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철호 회장은 서울 강남에서 부동산 임대업을 하던 일진실업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폼인테리어가구공업 대표로 있다가 부친의 뜻에 따라 일진실업 부사장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임대 사업을 하는 중에도 그의 마음속에는 ‘호텔’에 대한 꿈이 자라고 있었다.
유행을 창조하다

신 회장이 호텔에 대한 꿈을 처음으로 갖게 된 것은 15세 중학생 시절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당시 반도호텔(현 웨스턴조선호텔)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그때 그는 정갈하고 세련된 호텔을 보고 마치 새로운 세계에 온 느낌을 받았다. 또한 자신도 언젠가는 저런 호텔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신 회장은 1989년 마침내 어려서부터 꿈꾸고 있던 호텔을 세웠다. 호텔 이름은 ‘아미가(阿美家)’였다. 지상 11층짜리 1급 관광호텔이었다.
그런데 신 회장은 이 호텔을 지으면서 기존 호텔의 스타일을 과감히 허물었다. 그는 국내에 없는 새로운 호텔을 만들고 싶어 했다. 호텔 아미가(현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 신축 계기 또한 기존의 호텔과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됐다.
신 회장은 “사업가는 멀리 볼 줄 알아야 한다. 유행을 좇기보다는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낼 때 성공한다”고 말한다.
호텔 아미가가 2005년 현재의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로 상호가 변경되기 전 신 회장은 호텔 신축에 앞서 세계 여러 호텔을 다니며 분석하고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유럽에서 성을 개조한 호텔을 순간 ‘바로 이거다!’고 생각했다.
앞을 내다볼 줄 아는 그의 안목은 적중했다. 호텔 아미가는 유명세를 타면서 1996년 특급 2급, 1999년 특급 1급 호텔이 됐다.
이렇게 탄생한 호텔 아미가 는 마치 유럽의 고성을 방불케 했다. 고급스러운 유럽 앤티크 가구를 썼으며 인테리어는 섬세하고 고풍스럽게 했다.
호텔업계에서는 특급호텔도 아닌 1급 관광호텔이 유럽의 고급호텔처럼 인테리어를 했다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에 그런 호텔은 없었기에 아미가 호텔은 대성공을 거뒀다. 호텔 객석 가동률이 95.7%라는 놀라운 성적도 냈다. 고객은 대부분 일본 관광객들이었는데 그들은 마치 유럽의 어느 고성에 온 기분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아미가 호텔을 찾는 고객들의 수도 점차 늘어났다.
유럽 고성을 방불
호텔 아미가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신 회장의 이상대로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다. 호텔 아미가는 2005년 1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 리노베이션했다.
기존 신관을 증축하고 별관과 대형 컨벤션 센터를 새로 지었다. 객실 수도 기존 200여 개에서 430개로 늘었다. 이름도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로 바꼈다. 글로벌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내다본 것이다.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의 경쟁력은 ‘정성’이다. 호텔 구석구석 어느 곳도 신 회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쏟을 수 있는 만큼의 정성을 모두 다 쏟아 부은 것이다.
또 그는 호텔 곳곳을 갤러리처럼 꾸몄다. 홀과 로비는 신 회장이 수집한 고가의 미술품으로 장식했다.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은 여전히 고객이 내 집처럼 편안하게 쉬면서 우아한 분위기에서 예술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
리더인 신 회장이 정성을 들이는 또 한 가지는 직원이다. 호텔을 세운 뒤 10년 동안 직원들과 가족처럼 함께 살다시피 한 정도다. 그는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밤새 토론을 하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직원들과 함께 등산도 한다. 전국의 유명한 산은 거의 다 가다시피 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직원들과 격의 없는 소통을 가졌다. 그의 이런 행보는 해외에서 돌아왔을 때 한국 기업들의 임원들이 가진 권위의식에 놀란 데서 기인했다. 자신은 그런 권위의식을 타파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확고한 경영철학
신 회장은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자기희생’을 꼽는다. 리더는 자신보다 직원과 회사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챙길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기존의 방식을 깨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한국적인 매뉴얼을 만드는데서 찾았다. 이러한 신 회장의 생각은 화려한 유럽식 외관에 한국적 요소인 기와지붕을 덮은 호텔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신 회장이 성공의 덕목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경험을 쌓았던 것들이 한 몫을 했다. 여유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음에도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신 회장은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가리지 않고 했다. 졸업 후에는 인테리어 회사를 세워 인테리어에 대한 지식을 쌓았고, 이러한 경험은 호텔을 짓는데 큰 도움이 됐다.
임피리얼팰리스 서울은 2006년 TIME지가 주관한 어워드에서 비즈니스호텔 부문 1위를 수상한 이래 2007년 The Korea Herald, The Korea Times 등 권위 있는 매체로부터 강남 최고의 비즈니스 호텔로 선정됐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특1급 호텔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2007년 일본에 진출해 IP Hotel-Fukuoka 오픈을 시작으로 2009년 9월 필리핀 세부의 임피리얼 팰리스 워터파크 리조트&스파를 오픈했다.
신 회장은 순수 국내 자본의 특1급 호텔인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이 세계적인 체인망을 지닌 글로벌 호텔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 최상의 시설과 기품 있는 서비스, 그 이상의 가치를 생각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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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박시은 기자>
<출처=대한민국 최고의 CEO│지은이 이주민│미래북>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