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여왕 김연아의 17년간의 국가대표 선수 공식 은퇴선언
피겨여왕 김연아의 17년간의 국가대표 선수 공식 은퇴선언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4-05-12 15:24
  • 승인 2014.05.12 15:24
  • 호수 1045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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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고마워'

아이스쇼를 끝으로 17년간의 국가대표 선수 공식 은퇴
“푹 쉬면서 고민하겠다”…안무가 영화화 아이디어 솔솔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빙상스포츠의 한 획을 그었던 피겨여왕 김연아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택한 이후 지난 4일부터 사흘간 아이스쇼를 통해 팬들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김연아는 이로써 지난 17년간의 태극마크를 내려놓으며 피겨 전설로 남았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싱글 최고 기록을 수립하며 여자선수 최초 그랜드슬램(세계선수권대회, 4대륙선수권대회, 그랑프리 파이널, 올림픽)을 달성했던 피겨여왕 김연아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판정 시비 논란의 은메달을 받으며 현역선수에서 전격 은퇴했다.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은메달을 놓고 보면 아직도 판정논란에 휩싸여 있고 대한빙상경기연맹이 국제빙상연맹(ISU)에 제소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치 대회에서 보여준 김연아의 여왕다운 말끔한 연기는 피겨여왕의 마지막 연기를 지켜봤던 전 세계 피겨 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김연아가 비로소 현역 은퇴 무대 아이스쇼로 팬들과의 마지막 작별을 알렸다.

김연아는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서울 방이동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삼성 갤럭시★스마트 에어컨 올댓스케이트 2014’를 통해 3만여 팬들에게 마지막 갈라쇼를 선보였다.


올해는 피겨여왕의 은퇴식답게 ‘안녕, 고마워’를 뜻하는 스페인어 ‘아디오스 그라시아스’를 주제로 예전의 아이스쇼 보다는 좀 더 차분하면서도 팬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어가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실의에 빠져 있는 국민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바람도 담았다.
현역 마지막 무대인 이번 아이스쇼에는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터인 알렉세이 야구딘을 비롯해 스테판 랑비엘, 셰린 본, 데니스 텐, 리스트 타타아나 볼로소자-막심 트란코프, 알리오나 사브첸코-브루노 마소 등이 참여해 멋진 연기와 함께 김연아를 추억하며 그의 은퇴를 축하했다.

렛 잇 고로 새로운 도약 형상화

또 김연아의 뒤를 이을 박소연, 김해진을 비롯해 한국남자 피켜스케이트의 기대주인 김진서와 중국 기대주 얀 한, 아이스댄스 팀인 레베카 김-키릴 미노프 등도 함께해 피겨스케이팅의 발전을 염원하는 김연아의 남다른 배려도 돋보였다.

이날 아이스쇼는 인기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OST ‘렛 잇 고’로 공연 시작을 알렸다. 오프닝 곡부터 김연아의 메시지를 전달해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안무가 데이비드 월슨은 “훌훌 털어내고 새로운 도약을 향해 나아가라는 의미를 담았다”며 “김연아의 은퇴에 걸맞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김연아는 이 노래에 맞춰 스테판 랑비엘, 셰린 본, 알렉세이 야구딘 등 다른 선수들과 함께 아름다운 군무를 펼쳤다. 특히 그는 영화 속 주인공 여왕 ‘엘사’처럼 자신의 길을 가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해 화려한 조명과 출연진속에서도 더욱 빛을 발했다.

1부 공연 마지막에 등장한 김연아는 지난 올림픽 시즌 쇼트 프로그램이었던 ‘어릿광대를 보내주오’를 완벽히 소화해내 현역시절 연기의 정점을 찍었다.

