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구도 안착 아닌 경영수업 중…사실상 오너인 사람들
“때 이르다”던 경제단체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가정의 달 5월이다. 그래서인지 재벌가에도 가족을 중시한 이야기가 이목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황태자’란 수식어만 가졌을 뿐 은둔형 경영수업을 받던 이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일부 경제단체와 해당기업 대외협력팀이 “아직은~”이라는 말로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지만 그래도 3·4세 경영인의 행보가 주목받는 건 사실이다. 그들이 왕좌에 오르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구광모 부장이다. 구본무 회장의 외아들인 구 부장은 지주사 LG로 최근 자리를 옮겼다. 계열사 협력, 조율을 담당하는 LG 시너지팀으로 발령난 만큼 실무경험을 쌓은 후 후계구도를 위한 마지막 레이스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에 따르면 구 부장은 최근 LG전자 HA(홈 어플라이언스)사업본부에서 LG 시너지팀으로 부서 이동했다. LG전자 창원공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3개월 만이다.구 부장은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에 대리로 입사 후 2009년부터 2012년까지 LG전자 미국 뉴저지 법인에서 근무했다.
2013년에 귀국해 LG전자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 선행상품기획팀에서 근무한 후 올해 1월부터는 HA(홈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 창원사업장에서 기획관리 업무를 하며 현장 실무 경험을 쌓았다. 시너지팀장은 현재 LG전자에서 지난해 말 자리를 옮긴 권봉석 전무가 맡고 있다.
LG 관계자는 “구광모 부장이 지주회사로 이동한 것은 LG의 전통과 방식대로 현업에서 차근차근 실무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 구 부장의 향후 행보에 이목을 모았다.
이웅열 코오롱 그룹 회장의 장남 규호씨도 현재 코오롱인더스트리로 입사해 경영수업에 들어간 상태다.
이로 말미암아 코오롱그룹은 창업주인 이원만 회장을 시작으로 이동찬 명예회장, 이웅열 회장, 규호씨까지 이어지는 4세 경영구도 밑그림이 그려졌다.
규호씨는 현재 코오롱글로벌 차장으로 근무 중이며 건설과 철강 수출업을 영위하고 있다.
재계는 오너家 3세 이웅열 회장이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 코오롱그룹의 차세대 먹거리를 개척하는 역할을 다하고 이후 철저한 장자 승계원칙에 따라 4세에게 기업의 미래를 맡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매일유업 김정완 회장의 딸, 김윤지(28)씨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영일선에 합류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윤지씨는 작은아버지인 김정민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유아용품 업체 제로투세븐에서 바닥부터 실무경험을 다지고 있다. 매일유업은 고(故) 김복용 선대 회장의 장남인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이 경영 전반을 총괄하고, 차남인 김정석 부회장이 형을 돕고 있다.
막내인 김정민 대표는 자회사인 유아용품 사업 제로투세븐을 맏고 있다. 제로투세븐은 매일유업이 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김 회장과 김 사장이 각각 8.3%, 16.3%를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재현 CJ그룹 회장(52)의 외아들 선호(22)씨는 CJ제일제당에서 직무체험을 통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4월부터 박태영(35)씨가 경영관리실 총괄임원(실장)으로 신규 임명돼 경영수업을 진행중이다. 박 실장은 박문덕 회장 장남으로 영국 런던 메트로폴리탄대학교를 졸업하고 2009년부터 경영컨설팅 업체 엔플랫폼에서 기업체 인수합병(M&A)업무를 주도했다.
무늬만 경영자 이젠 옛말 분위기
교원도 후계 경영 수업이 한창이다. 장 회장의 아들 동하씨(30)는 올해 그룹 전략기획본부 신규사업팀 대리로 경영에 합류했다. 장 회장 맏딸 선하(31세)씨와 사위 최성재씨도 호텔사업부문에서 올해부터 각각 차장과 부문장으로 장 회장을 돕고 있다.
이쯤되면 일부 경제단체와 시민단체가 나서서 ‘경영세습' ‘무늬만 경영자'라는 비난도 서슴치 않을 터다.
하지만 최근 이런 분위기조차 조용하다. 이젠 이들이 추후 왕좌에 오르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통념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들이 문제를 만들거나 부자간 잘못된 모습이 보일 땐 따끔한 지적이 필요하다는 게 경제단체의 중론이다. 이 때문에 이들 3·4세에 대한 행보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향후 이들의 행보에 산업계의 어깨가 걸린 만큼 이젠 이들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황태자들은 오너 일가다. 특별한 잘못이 없는 한 이들이 경영을 세습하는 것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다. 다만 창업주의 정신이 퇴색되고 후계구도로 인해 주주회사의 주주가 피해를 본다면 이를 바로 잡아줄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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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