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마흔 아홉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마리오아울렛(회장 홍성렬)이다.
지속되는 경기 불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다 저렴하고 품질 좋은 아울렛매장으로 소비층이 이동하고 있다. 불황으로 소비심리는 얼어붙었지만 소비자들의 욕구는 여전해 아울렛의 성장속도가 탄력이 붙은 것이다. 반면 백화점의 경우 성장세가 정체기를 맞았다.
이런 아울렛 시장을 가장 먼저 개척한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 최초의 아울렛인 마리오 아울렛의 홍성렬 회장이다.
빠른 판단, 결단력 있는 실행
마리오아울렛은 연기를 내뿜던 시절이 완전히 잊히지 않은 2001년, 옛 구로공단 자리에서 탄생한 정통 패션 아울렛이다. 그리고 홍 회장은 이 지역을 전국 최대의 패션단지로 만들었다.
당시 홍 회장이 국내 최초로 아울렛을 설립한 것은 상품재고와 유통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업체들은 재고를 처리하고 소비자들은 좋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게 할 방법을 생각하던 홍 사장은 외국에서 접한 아울렛이 우리나라에서도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마침 그때는 IMF 외환위기였고, 구로공단의 공장 건물들이 매물로 쏟아져 나왔다. 지금이 공장 부지를 살 최고의 적기라고 판단한 그는 곧장 실행에 옮겨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홍 회장의 결정에 주위에서는 모두 말리기 바빴다. 외환위기와 맞물리면서 금융 환경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1970년대에 성황을 이뤘던 굴뚝 공장들이 문을 닫아버린 후로 유동인구가 없는 구로동에 대형 매장을 만드는 것은 무모한 일로 보였다.
그러나 홍 회장은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그리고 밀어붙였다. 주변에서 위태롭게 지켜보는 가운데 마침내 2001년 마리오아울렛 1관이 오픈됐다. 홍 회장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곧 알게 됐다.
1관 오픈 3년 만에 마리오아울렛은 2관을 오픈했다. 입점을 희망하는 브랜드가 많은데다가 신규 카테고리들을 들여오기 위해서였다. 2001년 처 해 매출액은 500억 원이었다. 2004년에는 1200억 원, 2013년은 5000억 원으로 매출 목표를 잡을 만큼 성장했다. 마리오아울렛의 2013년 매출액은 2012년 대비 80% 증가했으며 방문객도 90%나 증가했다.
지하 4층과 지상 13층 규모의 3관은 세계적 수준의 아울렛을 만들겠다는 홍 회장의 의지가 담겨 백화점과 쇼핑몰의 장점을 두루 갖춘 공간으로 탄생했다. 정통 패션 매장은 물론이고 국내 아울렛 최고로 침대와 주방기구 등 라이프스타일 매장이 입점했다. 유명 레스토랑도 입점해 호황을 이루고 있다.
위기도 정도경영이 이긴다
홍 회장이 사업을 시작한 이후 계속해서 술술 잘 풀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고비도 고난도 많았다. 30년 넘게 패션 외길을 걸어오고 있는 홍 회장의 첫 패션 사업은 1980년, 직원 네 명을 두고 대방동에 니트 제조 공장을 차린 순간부터다. 그 마저도 형제들로부터 200만 원이란 돈을 빌려서 차린 공장이었다. 그 시절 홍 회장은 새로운 브랜드 니트를 만들기 위해 밤잠을 설치면서 노력했다. 그 끝에 탄생한 것이 ‘까르트니트’였다.
일본 바이어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홍 회장은 본격적으로 니트 사업에 매진했다. 구로공단에 공장과 사옥을 짓고 스웨터 내수판매와 수출에 주력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약속을 지키고, 제품에 작은 하자가 생기면 일본까지 달려가서 해결했다. 이런 성실한 자세에 일본 바이어들이 홍 회장을 믿기 시작했고, 그의 사업은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 같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포부를 펼친 것이 마리오아울렛이었지만 공장 지대에 유통시설이 들어올 수 없다는 법 규제 때문에 공무원들로부터 많은 방해를 받았다.
처음에는 공무원들이 말도 붙이지 못할 정도로 고압적이었다. 법 해석과 관계없이 무조건 불법이라고 방해를 했다. 심지어 마리오아울렛과 계약이 중단됐으니 거래를 중단하라고 한국산업단지공단이 다섯 개의 은행에 공문을 보내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서 3관을 짓는데 무려 8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런 구로동 일대에 패션 타운이 형성되고 고객의 돈이 몰리자 규제가 점차 약화됐다. 그렇게 마리오아울렛은 첫 고비를 넘겼다.
홍 회장은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속임수를 쓰지 않는 정도경영이 이긴다는 점을 깨달았다. 잠깐의 이익을 위한 속임수는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기업 간의 약속은 신뢰로 이어지고, 고객과의 약속은 품질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외국인 소비자 유치 힘쓴다
홍 회장이 아울렛을 구상할 당시 패션 제조 공장은 대부분 영세업체들이라 허름한 변두리 지하실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제조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와 반대로 판매 시설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것이 상식에 가까웠다.
그러나 홍 회장은 상식을 깨고 패션과 유통을 ‘원스톱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공장과 매장이 한 곳에 있으면 물류비와 임대비를 줄일 수 있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홍 회장은 2관에 제조와 판매시설을 함께 모았다.
앞으로 마리오아울렛은 국내 고객은 물론이고 중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 3관 오픈과 함께 2층에 ‘마리오 명품관’을 마련했다. 명품매장의 수수료를 대폭 내리고 브랜드별로 최대한 마진을 낮춰 국내 최저가로 판매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서비스도 강화했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관광객을 상대로 택스 리펀드(Text Refund·해외 여행자들이 부가세가 포함된 물건을 구입한 뒤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일정액의 부가세 및 개별소비세를 되돌려주는 ‘외국인 대상 세금 환급제’) 서비스와 외국어 안내표지 등을 제공한다.
또 마리오아울렛은 국내 아웃렛 업계 최초로 2년 연속 중국 관광청으로부터 CNTA 품질인증을 받았다. CNTA 선정은 신뢰, 만족 등 종합적인 면을 고려해 중국 관광객에게 검증된 매장을 선정하는 것이다. 2년 연속 인증 받은 국내업체 중 마리오아울렛과 갤러리아 백화점이 유일할 정도로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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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박시은 기자>
<출처=대한민국 최고의 CEO│지은이 이주민│미래북>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