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나원의 알·조·직] “위로와 격려의 포옹이 무슨 성희롱?”
[구나원의 알·조·직] “위로와 격려의 포옹이 무슨 성희롱?”
  • 구나원 강사
  • 입력 2014-05-02 10:18
  • 승인 2014.05.02 10:18
  • 호수 1044
  • 4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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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고 조심하자 직장내성희롱

사회복지원에서 물리치료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은수는 정규 근무 외에도 월 1~2차례 주말 당직 근무를 선다. 지난해 10월 어느 토요일, 어느 때처럼 당직근무를 하고 있는 은수에게 원장 A씨가 찾아왔다. 당시 은수와 갈등이 있었던 간호사와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대화가 끝난 후 A씨는 은수를 껴안았다. 은수는 수치심을 느꼈지만 원장은 위로와 격려의 포옹이라며 넘어갔다.

A씨는 평소에도 여직원들에게 “남자친구랑은 어디까지 갔냐?”, “(진도가)요즘 워낙 빠르잖아”, “가슴이 너무 작아보인다. 브래지어를 큰 걸로 바꿔봐”와 같은 성적발언을 자주했지만 다들 그냥 넘기는 반응이라 은수 역시 거부감을 표시하기 어려웠다.

2달이 지난 12월 31일. 차트를 정리하는 은수를 A씨가 뒤에서 안아 들어 올렸다. 이에 놀란 은수가 소리를 지르자 A씨는 “묵직하네”라고 말하고 은수를 내려놓으면서 두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만졌다. 참다못한 은수는 원장에게 항의하면서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원장은 “내가 나이가 몇인데 다른 생각을 했겠냐?”라고 말하며 사과도 없이 자리를 피했다.

이에 은수는 퇴사하기로 마음먹고 친구인 나영에게 A씨에게 당한 일들을 털어놓았다.

가해자 주관적 의도 성희롱 판단 고려요소 ×

원장의 입장에서는 ‘위로하기 위해서’ 또는 ‘딸 같아서 농담한 것’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반인의 상식에서 껴안는 것은 직장에서 위로의 방법이라 볼 수 없고, 가해자의 주관적인 의도는 성희롱 판단의 고려요소가 될 수 없다.

어떤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양 당사자의 업무 관련성 여부, 성적 언동의 사실관계, 해당 언동이 행해진 장소 및 상황, 행위 상대방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인 반응 등의 구체적 사정을 종합하여 행위의 상대방이 그러한 행위를 원치 않았고, 불쾌감을 느꼈는지, 합리적인 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성적 함의가 있는 불쾌감을 주는 행위였는지 등을 종합하여 결정하게 된다.

먼저 은수는 A씨가 운영하는 시설의 직원으로 고용관계에 있고, 은수가 당직근무 중 발생한 일이므로 업무관련성이 인정된다. 그리고 성인을 뒤에서 들어 올릴 경우 신장 및 체중 등으로 손이 가슴부위에 닿을 개연성이 높은 점, 친구 나영에게 사건에 대해 호소한 사실들을 고려하여 가슴을 만졌다는 내용을 사실로 인정하기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성희롱 피해를 입으면 그 행위자에게 명확한 거부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성희롱 사건의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현장에서 직접 거부감을 표시하거나 곧바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희롱 행위를 부인하기도 하므로 원하지 않는 성적 언동에 대한 명확한 거부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행위자에게 거부 의사를 표시하기 어려운 경우, 서면으로 성희롱 행위를 중단 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메일이나 메신저 등을 이용해 거부 의사를 증거로 남겨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성희롱에 대한 거부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에는 성희롱 당시의 날짜, 시간, 장소, 구체적인 내용, 목격자나 증인, 성적인 언어나 행동에 대한 느낌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이후 해결 과정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한다. 인권위에서는 성희롱 사건의 직접 목격자가 아닌, 내용을 전해들은 제3자의 진술도 증거로서 폭넓게 인정하고 있으므로 가족, 주변 친구 등에게 성희롱 발생 후 빠른 시간 내에 그 사실을 알리는 것도 성희롱에 대한 대처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

행위자는 피해자가 현장에서 직접 거부감을 표시하거나 곧바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성희롱의 성립을 부인하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직장 내 관계가 현실적으로 대등하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대다수 직장인이라면 사내관계나 고용관계의 원만한 유지를 위해서 내키지 않더라도 내키는 척 따라야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상대방이 자신의 승진이나 고용에 영향을 미칠 만한 지위에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생활 부적응자’라는 낙인이 찍힐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면 “싫다”고 말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성희롱 피해자들도 이러한 이유에서 처음에는 묵묵히 참고 견디려 했던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결국 더 이상 직장을 다니기도 어려울 정도의 피해를 입게 되면 스스로 직장을 떠나거나 정신과 치료를 받기에 이르는 사례 또한 비일비재하다. 그러한 직장 내 권력관계와 피해자의 입장을 감안하지 않은 채 바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 피해자 탓이라고 책임을 돌릴 수 있을까? 인권위에서는 성희롱 발생 당시 피해자가 명확한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성희롱 성립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성희롱은 재발 가능성이 높다. 성희롱 행위자를 징계한 것만으로 이후 성희롱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양성 평등한 조직문화, 인권을 존중하는 조직문화가 형성되어야 성희롱의 재발을 막을 수 있으나, 조직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성희롱은 행위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성희롱 행위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재발가능성을 감소시키기는 어렵다.

성희롱 발생 후 성희롱의 재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강력하게 다시 실시하고, 조직문화에 대한 점검과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아도 염통 안이 곪는 것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일에는 영리한 듯 하나 당장 나타나지 않는 큰 손해는 깨닫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바로 보이는 일의 처리로 끝낼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재발하지 않도록 서로 존중하는 조직문화를 형성할 수 있도록 나부터 노력해야겠다.

※ <구나원의 알조직>시리즈는 이번 1044호를 끝으로 연재가 끝났습니다. 그동안 알조직에게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구나원 강사>

구나원 강사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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