, “청와대만 대변하려거든, 청와대 대변인 자리 얻어서 나가라” 등 반성과 함께 간부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막내기자들의 반성에 선배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KBS 새노조)는 길환영 사장에게 “김시곤 국장의 보도 독립성 침해 폭로에 대해 답하라”며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이어 KBS기자협회는 “길환영 사장은 KBS의 독립성 침해 진상을 밝히고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지난 11일 KBS새노조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 길환영 사장은 조속히 결단하라”는 성명서를 내고 “이제는 길환영 사장 본인이 직접 나서서 보도개입에 대한 모든 진실을 밝히고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더 이상 길환영씨를 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KBS 구성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며 “KBS가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한 대변화를 위해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가열찬 투쟁의 선봉에 설 것임을 분명히 천명한다”고 밝혔다. 노조 측은 길환영 사장 퇴진을 위해 빠르면 오는 26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15일 KBS 9시 뉴스에서는 “세월호 사고 초기 오보와 정부 발표 ‘받아쓰기’ 보도 등 세월호 참사가 한국 언론에 많은 숙제를 남겼다”며 “KBS도 대통령의 행보는 부각하고 희생자 가족들의 목소리에 소홀했던 점은 없었는지 자성해 본다”고 밝혔다. 이어 “공영방송이자 재난방송 주관방송사인 KBS에 대한 비판은 더 날카로웠다”며 “KBS는 이런 비판과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뉴스에서는 그동안의 오보에 대한 반성이 이어졌다.
KBS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러나 KBS 새노조의 투쟁 예고와 9시 뉴스에서의 반성에도 불구하고 돌아선 민심은 여전하다. 수신료 인상을 앞두고 ‘보여주기 식’의 내부 비판일 수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번 KBS 총파업을 응원했다는 김모(28·여)씨는 “수신료 인상안 상정 뒤에 나온 움직임이다 보니 진심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왜 진작 나서지 않았느냐”고 꼬집었다.
그러나 이들의 뒤늦은 투쟁을 응원한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김모(41)씨는 “세월호 사고 후 KBS 뉴스를 볼 때마다 씁쓸했다”며 “스스로 반성하고 이제라도 변화를 위해 노력한다니 반가운 소식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루빨리 국민의 방송 KBS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16일에는 보도본부장 18명 전원이 보직을 사퇴하고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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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