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정부 불신론 확산…최악의 촛불정국 올 수도
[일요서울 | 김정현 프리랜서] 실종자들이 하나 둘 씩 발견되면서 세월호 참사 현장을 떠나는 유가족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전남 진도에서 실종자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피해자 가족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희생자들을 버리고 달아난 세월호 선원들과 더불어 정부에 대한 비난여론에 불이 붙고 있다. 정부 당국이 사고 초기부터 우왕좌왕해 구조가 늦어졌을 뿐만 아니라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여러 의혹들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은 피해자가족들에 그치지 않고 범국민적으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신론이 확산되고 있어 앞으로 남은 지방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불신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수습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사건 초기부터 정부 관료들의 잇따른 실수가 구설에 오르는가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와 구조당국의 허술한 대응이 드러나 국민적 규탄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세월호 사건으로 박근혜 정부가 최악의 촛불정국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구조당국에 대한 피해자 가족들의 분노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있다.
정부와 구조당국이 잘못을 감추기 위해 책임을 세월호 선원들이나 운항사인 청해진해운으로 몰고 있다는 비난여론이 적지 않다. 또 정부와 구조당국이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기 위해 관제센터와 세월호와의 교신내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거나 해경이 배 침몰 전 탑승객들을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여러 의혹들을 뒷받침하는 정황증거들이 나와 진상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세월호의 구조요청 시점과 침몰 원인을 두고 설득력 있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을 끌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서는 세월호가 맹골수로에 진입한 시점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 다르며 구조요청 시간 그리고 해경과 관제센터가 구조요청을 접수한 시간 역시 구조당국이 밝힌 것과 다르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지 어민들 뿐만 아니라 세월호 사건 뉴스를 처음 접한 이들은 저마다 세월호가 진도 앞 서해 바다에서 목격된 것은 오전 7시 경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촌부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말을 해야겠다”며 “배가 구조요청을 한 최초 시간은 7시 20분 경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 근거에 대해 이 네티즌은 “나는 사고가 난 날 아침 7시 20분경 TV뉴스에서 분명히…”인천에서 출항, 제주도로 가는 배가 진도 해상에서 주변 어선과 해경에 ‘구조 신호’를 보내왔다“라는 요지의 앵커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고 밝혔다.
특히 그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은 이번 사건이 육안으로 사물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는 주간에 발생했고 사람이 살고 있는 섬과 인접한 곳이어서 지역민을 포함해 목격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많기 때문이다.
이 네티즌은 “화면에 나오는 배 사진을 보고 이미 해경이 도착한 것으로 판단, 날이 밝았고 해경도 도착했으니 아무 문제없겠구나 생각하고 한 점 의구심도 없이 제 볼 일 보러 집을 나섰다. 내가 집을 나선 시간이 정확히 아침 7시 30분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 때 뉴스에서 ‘세월호’라는 배 이름은 제가 흘려들었는지 정확히 듣지 못했다. 그러나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라는 말은 똑똑히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네티즌에 따르면 그는 아침 7시 30분 집을 나서서 TV를 전혀 못 보다가 점심때인 12시 30분경, 볼일 보러 들른 가게의 TV에서 아직도 구조중이라는 뉴스를 보고 굉장히 의아해 했다는 것이다.
사고 발생·신고 1시간 이상 격차
인천에서 제주로 가는 세월호의 원래 항로는 관매도 훨씬 바깥 쪽이다. 알려진 것과 같이 맹골수로를 통과하면 더 빨리 갈 수 있는데도 항로를 이렇게 정한 것은 맹골수로쪽은 큰 배가 다니기 적합하지 않아서다.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어선, 그물, 통발들이 쫙 깔린 해역이기 때문에 큰 배를 몰고 다닐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고 나서 거의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배 한 척도 구하러 오지 않았다.” 이 말은 구조된 승객이 한 말이다. 최근 이 주장에 힘이 실리는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 발생 시각과 신고 시각 사이에 1시간 이상 격차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지 어민들에 따르면 신고 시각 1시간여 전부터 사고 선박이 바다에 정지해 있었다는 것이다.
조난신고가 사고 발생보다 1시간 이상 늦어졌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또 이로 인해 구조작업도 지체돼 인명피해를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목포해경에 따르면 상황실에 접수된 최초 사고신고 시각은 오전 8시 58분. 이 신고는 사고선박 승무원이 직접한 것이 아니라 승객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가족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 시각이 오전 8시 58분이라면 사고 발생 시각은 이보다 더 이전으로 추정되지만 해경측은 사고선박으로부터 직접 받은 조난신고는 없었다고 밝혔다. 사고 선박이 해경에 조난신고를 하지 않은 점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또 이 네티즌의 주장과 같이 세월호가 최초 신고 1시간여 전부터 사고해역에 서 있었다는 목격담도 나오고 있다.
사고 해역 인근에 거주하며 구조작업에도 출동했던 한 어민은 “바다로 미역을 따러 나가는 시간이 아침 6시 30분이니 내가 바다에서 그 배를 본 것이 아마 7시에서 7시 30분쯤이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하얀 배가 가만히 있기에 왜 그러나 싶고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그외 별다른 특이점이 안 보여 그냥 마을로 돌아왔는데 도착하자마자 9시 좀 넘어서 마을이장이 구조작업에 동참해달라는 방송을 했다”고 전했다.
