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를 위해 물러서라…‘독’이 된 박심
당심과 민심은 밖으로…비박은 앞으로
국회의장-정의화, 당대표-김무성 앞세운다

[일요서울 | 박형남 기자] 박근혜 정부 출범 이래 여권에 최대의 권력 투쟁이 몰아닥칠 전망이다. 지난 새누리당 경남지사ㆍ대구시장 경선에서 친박 주류는 보이지 않게 특정 후보를 지원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친박 주류에 대한 ‘당심’도 좋지 않다. 더구나 세월호 침몰 참사라는 돌발변수를 만나 친박 주류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졌다. 특히 여권 일각에서는 세월호 침몰 참사로 인해 애도 정국에서 드러난 심각한 민심의 이반을 확인하면서, 당-청 관계가 수평적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을 돕는 것이고, 국정운영의 동력을 다시 확보하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비박계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비박진영에서 “지방선거 이후 친박 주류는 2선으로 후퇴해야 한다”며 전의를 불태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국회의장, 당대표, 원내대표를 독식하려 했던 친박 주류에게는 이 구성마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힘이 실리고 있는 비박계의 권력구상 등을 들여다봤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은 싫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대구시장 경선 성적표를 받아본 새누리당 대구지역 의원실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만큼 친박계인 서상기 의원이 될 것으로 봤다”며 “여론조사에서 3위에 그쳤던 권영진 전 의원이 현장 투표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은 대이변이다. 친박 후보들의 조직력 문제는 둘째치고 당원들 사이에서 당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시장 경선 이변 “기득권에 대한 반기”
사실 당내에서도 친박 주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많았다. 비주류 측 한 관계자는 “친박 주류가 모두 독식을 하려고 한다. 이로 인해 서청원 의원과 친박 주류간의 권력투쟁도 일어나고 있다. 특히 친박 주류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자기정치를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고 비꼬았다.
친박 주류의 독식과 공천과정을 지켜봤던 비박계의 시선은 착잡했다. 비박계는 국정을 책임지는 주류가 아님에도 오히려 친박 주류보다 더 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그대로 가다가는 지방선거에서 패배한다. 새누리당 텃밭인 TK(대구ㆍ경북),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다 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2인자가 없고, 박 대통령이 독식하다시피 해 정권 재창출도 못하고 이대로 무너질 수 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당원들조차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고 있다. 대통령도 싫고 친박도 싫다는 것이다. 이제는 비주류에서 나설 때”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렇게 위기를 느끼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무엇보다 먼저 박 대통령을 믿는 민심의 인내심이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친박 주류에서는 박심을 활용해 권력을 잡으려고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가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 국정원 간접조작 사건, 세월호 침몰 참사 등을 거쳐 오면서 민심이 하나둘씩 떠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거나 박 대통령만 보호해왔다. 이는 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때문에 ‘곪고 곪은’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가 레임덕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 불길한 첫 번째 징후로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로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50%대로 떨어진 것을 들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참사와 관련해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등 돌린 민심을 회복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당분간 박 대통령의 추락한 지지율을 쉽게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앞서 말한 관계자의 말처럼 지방선거의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럴 경우 공천을 책임졌던 친박계 인사들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청와대에서 보이지 않게 공천작업에 관여했던 인사들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방선거 패배에 따른 이른바 ‘친박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민심의 인내심이 한계점에 이른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새누리당 ‘당심’ 이반 현상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경남지사 경선에서는 친박 주류 박완수 전 창원시장을 밀었으나 홍준표 지사에게 고배를 마셨다. 대구시장 당내 경선에서도 친박 인사들이 몰락하고, 비박계 인물인 권영진 전 의원이 승리했다.
또한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 역시 거세다.
