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C와 21C가 공존’하는 대륙
‘20C와 21C가 공존’하는 대륙
  • 중국 상해=우수근 통신원 
  • 입력 2004-10-25 09:00
  • 승인 2004.10.2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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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논밭으로도 우리 부부와 아들내외, 그리고 손녀의 생활은 충분하다. 이 정도면 됐지 뭐, 뭐가 또 필요하겠나.”약간 구부러진 듯한 허리, 수십년 간을 땡볕과 함께 해온 듯한 거무잡잡한 피부, 듬성듬성 빠진 이 사이로 새어 나오는 발음이 알아듣기 쉽지 않은 중국 농심(農心)의 고즈넉함이다. 허리를 펴며 이방인에게 화답하는 할아버지를 이어 밭일에 여념이 없던 할머니가 머리를 칭칭 감쌌던 수건 매시를 풀어제치고 나선다. “지난 과거를 생각해봐요, 지금은 얼마나 풍족한지. 우리는 이대로 됐어요.”그들의 삶은 매우 고단했다고 한다.

수십년간 오로지 논밭속에 파묻힌 채 하늘만 바라보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고 미소짓는다.근대식 여러 농기구를 활용하고 있는 덕에 어른 4명이 경작하여 벌어 들이는 수익이 연간 약 4만위안(한화 약 600만원 정도)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니 말이다. 행복이 반드시 재산의 정도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박스기사 참조), 성인 4명이 매월 고작 50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리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감추질 않는 이들.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수도 있다. 4명의 수익이 그 정도라는 것도 그러려니와 한창 잘 나가는 중국의 삶이 아직까지 이 정도라는 것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은 중국의 가장 낙후한 내륙이나 서부지역 사람들이 아니라 최고의 경제성장을 자랑하는 상하이 시민이라는 점이다. 상하이 시민이라는 것은 중국사회에서 하나의 공공연한 특권이 되다시피 하였다. 상하이 시민들은 잘나가는 상하이에 합법적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의료혜택과 실업수당 등의 각종 복리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아직까지 도시민에 한해서만 겨우 복리혜택을 부여하고 있는데 그 도시민이란 것이 13억 전체 인구중 약 3억명 정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쯤되면 대도시중의 대도시인 상하이나 베이징에 후코우(戶口)를 두고 산다는 것은 뭇 외지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감숙성에서 왔어요. 고향에는 부모와 처자식이 있는데, 아직 일자리를 못 찾았어요.” 상하이 역은 항상 중국전역에서 ‘상하이 드림’을 찾아 몰려 온 민공(民工,노동자)들로 붐빈다. 크고 작은 보따리를 둘러매고 온 그들속에는 젖먹이를 감싸안은 아낙네의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흐어(許)씨는 그곳에서 만난 한 사람인데 2주 전에 기차를 타고 3일 밤낮을 걸려 이곳에 도착했단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일자리를 찾지 못해 상하이역을 떠나지 못한 채 노숙하고 있는 중이다. “기자 선생님, 어떻게 일자리를 알아봐 줄 수 없나요? 아무 것이나 좋으니까요.” 온갖 애처로운 표정속에 기자에게 매달리는 그를 보고 주위에 있던 다른 이들도 이내 기자곁으로 다가와 저마다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현재 상하이를 비롯한 동부 연안부의 대도시는 흐어씨와 같은 타지역 출신 민공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의 거주이전은 아직까지 법적으로는 자유롭지 못하다. 이로 인해 중국인들은 정해진 지역을 특별허가 없이 이탈하면 안되고 다른 지역에서의 거주도 단속의 대상이다. 따라서 이들 ‘불법 이주자’ 들이 공안에 걸리면 온갖 수모속에 고향으로 추방당하게 되는데 민공들은 시골에서 할일없이 세월만 축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이 호경기라고는 하나 아직은 동부 연안지역에 국한될 뿐, 내륙지방 거주민인 이들에게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의료혜택이나 실업수당 등의 복지혜택조차 전무한 실정이 아닌가.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이 얼마 전에 보도한 바에 의하면 중국에는 아직도 거의 1억명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라디오나 TV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특히 중국 서부 외딴 지역의 약 60여만 마을과 중부의 최빈곤지역에 거주하는 농민들은 원활하지 못한 전기공급 탓에 이와 같은 문명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우기 이들 중에는 신문과 같은 활자매체도 접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어 그들은 도회지에 나갔다 돌아오는 사람들, 혹은 집배원의 입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중국정부는 1998년부터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라디오와 같은 기본 문화생활만큼은 영위할 수 있도록 ‘문화생활 영위사업’ 프로젝트에 착수, 2003년까지 무려 2억 2,000만 달러를 투입함으로써 11만 7,000개 마을의 7,000여만명이 새롭게 개화된 삶을 누리게 되었다고 선전한 바 있다.

사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 전체 인구중 라디오 청취가능 인구비율이 1998년의 88.3%에서 93.6%로 증가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도 1억여명 정도의 중국인이 라디오를 모르고 지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쯤 되면 흐어씨는 그래도 상황이 나은 편이 아닌가. 비록 그의 집에도 TV나 전화기는 없지만 이웃의 그것을 가끔 이용한다니 말이다. 즉 전기의 혜택은 받고 있지 않은가. “한쪽만의 중국을 보지 마십시오. 상하이는 중국의 아주 특수한 곳에 불과합니다. 중국에는 21세기의 상하이가 있는 반면, 1970년대 초기를 살아가는 내륙지역도 적지 않아요. 20세기 중반과 21세기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중국인 것이죠.”상하이 화동사범대학에서 중국정치경제를 가르치는 웬(袁·남·43세) 교수의 말이다.

그의 말 마따나 중국에서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이미 70년대경에 자취를 감춘 삼륜 구동차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물론 상하이 등의 대도시 중심지역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지만, 도시 중심에서 약 1시간 정도 벗어난 외곽지역(이곳도 행정구역상 상하이다)에서도 이들 삼륜차나 혹은 그와 비슷한 형태의 자동차, 이를테면 북한 관련 필름을 볼 때 자주 눈에 띄는 투박한 트럭이나 엉성한 버스 등이 중국인민들의 주요 이동수단으로 애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후진타오 주석체제 이후 그는 물론 윈자바오 총리 등, 수뇌부의 지방 순시 움직임이 부쩍 눈에 띄고 있습니다. 그들의 일반 인민들에 대한 접근은 역대 영도자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만큼 현저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1970년대와 21세기가 공존하는 중국. 한켠에서는 전세계에서 30대 밖에 생산이 안된 15억원짜리 승용차가 불티나게 예약되고 다른 한켠에서는 아직도 한반도의 총인구를 뛰어넘는 사람들이 TV와 라디오를 접할 수 없는 나라 중국. 바로 이와 같은 사회불평등, 부의 편중은 중국 지도부의 발걸음을 분주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인류역사를 보면 정권타도까지 이어졌던 대규모 민중봉기는 누적된 사회불평등에서 기인함을 그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상해=우수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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