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들은 라디오 계기… “같은 길 걸은 선배로서 꼭 해야 할 일”
후원금·자원봉사 도움 이어져 “동생·자식으로 생각하고 품어주길”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가수 인순이가 ‘쌤’으로 변신했다. 가수 인생 38년 만에 다문화 대안학교 ‘해밀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그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그녀는 그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계속 고민해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라디오에서 다문화 아이들의 어려움을 듣고 학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순이가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다문화)로 어린 시절부터 차별을 당한 아픔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그녀는 성공한 뒤 다문화 출신이란 꼬리표를 버리고 싶었지만, 결국 버릴 수 없었다며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갈 아이들에게 강한 마음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일요서울]은 가수 인순이, 아니 해밀학교 이사장 겸 교장‘쌤’ 김인순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다음은 인순이와의 일문일답이다.
- 가수 생활 이야기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가수 인순이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내가 부르는 노래는 모두 내 것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저 노래가 이런 노래였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 가수 인순이가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 아직도 내가 현역으로 어린 친구들과 노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운’이라고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우리 후배들이 나를 많이 도와줬다. 결혼한 뒤에는 박진영과 김형석이 음반을 내주겠다며 <또>라는 곡을 줘서 재기할 수 있었고, 다음에는 조PD가 <친구여>를 같이 하자고 해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또 콘서트에서 불렀던 카니발의 <거위의 꿈>도 대박이 났다.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아버지>도 반응이 좋았다. 내가 보기에는 내 힘으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물론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도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내 노력이 인정받은 것은 ‘운’인 것 같다. 후배들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기회를 줬고, 대중들은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받아줬다. 그래서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가수 인순이의 학교장 변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학교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2012년 추석쯤인가. 라디오에서 다문화 아이들의 고등학교 졸업률이 28%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이전부터 내가 성공한 이유는 어떤 일을 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던 중 라디오에서 다문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아, 이 일이다!’라고 느꼈다. 물론 많은 고민을 했다. 그렇지만 그 길을 걸어온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 해밀학교는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인가?
▲ 해밀학교는 처음 다문화 아이들을 위해 만든 학교였다. 개교 전에는 다문화 아이들과 일반 학생의 비율을 7대3으로 정했는데 지금은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개교한 지 1년 됐는데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학교에서 상처를 받은 일반 아이들도 많이 찾아온다. 그래서 지금은 다문화 학교가 아닌 다문화 아이들을 많이 배려하는 대안학교로 운영하고 있다. 일반 학생과 다문화 학생들의 비율은 5대5로 비슷하다.
- 학생들은 해밀학교를 어떻게 알고 오게 되는가.
▲ 일반 아이들은 소문을 듣거나 학교 홈페이지에서 커리큘럼을 보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문화 학생들은 한국말이 어눌하다보니 학교를 다녀도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다. 또 다문화 부모들은 아이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직접 찾아서 데려오기도 한다. 개교할 때는 6명으로 시작했지만 1년 만에 20명으로 늘었다.
- 아이들이 생활관에서 머물며 24시간 함께 지내고 있다. 아이들의 하루 생활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 오전부터 시작되는 정규수업은 보통 5~6교시로 진행된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과 기본 수업에 추가로 다문화 학생들을 위해 부모님 나라의 말을 배우는 시간이 있다. 정규수업이 끝난 뒤에는 노작·미술·음악·태권도·수영·기타·사물놀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배운다. 일과가 끝나고 생활관으로 들어가면 아이들끼리 총회를 열거나 자기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다가 오후 9시쯤 모든 일과가 끝난다. 또 매달 첫째 주 토요일은 울고리 데이(직업체험의 날)로 아이들이 관심 있어 하는 직업군의 멘토가 찾아와 강의를 해준다.
- 학교 이사장 겸 교장으로 본인이 직접 하는 일은 무엇인가
▲ 학교에서 하는 일이라고 하면 사실 후원금 모아다 주는 것밖에 없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있다. 바로 아이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왜냐면 아이들에게 “나는 아버지가 미국 사람”이라고 터놓고 말하면 거리감 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참 일본 총리가 망언을 하고 있을 때 한국인과 일본인 가정의 다문화 학생이 우리 집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둘이 같이 뉴스를 보다가 아이한테 “너는 일본과 관계가 나빠지면 기분이 어때?”라고 물어보니 대답을 하지 않더라.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양키 고 홈’이라고 하면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었어”라고 말했더니 “저도 그래요”하면서 웃더라. 이런 이야기를 나 말고 누가 할 수 있겠나. 아이들의 고민을 듣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래서 아이들이 “그래 나 다문화 가정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난 열심히 살 거야”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같은 길을 걸었던 인생의 선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인 것 같다.