비주류 측 핵심관계자는 이에 대해 “의원들조차 크게 위기의식을 느낀 이유는 바로 경남지사, 대구시장 경선에서 당원 상대 결과가 결정적이다. 이번 세월호 침몰 참사에서 민심 이반을 당원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당원조사에서 친박을 제치고 비박계 인사가 더 앞섰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 정권을 지탱해준 당원들의 반란이 심각할 경우 박 대통령은 앞으로 국정운영 동력을 상당부분 상실해 리더십도 급격하게 위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박계는 향후 정국에 대처하기 위해 지방선거 이후 활발한 움직임을 벌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비박계의 축인 김무성 의원이 당권도전을 통해 국정운영의 동반자, 정부 조력자 역할을 하기 위해 전면에 나설 예정이다.
김기춘 사퇴 목소리 ‘솔솔’ 대통령 견제 필요하다
특히 비박계에서는 ‘국회의장-서청원, 당대표-최경환, 정책위의장-윤상현’과 ‘국회의장-황우여, 당대표-서청원’이라는 친박 주류의 권력구상을 막고, 당의 변화와 박근혜 정부를 위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전략으로 배수진을 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 당시 이상득 전 의원을 향해 정풍운동의 직격탄을 날려, 2선 후퇴시켰던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명박 정부 때 박 대통령이 국민을 등에 업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견제구를 날려 대권을 거머쥐었던 일도 참고할 만하다.
비박계에서는 친박 주류를 견제하기 위한 권력구상 복안도 있다. 우선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총체적 부실에 대한 책임을 거론하며 친박 주류와 청와대 핵심관계자들에 대한 사퇴 목소리도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 국회의장 행보를 취하고 있는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인천시장 차출설이 나왔지만 응하지 않았다. 특히 핵 방호법안 처리 불발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 국회선진화법 논란도 악재다. 더구나 무색무취하다는 평과 함께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수 없다는 점에서 반대하고 있다.
또한 당권주자인 서청원 의원은 비리 전력 등이 문제가 되고 있고, 최경환 원내대표와 홍문종 사무총장 등 친박 주류에 대해서는 공천 실패에 대한 책임론과 함께 박심을 이용해 자기정치를 하려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더구나 당권도전 과정에서 지역민심에 반하는 행동을 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윤상현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실세로 불리며 청와대의 입 역할을 대신하고 있어, 비박계에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교체여론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비박계 한 의원실 관계자는 “금기시 되었던 ‘레임덕’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여기서 실책하면 끝난다. 때문에 당과 청와대를 좌지우지하는 김기춘 비서실장은 물론 친박 주류들이 2선 후퇴해야만 당이 살고, 박근혜 정부도 사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박계 내에서는 친박 주류 2선 후퇴와 함께 ‘국회의장-정의화, 당대표-김무성’ 카드를 띄우려는 물밑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진행되고 있다. 결국 친박 주류가 전면에 계속 나서면 박근혜 정부는 ‘레임덕’ 뿐만 아니라 당으로서는 정권 재창출이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박계의 전선은 분명해 보인다. 그들의 궁극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중심’을 잡고, 민심을 잡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대구시장 경선 등은 비주류가 앞장서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전주곡이다.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미흡한 대처만으로도 박 대통령을 견제할 인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드세다. 그런데 지방선거까지 패배하면 친박 주류 및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2선 후퇴론은 본격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친박주류 朴 흔들기 vs 비박계 박근혜 중심 잡기
일각에서는 비박계가 당내 권력을 잡고, 박근혜 정부를 흔들기 위해 전면에 나서려 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당내 인사들은 친박 주류가 독식할 경우 “새누리당은 몰락의 길로 갈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비주류에서는 기득권을 가지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 박근혜 정부의 중심을 잡기 위함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어쩌면 당내 비박계 대표주자인 김 의원이 ‘정중동’ 행보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실제 김 의원은 세월호 침몰 참사와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고등학생 등 450명을 태운 여객선이 진도 해상에서 좌초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지금 우리 해경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는데, 승객들 모두 안전히 구출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고 말만 한 채 공개적 행보를 자제하고 있다. 또 김 의원 측근들 사이에서 비박계 대표주자로서 청와대와 각을 세우기보다는 국정운영의 조력자, 국정동반자로서 역할을 강조하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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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