이 어민의 말대로라면 사고선박은 현장에서 모종의 상황이 발생한 후 1시간여 동안 머물러 있었고 이 어민이 현장을 떠난 뒤인 오전 8시 30분께를 전후해 기울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1시간 가량 정박해 있었다면 그 사이 신고가 없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또 배가 이미 파손돼 위기상황에 놓여 있었고 그 때문에 진도앞바다로 들어와 정박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부 증언을 살펴보면 그를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탑승객들 중 일부는 세월호가 전날 밤 암초에 부딪친 뒤 운항을 계속하던 중 사고가 난 것 같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구조자 서희진(54)씨는 이날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읍 실내체육관에서 여객선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15일 오후 10시30분에서 11시 사이 전북 군산 인근 바다를 지나던 배가 왼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었다”고 밝혔다.
서씨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밖으로 나가 확인했지만 파도는 잔잔했다”며 “배가 크게 흔들릴 정도의 기상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서씨는 객실로 돌아와 잠이 들었으며 다음날인 이날 오전 7시께 일어나 식당에서 수학여행에 나선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는 “식사를 마치고 객실에 들어가 쉬고 있는데 오전 8시30분께 갑자기 배가 왼쪽으로 확 넘어갔다”며 “45도 가량 기울어진 배가 이미 빙빙 돌며 침몰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세월호는 전날 저녁 이미 암초 등에 걸려 선체 일부가 파손된 상태에서 계속 운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해경에 최초 구조 신고가 접수된 오전 8시58분, 소방본부에 접수된 8시52분 이전부터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종된 아들과 이날 오전 8시30분께 전화통화를 했다는 한 어머니도 “아이가 배가 자꾸 움직여서 머리가 어지럽다고 해 배멀미를 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세월호를 전에 탑승한 적 있는 한 인사는 “세월호는 파도나 풍랑에 쉽게 흔들리는 작은 배가 아니다. 상당히 큰 배이기 때문에 거센 풍랑을 만난 게 아니라면 승객들은 거의 흔들림을 느끼지 못한다”며 “그런데 배가 흔들렸다거나 큰 충격이 느껴졌다면 배에 심각한 충격이 가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천안함의 악몽 재현 조짐
구조당국이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해경 사고접수 시간을 놓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해경이 사고를 최초로 접수한 시간은 오전 8시58분이다. 하지만 안산 단원고등학교 비상상황게시판에 기록된 내용에는 처음 위기를 알린 전화가 오전 8시10분이라고 기록돼 있다.
석연치 않는 점은 이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침몰직전 포착된 사진에서 세월호의 선미가 심각하게 손상된 흔적이 발견되고 있고 사건초기 배가 침몰 전 쾅하는 소리가 들렸다는 증언 그리고 세월호의 침몰 상황이 천안함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어 의혹은 더 확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선박에 의무적으로 부착하게 되어 있다는 AIS 단말기에 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단말기에 따르면 세월호는 오전 8시01분을 마지막으로 신호가 끊겼다. 이를 미뤄볼 때도 8시58분 최초 신고 접수는 황당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해경은 구조대도 늦게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구조도 소극적으로 벌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 공교롭게도 천안함 사건 때와 같이 한국과 미국은 2월 24일부터 4월 18일까지 한미연합군사훈련인 독수리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우리의 해상과 상공은 훈련 때문에 통제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해경이 산림청 헬기를 돌려보내고 전 UDT 전우회 활동을 제한하는 등 군사훈련 때문에 구조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이 정국을 뒤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안전행정부가 여객선 진도 침몰 참사 이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근무기강 확립 등과 관련한 지침을 내려보내고 있지만, 각종 물의를 빚어 구설수에 오르는 공무원이 잇따르고 있어 형식적인 지침하달에만 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이번 사고수습의 총괄부처인 안행부는 그 기능을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은 범부처 사고대책본부에 맡긴 채 언론보도에 대한 해명자료만 적극적으로 쏟아내고 있어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비난도 받고 있다. 정부가 공무원의 처신요령에는 관심 없고, 해명요령에만 집중한다는 지적도 있다.
안행부는 이번 사고 발생 이후 25일 현재까지 해수부·해경 등의 자료까지 포함해 수십 건의 해명자료를 뿌리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최근 칼럼이 알려지면서 정부에 대한 책임론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가디언은 최근 칼럼을 통해 “서방 세계에서는 그 어느 수장이라도 의심의 여지없는 국가적 참사에 대해 이렇게 입장을 늑장 발표하면 지지율 추락은 물론 직위 자체도 유지하기 힘들지 모른다”고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안일한 정부에 대한 국민 분노가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고 있으며 세월호 침몰이 한국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을 시험하고 있다”고 보도한 데 이어 대통령의 일부 발언이 적절했는지 여론조사까지 실시해 정부에 대한 불신론을 키우고 있다.
김재현 프리랜서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