더욱이 판정논란 속에 은메달을 목에 건 것에 대한 아쉬움을 반영한 듯 더블악셀, 트리플살코, 더블악셀 등의 점프를 완벽히 소화해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물론 김연아는 이번 공연에서 지난 시즌 롱 프로그램이니 ‘아디오스 노니노’를 선보이고자 했다. 하지만 올림픽 이후 소화해야 하는 일정이 많았고 롱 프로그램을 줄여서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쇼트 프로그램을 선택했다고 양해를 구한 바 있다.

투란도트 선수생활의 마지막 장식

나인 챔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함께 한 2부에서는 선수들의 연기와 생생한 연주가 하모니를 이루며 이번 공연의 절정을 만들었다.

2부에서는 이번 쇼를 위해 준비한 마지막 갈라 쇼인 오페라 ‘투란도트’의 ‘넷선 도르마(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선보였다.

넷선 도르마는 피겨 스케이터들이 자주 사용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김연아는 그 때문에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었다.

윌슨은 공연 전 기자회견에서 “김연아가 늘 이 곡에 맞춰 스케이팅을 하고 싶어했다”며 “은퇴무대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선곡했다”고 귀띔했다.

마치 그간의 한풀이라도 하듯 붉은 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김연아는 웅장한 투란도트의 멜로디에 맞춰 마지막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트리플 살코와 더블 악셀로 이어진 두 개의 점프를 완벽히 소화해냈고 그만의 아름다운 몸짓으로 김연아만의 ‘넷선 도르마’를 탄생시켰다.

여기에 공연 중간 중간 등장하는 출연진의 동영상 메시지와 김연아의 경기모습들은 여왕을 떠나보내야 하는 팬들의 눈가를 촉촉히 만들었다.

특히 그는 마지막 갈라 프로그램에 앞서 사랑과 감사의 메시지를 동영상으로 전해 눈길을 끌었다.

김연아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힘들고 지칠 때 다시 일어서 뛸 수 있는 용기가 생겼던 건 점수나 메달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건 바로 여러분”이라며 “고마워요 항상 저의 힘이 되어주어서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 관객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진 피날레 무대에서는 소프라노 강혜정과 테너 정의근이 부른 ‘타임 투 세이 굿바이’에 맞춰 김연아와 모든 출연진들이 나와 마지막을 장식해 팬들과의 아쉬운 작별을 정중히 고했다. 더욱이 피날레 무대는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세계 정상의 자리에서 노력해온 김연아가 영광스럽지만 힘겨웠던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대단원의 마침표로써 손색이 없었다.

선수생활 마침표 끝내 눈물로 적셔

공연 마지막 날 커튼콜이 끝난 뒤 김연아는 “이제는 정말 정말 마지막”이라며 “선수생활을 은퇴하는 아이스쇼였는데 3일 동안 너무 즐거웠다. 은퇴무대인 만큼 완벽한 모습 보여드리기 위해 긴장도 했는데 호응을 많이 해주시고 팬분들께서 즐겁게 놀다 가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나 공연장에서 마지막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던 김연아도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끝내 울음을 터트려 선수생활의 아쉬움과 후련함을 동시에 드러냈다.

김연아는 자신의 오랜 파트너이자 안무가인 윌슨이 따듯한 말로 격려하자 그제서야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제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피날레 전에 해진이가 막 울고 있더라. 그래서 눈물이 나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았는데 주변에서 계속 울고 하니까 눈물이 난 것 같다. 선수생활이 정말 길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윌슨은 “안무가로서 김연아를 지도한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완벽한 최고의 순간이었다”면서 “은퇴 무대를 보는 심정이 씁쓸하면서도 달콤하다. 저희 어머니께서 곁에 두기보다 세상에 내보내려고 저를 키웠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제가 김연아를 대하는 감정”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너의 안무가로서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며 김연아를 포옹했다.
이로써 김연아의 17년간의 긴 선수생활은 공식적으로 마무리 됐다. 특히 그는 이제 태극 마크를 내려놓고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아직 김연아는 피켜스케이터의 삶 이후에 대해 뚜렷한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번 공연내내 강조했듯이 지금은 김연아에게 휴식이 가장 필요한 삶의 모습일지 모른다.