- 아이들이 자랑스러운 순간이 있었다면
▲ 일주일에 한 번씩 생활관에서 아이들의 총회의가 열린다. 24시간 붙어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항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것을 매주 총회시간에 안건으로 내놓고, 토론한 뒤 대책을 정해 아이들 스스로 지켜나가고 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1년 동안 정말 많이 성숙해졌다. 지난번에는 학생회가 받는 30만 원의 장학금 사용처를 스스로 고민한 아이들이 우선 생일파티를 열고, 남은 돈은 꼭 필요한 곳에 쓰자고 결정했다.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능력이 생긴 것이다. 또 지난해 노작시간에 심은 옥수수를 판매해 60만 원이 생겼다. 그 돈의 절반은 올해 심을 씨를 샀고 남은 돈은 아이들과 선생님이 똑같이 나눠가졌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부모님의 고생도 이해하게 됐다. 아이들의 성장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 학교를 설립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 사실 나도 정말 학교를 설립할 줄 몰랐다.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래서 지인에게 “나 이런 일이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좋은 생각이라면서 같은 생각을 하는 다른 사람을 데려왔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사람이 오고, 또 다른 사람이 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였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나 혼자서는 절대 못했을 것이다. 그분들은 지금도 학교를 후원해주고 자원봉사도 해주고 있다. 사실 해밀학교는 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도움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서울예술전문학교에서 화장 강의를 해주고, 가수 진미령씨가 아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주고, 가수 김종진씨는 기타를 후원해줬다.
- 가수 이사장으로서의 장단점이 있다면
▲ 음. 단점은 내가 학생 교육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배우면서 하고 있는데, 사람들을 만났을 때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학교가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것에 대해 “당신이 돈 많이 버는데 왜 후원금을 받으려고 하느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이 아이들이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지려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학교 후원을 통해 아이들과의 끈이 연결된다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대로 장점은 연예인이다 보니까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고, 어딜 가더라도 (학교에)흥미를 가져주는 것이다.
- 사람들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많은 것 같다. 후원자들은 자발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인지 궁금하다.
▲ 그렇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학교를 위해 후원해준다. 인사 한번 나누지 못한 분들도 있다. 강사들의 경우 적은 수업료를 받으면서도 홍천까지 와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태권도 관장님께서도 장소 값만 받으신다. 또 여러 가지 체험에 초대해주시는 분들도 많다. 공연하는 단체에서 아이들에게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고 초대해 주기도 하고, 제과점에서는 연수를 시켜주기도 하고 좋은 곳에서 저녁식사를 대접해주기도 한다. 또 학교를 새로 지을 예정인데 어떤 건축가 분이 설계를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내일 만나기로 했다. 다문화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후원해주고 봉사도 해주고 있는 것 같다. 정말 감사하다.
- 아이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것은
▲ 흔들리고 상처받지 않는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 주고 싶다.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한국 사람으로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 아이들에게 정식 졸업장을 안겨주고 싶다. 해밀학교는 교육부 정식 인가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인가를 받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첫 번째로 학교를 새로 만들고 있다. 땅을 사고 건축이 시작되고 인가 낼 수 있는 조건의 학교를 만들고 있다는 서류를 준비 중이다. 앞으로 인가를 받기 위한 서류를 계속 얹어서 낼 예정이다. 하루아침에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학교는 공익사업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인가를 내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 해밀학교를 잘 키워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다. 최근에는 노래도 많이 하고 있지만 후원해주겠다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있다. 훗날에는 학교로 인해 감사한 사람들에게 갚는 어떤 일을 찾아볼 것 같다.
- 다문화를 향한 사회적 편견이 심한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 다문화 아이들과 사회가 모두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아이들은 우선 마음이 단단해져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잘해달라고 부탁해도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또 어린아이들 경우는 아무 말이나 내뱉을 수 있다. 상처받는 말을 들었을 때 본인 스스로 흔들리지 않도록 아이들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의 경우는 어차피 다문화 시대는 시작됐고 그렇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내 자식, 내 동생이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품어줄 수 있지 않을까.
jhooks@ilyoseoul.co.kr
◆ 해밀학교에 관심 있는 학생은… ◆
해밀학교는 이주배경 학생들과 일반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져 다름의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교육을 실현하고자 가수 인순이가 강원도 홍천에 개교한 미인가 기숙형 중·고통합 대안학교입니다. 2014년도 수시로 신입생과 편입생을 모집하오니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참조)
- 모집대상 : 중학교 1, 2학년 누구나 (다문화가족 및 강원지역 50%우선 선발)
- 홈페이지 : http://haemillschool.com
◆ 아이들의 후원자가 돼 주세요 ◆
가수 인순이가 설립한 해밀학교는 이주배경학생과 저소득층 학생을 위해 다양한 장학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이들이 차별과 편견 없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관심과 후원이 필요합니다.
- 입학 및 후원 문의 : 070-4184-8761, 이경진(010-9588-8761)
- 이메일 : info@haemill.sc.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