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맥스’-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휴맥스’-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 박시은 기자
  • 입력 2014-05-12 13:35
  • 승인 2014.05.12 13:35
  • 호수 1045
  • 4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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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도와 실험…셋톱 박스 ‘전설’ 만들다

 

▲ 주제 강연하는 변대규 휴맥스 대표이사

 

휴맥스는 아날로그 가전에서 디지털 가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디지털 셋톱박스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회사다. 현재 변대규 휴맥스 대표(사진)는 NHN과 함께 벤처기업 1세대이자 연매출 1조 원을 돌파한 성공한 벤처 기업 신화의 주인공으로 손꼽히고 있다.

첫 번째 기회, 창업

1989년 2월 관악산 기슭 끝자락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부근의 허름한 사무실에 서울대학교 제어계측학과 출신 몇 명이 모였다. 모두 변 대표와 가까운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사무실에 ‘건인시스템’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이렇게 시작한 회사는 2010년 연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이보다 앞서 1989년 초반 변대규 대표를 비롯해 세 사람은 신림동 포장마차에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진로를 논의했다. 그들은 모두 서울대학교를 졸업했거나 대학원에 다니는 동기동문이었으며, 사업을 하려는 의지가 넘치고 있었다. 그들은 일단 사업에 필요한 모든 절차나 자금 마련을 변 대표에게 위임했다.

사무실을 차린 변 대표는 우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술신용보증기금을 찾아갔다. 사업자금으로 5000만 원짜리 보증서를 신청하자 담당 직원이 그에게 집문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당시 서울 하숙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변 대표가 사실대로 말하자 직원은 변 대표를 학생으로 봤는지 “하숙을 하는 학생이 보증을 받으러 오는 것은 처음입니다”고 답했다.

어렵사리 창업자금을 확보한 변 대표는 그때부터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변 대표는 처음 5년 동안은 무작정 기술 개발에만 매달렸다.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과 동료들의 기술로 개발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하여 주로 공장 관련 용역 사업을 했고, 비디오 신호처리 등에 주력했다.

이때 변 대표는 시장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제품만 개발했기 때문에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런 시행착오 끝에 ‘시장이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그 과정에서 나온 개발제품은 ‘PC용 영상처리보드’였다.

제품 개발 이후 광고문을 작성하면서 마지막에 영상 위에 자막을 넣을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자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이 제품이 나올 즈음 노래방 붐이 일어났는데 노래방 영상에 가사를 띄우는 데에 이 기술이 사용됐다.
변 대표는 창업할 때부터 카메라에 들어오는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바꾸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 변 대표는 얼마 안 있어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할 것을 예측하고 이런 시대가 주는 기회를 잡기로 마음먹었다. 변 대표는 아날로그 기술에 기반을 둔 가전 사업이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면서 커다란 변화가 올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이렇게 변 대표는 드디어 디지털 가전을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결정했다.
1990년도 후반, 변 대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기류를 감지했다. 앞으로 디지털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한 변 대표는 셋톱박스의 기초가 되는 ‘가요 반주기’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그럭저럭 됐다. 구매도 조금씩 이뤄져서 그런대로 버틸만했다. 그러나 그에게 뜻하지 않은 위기가 찾아왔다. 그것도 점차 찾아온 것이 아니라 단번에 태풍같은 위기로 몰려왔다.

위기 뒤에 찾아온 기회

유럽 대형 방송사에 납품하기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납품단계에 들어갔는데, 그 방송사가 다른 방송사에 넘어가면서 그동안 준비했던 일이 모두 물거품이 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탈리아와 남아프리카에 수출했던 제품들에서 결함이 발견돼 반품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그렇게 결국 1997년에는 수출을 단 한 건도 하지 못하는 불행을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1997년 해태전자가 도산했다. 당시 해태전자에 CD가라오케를 납품하던 휴맥스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해태전자는 해태그룹 소속으로 대기업이라 담보도 잡지 않고 납품을 했기 때문에 휴맥스는 240억 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하게 됐다. 그와 함게 산책을 하던 최고재무책임자는 그에게 “이쯤에서 그만 사업을 접는 것이 좋겠습니다”는 극단적인 말까지 할 정도였다.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이 되자 변 대표는 직원들 모두 제 갈 길을 가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의 앞날도 생각했다.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다시 발길을 돌려 찾아간 사무실에는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서울대 동기동문들이 변 대표 곁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눈물을 머금고 퇴직금을 주며 떠나라고 했지만 이들은 다음 날 아침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들은 다시 머리를 맞대고 신제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회사의 재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신제품이 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면서 1997년 매출은 142억 원을 기록했다. 이후로도 매년 사업이 번창하면서 2005년에는 매출이 5000억 원을 돌파했다.

변 대표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기회를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그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회사 내 시스템을 고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를 통해 회사는 계속해서 발전을 이어나갔다. 그리하여 2000년에는 매출이 1조52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또한 전 세계 15개국에 법인과 지사를 뒀으며 폴란드에 자체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뒀고, 80여개 국에 세톱박스를 수출하고 있다.

휴맥스는 여전히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젊고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의미있는 목표를 향해 도전해 나가면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이로써 휴맥스 브랜드를 알고 있는 전세계 고객에게 더 행복한 생활을 제공하는 데 기여하는 기업으로 발전해 나갈 계획이다

<끝>
<정리=박시은 기자>
<출처=대한민국 최고의 CEO│지은이 이주민│미래북>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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