 

은퇴 후 3가지 시나리오 급부상

김연아는 “올림픽 이후 잠깐의 휴식을 취했지만 공연 때문에 새 안무를 몸에 익히는 등 선수생활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면서 “앞으로의 계획은 급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휴식을 취하면서 시간을 두고 생각하며 결정하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처럼 김연아가 선수로서 공식 이별을 고했지만 여전히 그의 행보를 두고 관심이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본인은 푹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보겠다고 말했을 뿐 구체적인 얘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가운데 지금까지의 상황을 고려해 전문가들은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구닐라 린드베리나 중국 쇼트트랙 스타인 양양처럼 IOC위원이 되는 것이다. 일찌감치 김연아는 IOC 선수위원의 꿈을 갖고 있다고 밝혔고 이를 위해 소치 대회에 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2018년 평창올림픽보다 2년 전인 2016년 리우올림픽 때 전종오나 장미란 선수가 하계종목 선수위원으로 당선되면 규정상 선수 위원은 무산된다. 하지만 린드베리나 양양이 선수위원이 아닌 일반 IOC위원인 점을 감안하면 2022년 이건희 IOC위원 임기가 만료되는 때에 맞춰 도전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미셸 콴이나 아라카와 시즈카처럼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뒤 아이스쇼를 펼치며 TV해설가로 변신하는 것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마지막으로 카타리나 비트나 소냐 헤니처럼 연기자나 모델, TV쇼 진행자 등의 연예계 진출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다.

특히 월슨은 기자회견에서 김연아에게 추천하고 싶었던 또 다른 곡이 있느냐는 질문에 “추천하고 싶었던 곡이라기보다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며 “기존에 했던 제임스 본드라든지 지젤 같은 김연아를 상징화시켰던 그런 곡들로 빙상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영화로 제작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라고 말해 피겨스케이팅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또 그는 “카르멘이 아이스쇼에서 했던 것을 실제로 구현했던 적이 있다. 그런 식의 심리적인 감각으로 제작된 사례가 있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에 구동회 올댓스포츠 부사장도 “생각하고 있었던 일인데 월슨이 먼저 말해버렸다”면서 “꼭 실현됐으면 좋겠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김연아의 새로운 도전에 피겨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김연아의 은퇴를 두고 아쉬운 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약 40년 동안 피켜스케이팅을 취재해 온 미국 시카고 트리뷴의 필립 허쉬 기자는 지난 8일 자신의 SNS를 통해 “김연아가 몹시 그리울 것이다. 김연아가 은퇴 무대를 가졌다. 그녀의 마지막 스케이팅은 ‘공주는 잠 못 이루고’였다”며 김연아의 마지막 갈라 프로그램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다.

그는 또 “내가 취재한 10번의 올림픽을 통틀어 김연아는 2010년대 가장 위대한 연기를 펼쳤다. 그 경기를 볼 때마다 그것이 엄청난 연기였음을 깨닫게 된다”고 밝혔다.

독일의 피겨 전설 카타리나 비트도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김연아가 ‘리피트 클럽’에 들어왔으면 좋겠다” 아쉬움을 드러냈다.

리피트 클럽은 올림픽에서 2연패 이상의 기록을 달성한 선수들이 가입하는 그룹이다.

이제 김연아는 이번 아이스쇼를 끝으로 피겨스케이터가 아닌 다른 삶을 선택할 계획이다. 그렇지만 그간 남들과 다른 피나는 노력으로 정상의 위치에 오른 만큼 새로운 변신에도 피겨 여왕 김연아이기에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김연아는 이제 온 국민의 가슴속에 전설로 남았다. 그간 국민들을 기쁘게 했고 행복하게 했던 그의 노력과 결실에 다시금 박수를 보낸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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