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기업가정신 - ⑭] 기본에 충실한 변화를 시도하자
[창조경제 기업가정신 - ⑭] 기본에 충실한 변화를 시도하자
  • 김의식 교수
  • 입력 2014-04-28 14:23
  • 승인 2014.04.28 14:23
  • 호수 1043
  • 4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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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태도에 대해 설명할 때 ‘상자 밖에서 생각하라(Think out of the box)'라는 말을 인용할 때가 있다. 즉, 기존관념의 한계에서 머물지 말고 자유롭게 생각하라는 말이다. 객관적인 생각에 머물면 객관적인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놀라운 생각의 능력을 잃어버린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창의성은 분명한 변화를 가져다준다. 흔히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 자유롭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창의성은 고민하고 몸부림치면서 무엇을 갈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의 능력은 주어진 환경에 놀랍게도 반응한다. 급변하는 국제관계, 경제전쟁, 세계화 등을 고려할 때 개혁은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진행되어온 과제이기 때문에 국가도, 개인도 새로운 환경에 맞게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다.

“세상의 변화는 많은 사람들의 힘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많은 사람들의 힘은 한 사람의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발전한다. 현대에 이르러 그 변화·발전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 격변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매일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어제의 사고, 어제의 행동으로는 변화하는 이 시대에 적응하기조차 힘겹다.

변화를 추구한 중국 탕왕(湯王)의 이야기이다. 그는 은(殷)나라 창건 이후 제도와 전례를 정비하여 13년간 재위한 훌륭한 임금이었다. 이 왕이 사용하는 세숫대야에는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진실로 날로 새로워지고 날마다 새로워지며 또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다. 생각이나 배움, 행동이 항상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가 미약하던 시대에 탕왕이 매일 사용하는 세숫대야에 훈계의 글을 새긴 이유는 자신이 세수할 때마다 이 글을 보고 초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어떤 현상을 마주할 때 항상 나에게 우선적인 한 방향의 의문이나 결론을 이끌어 내는 데 익숙하다. 즉 모든 것이 나 위주이고, 내 것, 내 이익 우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앞면, 뒷면을 다 봐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문제나 현상의 앞뒤를 다 봐야하는데, 그것을 추구하기가 근본적으로 어렵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달은 약 29.5일 주기로 그 모습이 변한다. 한마디로 달의 위상 변화다. 달의 모양은 음력 날짜에 따라 처음엔 달이 보이지 않다가 초승달→상현달→보름달→하현달→그믐달의 순서로 변해간다. 옛날 사람들은 밤하늘의 달을 보면서 달의 모양이 어떤 규칙을 가지고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규칙을 가지고 음력을 만들었다. 그 규칙은 너무 간단해서 누구나 다 한 달 동안 달을 잘 보기만 한다면 찾을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29일하고 12시간. 사람들은 이렇게 규칙적으로 모양이 변하는 달을 관측하면서 통찰에 이른 것이다. 달이 보이지 않는 날을 음력 1, 그러니까 음력 1일에는 하늘에서 달을 볼 수 없다. 초승달은 음력 3, 4일에 볼 수 있고, 상현달은 음력 8, 9일에 볼 수 있고, 음력 15일에는 변함없이 보름달이 뜨고, 음력 23, 24일에는 하현달이 뜬다는 일로 정하고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을 지나 그믐달이 뜰 때까지를 한 달로 정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말은 지구에서는 왜 달의 앞면이라고 부르는 반쪽밖에 볼 수가 없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달의 뒷면을 볼 수 없을까하는 의문을 가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달의 뒷면을 본다는 것은 자신이 직접 달에 가보거나, 달 뒷면으로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을 보내면 된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포기해 버린다. 그러나 불가능을 인정하는 것은 언제나 변화를 지향하는데 큰 방해 요소가 된다. 한동안 달의 앞면만을 보는 것처럼 살았다. 그랬더니 답답함과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둘째 치고, 이 다음에는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달의 경우와 자신을 비교해 볼 때 내 삶의 방식은 어떤지 한번은 자신에게 던져봐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기회와 위기는 함께 존재한다.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변화 안에서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기본에 충실해야 하다. 세월이 바뀌어 강산이 변한다 해도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돈과 권력 앞에서도 안 되는 것은 안 되고, 되는 것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되어야 한다.

세월호 침몰이 인재(人災)였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전 국민의 가슴이 다시 한 번 무너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기본에만 충실했어도 이번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전 국민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는 인명을 책임진 관계자들의 허술한 안전 의식으로 인해 수백명의 귀중한 생명들이 어처구니 없이 스러진 비극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다. 도대체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얼마나 부실한 것인가. 다른 곳은 안전한가. 악천후 속의 운항 허가, 안전장비의 부실 관리, 선원 교육훈련 부재, 승객 교육 부재 등 불법·무법·탈법이 만연하다. 어떤 상황 하에서도 안전에 대한 시스템이 작동하여야 한다.

지구촌에서 상상조차도 하기 힘든 전대미문의 끔찍한 사고가 그것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경제영토를 활발히 넓혀가는 선진 한국, 유엔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를 낸 나라, 정치외교와 경제외교의 강국 등등 자랑거리가 많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한국의 위신이 바닥 끝까지 추락하는 순간이다. 세월호의 안전을 위한 기본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은 이번 참사의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이번 참사를 되돌아 보면서 국가 차원에서는 말할 나위가 없지만 우리 국민 각자가 맡은 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한 개인이 평생을 자기 일에 충실하기 위하여 변화하는 정비기술을 익히면서 평생을 근면 성실하게 일해 온 미국 LA 대중교통국(MTA) 버스정비공 아서 윈스턴을 소개 하기로 한다. 그는 2006년 3월에 100세 은퇴를 했는데 퇴임식에서 취재경쟁이 일어났다. 그의 말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나는 평생 결근하지 않았다. 단 하루 결근했다. 그것도 아내의 장례식을 치르느라고 한 결근이었다” 그는 성실의 대명사로서 빌 클린턴으로부터 훈장도 탔다. “은퇴 후 고향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성실과 건강을 담보로 자기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 노장의 정신을 본받을 만하다.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말로 ‘거안사위(居安思危)’라는 말이 있다. 평안할 때 위험과 곤란이 닥칠 것을 생각하며, 잊지 말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위험이 닥치기 전에 위기상황을 대비하는 변화를 위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자기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모두들 개혁, 개혁 외치지만, “나는 개혁의 주체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데 잘못이 있다. 내가 무엇을 개혁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개혁되어야 하는 대상의 1순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참사의 모든 책임이 ‘네가 아닌 내게 있음’을 통감하면서 나 자신이 개혁돼야 할 1순위임을 재확인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김의식 교수>

■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의식 교수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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