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는 “언니와는 일란성 쌍둥이인데, 외모가 너무 똑같이 생겨 사람들이 ‘딸기’로 오인하고 좋지 않은 눈길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또 이번 일을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언니가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딸기는 또 경찰 조사에서 부모님에게 이 사실이 알려질 것을 우려, 이미 결혼한 언니의 집 주소를 자신의 주소지라 밝혔고 이 때문에 사건에 대한 경찰서와 법원 등에서 보낸 우편물이 모두 언니의 집으로 갔다. 딸기는 또 “언니가 그거 감추느라 고생 많이 했다”며 “내가 구속됐을 때 언니가 찾아왔는데 내가 수의입고 수갑 찬 모습을 보더니 목놓아 울었다. 그때 둘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전했다.
사회 봉사 활동에 대해 딸기는 “그동안 구성애 상담센터와 나눔의 집 그리고 도봉구 사회복지관 등에서 사회봉사활동을 하며 지냈는데, 처음 해보는 일이라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보람 있었던 시간이었어요”라며 “시간이 되면 자주 찾아가 계속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앞으로 자신이 ‘설자리가 없다’는 절망감이었다. PJ로 일할 때는 그것이 비록 불법이라 하더라도 ‘성인문화’라는 대중문화의 한 부분을 이끄는데 이바지하고 있다는 데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사회로부터 처벌을 당하니 절망감에 휩싸이게 됐다는 것이다.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터넷 성인방송으로의 복귀는 이 절망감을 떨치기 위한 노력이다. 딸기는 최근 바나나TV와 전속 계약을 맺고 누드와 인터넷 자키로 활동을 재개했다.
자신의 복귀에 대해 그는 “PJ로 활동하던 당시 느꼈던 나름의 자신감과 자부심을 되찾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바나나TV의 기획을 담당하는 박모(42)씨는 “처음에 딸기를 섭외하려 하자 딸기는 단호히 거절했다. ‘다시는 그런 일(성인콘텐츠사업) 하고싶지 않다’고 말하더라”며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한번 구속돼 보라’고 말했다. 정말 설득하느라 힘들었다”고 말했다.딸기는 자신이 처음 PJ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았다. 그가 PJ를 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이유는 역시 ‘돈’이었다. PJ가 되기 전 누드모델로 활동하던 딸기는 L 인터넷 방송국의 사장 모씨로부터 미국에서 함께 일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딸기는 갑작스럽고도 당혹스러운 제안을 듣고 많이 망설였지만 그것도 잠시, 연봉 7,0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과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수 있게 배려해 주겠다는 말은 최후의 망설임마저 일거에 날려버렸다. 일단 수락하기는 했지만 과연 7,000만원이라는 돈을 줄까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일단 믿어 보기로 결심하고 2001년 4월 중순경 급기야 딸기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막상 가려니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인터넷 방송이라는 것이 사업성은 있는 건지, 회사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인데 7,000만원이라는 많은 연봉을 제대로 다 받을 수 있을지, PJ라고는 하지만 과연 어떤 일을 하게 될지가 궁금했다.”약 1년 2개월 간의 미국생활에 대해 딸기는 “사업초창기라서 그런지 회사 쪽에서 준비할 것이 많아 저는 별로 할 것도 없었다. 어학원 다니면서 영어 공부하고 촬영하고 한 게 전부였다”라고 말했다.
이후 회사가 근거지를 캐나다로 옮기면서 딸기도 캐나다로 가게 되었는데, 지옥같은 생활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캐나다 생활에 대해 딸기는 “감옥이 따로 없었다. 큰 집에서 10명 정도가 모여 같이 생활했다. 거기에는 스태프와 PJ, IJ 등이 섞여 있었는데, 우리 모두 바깥출입이 통제되었다. 만약 사장의 허락없이 외출했다가 사장에게 들키는 날에는 난리가 났다.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다. 남자들은 물론이고 여자 PJ까지 맞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분한지 딸기는 “우리는 완전 노예나 다름없었다. 사장이 모든 이들의 여권, 통장, 비행기 표 등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를 통제했는데, 반항하면 우린 그야말로 알거지가 되는 신세였다”며 치를 떨었다. “음식은 사장 부인이 우리 숙소에 직접 갖다 줬는데, 이것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모두 배가 고파 일을 못하겠다고 아우성이었다. 허락도 없이 나가서 사먹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잠시 후 딸기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탈출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사장과 술을 마시면서 여권과 비행기표를 달라고 간청해 겨우 그것들을 받아냈다. 그리고는 곧바로 짐을 싸서 탈출해 한국으로 왔다.” 극적인 탈출 작전 끝에 한국으로 돌아온 딸기는 약 한 달 동안 집에 머물며 그간의 지친 심신을 달랬다. 그런데 한국에서 쉬는 기간 중 다시 또 다른 인터넷 성인 방송국인 B사에서 PJ로 일해 보겠냐는 섭외가 들어왔다. 고민 끝에 딸기는 결국 다시 짐을 쌌다. 캐나다로 가서 3개월 간 일하다 또 다른 성인 방송국 S사에서 역시 PJ로 6개월 간 일했다. 그간의 수입에 대해 딸기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고 너무 어이가 없었다. 1억을 넘게 벌었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그건 사실과 달르다. L 성인 방송국에서 일한 돈은 거의 못 받았는데 무슨 돈을 벌었겠는가. 제가 그 동안 벌어들인 액수는 창피해서 차마 말을 못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윤지환 jjd@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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