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는 경제징크스] 기업어음의 진실
[울고 웃는 경제징크스] 기업어음의 진실
  • 강휘호 기자
  • 입력 2014-04-28 11:37
  • 승인 2014.04.28 11:37
  • 호수 1043
  • 3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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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자신의 눈에는 피눈물이…”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한때는 잘나가는 재테크 방법…이제는 사기?
동양·LIG·웅진 등 그룹 위기 직면, CP 잔혹사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재계에도 징크스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이 중요한 공사를 결정할 때, 논리와 계산 이외의 요소는 조금도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고 철저하게 분석한 뒤 과학적인 근거에만 입각해 일을 진행하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도 때론 미신 아닌 미신에 시달린다. 일부 재계 관계자들은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길한 징조들이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거칠 것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도대체 어떤 징크스가 따라 다닐까.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그동안 기업어음(Commercial Paper·CP)은 증권사 및 종합금융회사 등에서 취급했고 예금보다 높은 이율을 보여줬기 때문에 재테크 수단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른 바 동양사태를 기점으로 허술한 기업어음의 진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먼저 용어를 살펴보면 기업어음이란 신용상태가 양호한 기업이 상거래와 관계없이 단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융통어음이다. 만기는 1년 이내로 규정된다.

또 단기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신용상태가 양호한 기업이 발행하는 약속어음이다 보니 담보나 보증이 필요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신용상태가 양호한 기업들만이 발행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신용도가 B등급 이상이어야 한다. 신용등급은 A1, A2, A3, B, C, D 순으로 분류되고 C등급 이하부터는 투기등급으로 나뉜다.

하지만 원금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선 항상 위험이 도사린다. 이사회 의결이나 발행기업 등록, 유가증권 신고서 제출 등의 절차가 없다는 점도 위험 요소로 지적된다. 증권사의 실사를 받지 않아도 돼 주식이나 채권과 달리 공시 의무도 없다.

정작 투자자들은 회사의 부실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더군다나 기업어음을 발행한 기업이 부도가 날 경우 은행 담보대출 등 선순위 채권에 대한 변제가 다 이뤄진 다음 남은 자산으로 변제를 받기 때문에 투자자 손실은 피하기가 힘들다. 이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동양사태다. 또 LIG그룹과 웅진그룹 역시 기업어음의 안 좋은 예로 항상 거론된다.

동양은 이미 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태다. 회사채와 기업어음 상환 여력이 달리는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주)동양, 동양네트웍스,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유동성 위기의 정점에 다다른 모습이다.

앞서 동양그룹의 자금난이 세간에 드러난 것은 지난해 형제그룹인 오리온그룹에 지원을 요청한 이후다. 오리온그룹은 지원을 거절했고 위기와 우려는 현실이 됐다. 만기가 돌아온 빚을 끝내 갚지 못한 동양그룹은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혔다.
특히 그동안 동양그룹은 일반 투자자들에게 사기성 기업어음을 발행하면서 “원금이 보장된다. 손실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경영권을 지키려고 고의로 부실을 키워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의혹도 흘렀다.

비수로 돌아온 꼼수

기업어음이 그룹에 비수를 꽂은 경우는 또 있다. 구자원 LIG그룹 회장은 사기성 CP를 발행하며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욕심을 부리다 실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비록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타격은 적지 않았다.

LIG그룹은 2011년 LIG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 기업어음 저주의 시발점이다. LIG건설이 부도 직전인 사실을 알면서도 2151여억 원에 이르는 기업어음 발행한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LIG건설 인수 과정에서 담보로 제공한 다른 계열사 주식을 회수하기 위해 기업어음을 발행했다는 점으로 봤을 때, 경영권 유지를 위해 사기성 기업어음을 발행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LIG건설 기업어음 투자자 800여 명은 총 3437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또 그 아픔은 구 회장 장·차남의 구속으로 돌아간 셈이다. 구 회장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이끌어 냈지만 경영권을 물려받아야 할 두 아들은 실형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사실상 구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계획은 올스톱 상태에 빠졌다. 더욱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 회장의 집행유예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또 다시 상기시키며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웅진그룹도 마찬가지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역시 지난 1월 그룹의 부실한 재무상태를 숨긴 채 1000억 원대 사기성 기업어음을 발행하고 계열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배임)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김종호) 심리로 열린 윤 회장 등 웅진그룹 경영진 7명에 대한 첫 공판 당시 윤 회장은 모두진술을 통해 “사기성 기업어음 발행이라는 말에 정신상태가 혼미할 정도다. 어떤 경우도 비리·불법을 지시하거나 명령한 경우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몇 년 사이 문제가 불거진 재벌기업들은 부실을 감추고 기업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는 공통점이 발견되고 있다. 이러다간 ‘기업어음 발행이 곧 부도의 조짐’ 이라는 공식도 생겨날 기세다.
나아가 이들이 모두 계열사 해체 등 고초를 겪고 있어 기업어음 잔혹사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자신의 눈에는 피눈물 난다’는 말이 연상되는 징크스다.

한편 이대순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는 기업어음과 관련해 “형식적으로는 기업을 살리기 위한 방법들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오너일가들의 배불리기 방법”이라며 “부도가 날 것이 뻔한 상황에서 거액의 자금을 자신의 보험용으로 빼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는 일반 투자자들의 돈이 오너일가 주머니로 곧장 들어가는 꼴”이라며 “기업 자금을 빼돌려 계열사를 부당지원 한다거나 비자금을 조성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한국 기업의 경우 기업어음 발행이 그 일부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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