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백혈병 논란 ‘7년간의 이야기’
삼성반도체 백혈병 논란 ‘7년간의 이야기’
  • 박시은 기자
  • 입력 2014-04-21 11:19
  • 승인 2014.04.21 11:19
  • 호수 1042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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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진실 드러나나 했더니… 양측 협상 다시 미궁

삼성 “반올림 입장 변화 유감” vs 반올림 “삼성의 언론플레이다”
제3 중재기구 제안한 심 의원 난감…입장 차이로 교섭 진행 난항

▲ <뉴시스>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7년간 지속돼 온 삼성전자(부회장 이재용)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으로 사망한 근로자 유가족에 대한 보상 등을 요구하는 시민단체 반올림의 갈등이 또 봉합되지 못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반도체 사업장 직원의 백혈병 사망에 대한 공식입장을 내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반올림 측의 입장 번복’을 입장 발표 시기 연장의 이유로 들었지만 반올림 측은 삼성전자가 교섭 회피 명분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에서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구제결의안을 추진한 이후 삼성전자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치권 눈치 살피기에 불과했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직원의 백혈병 사망에 대한 논란은 2007년 이후 7년 동안 계속돼 왔다. 지난 2월에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상영과 관련해 ‘외압설’이 돌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9일 삼성전자에 반도체 사업장 직원의 백혈병 사망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와 보상안 마련 등을 요구하며 구제를 위한 결의안발의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지난 14일 삼성전자는 “심 의원의 제안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빠른 시일 내에 경영진이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혀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지난 16일 이 모든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심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네 가지의 요구안 중 ‘제3의 중재기구 구성’에 대한 내용에서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심 의원은 기자회견 당시 반올림 측과 함께 ▲삼성의 공식 사과 ▲제3의 중재기구를 통한 공정한 보상책 마련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정부 산업재해 인정 기준 완화를 요구했다.

삼성전자 측은 “반올림 측에서 제출한 제안서의 요구내용을 번복하며 ‘제3의 중재기구’를 통한 보상안 마련의 제안에 대해 합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 혼란스럽다”며 입장 발표 시기를 연기했다. 어떤 내용을 정확히 검토해야할지 몰라 혼선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자회견과 또 심 의원이 보내온 제안서에 심 의원과 반올림의 이름이 함께 명시돼 있어 반올림 측도 동의한 보상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했다”면서 “제안서를 보내온 측에서 의견의 차이가 나타나버리니 검토 대상이 사라진 셈이다”고 말했다.

이어 “마치 삼성이 협상을 기피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오해가 많다”면서 “반올림이 입장 변화를 보인 만큼 상황이 복잡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공식 입장 발표는 잠정 연기된 것이냐는 질문에는 “제안서를 보내온 측에서 현재의 상황을 정리시킨 다음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순서이므로 이 같은 혼란 속에서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은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또 “삼성 측에서 제3의 중재기구를 제안한 것처럼 얘기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번 제안은 심 의원, 피해자 및 가족, 반올림 측이 기자회견을 열고 밝힌 내용에 근거해 공식 답변을 내놨던 것이다”고 밝혔다.

제3 중재기구 동의한 적 없다

반면 반올림 측은 이러한 삼성의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임자운 반올림 상근변호사는 “삼성전자가 그동안 보인 책임회피의 행동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심 의원의 기자회견 당시 반올림 측도 함께 참여했지만 기자회견 이전에 ‘제3 중재기구’ 내용에 관해 동의한 적도, 들은 적도 없다는 것이다.

임 변호사는 “기자회견 전날 심 의원으로부터 기자회견문을 전달받기는 했으나 그동안 꼼꼼히 살피며 준비해왔던 내용이므로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 살펴보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심 의원과 국회 결의안 내용에 관해서 검토를 하고,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3 중재기구’에 대해서는 어떤 논의도 한 적이 없다”며 “심 의원이 독단적으로 제3 중재기구의 내용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자회견문을 끝까지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잘못은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을 확인한 후 심 의원 측으로 내용 정정을 요청했음에도 정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임 변호사는 “삼성 측은 반올림 측이 지난해 12월에 전달한 ‘삼성 직업병 대책 마련을 위한 요구안’에 구체적인 답변을 준 적이 없다”면서 “지난 14일의 발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섭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상황에서 교섭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심 의원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삼성전자가 반올림 측이 내놓은 요구안에 대해서는 답변을 내놓지 않다가 직접적인 교섭을 피할 수 있는 ‘제3의 중재기구’안이 건의되자 이를 즉각 받아들였다는 설명이다. 임 변호사는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문제제기에 대한 무시와 책임회피를 일관했던 태도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 측의 첫 교섭은 위임장을 둘러싼 문제로 진행되지 못한 채 끝난 바 있다.

그는 또 “삼성전자의 발표로 일말의 희망을 가졌었는데 중재기구 마련 보상안 부분에 대해 심 의원에게 정정을 요구하고, 잘못된 사실을 알리니 반올림 측이 입장을 번복했다고 발표했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삼성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언론을 통해 얘기하는 것 외에 반올림에 직접 연락한 것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반올림과 심 의원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한 혼선이 발생했다면 제 3자인 심 의원이 아닌 피해 당사자, 가족들로 이뤄진 반올림을 직접 만나 정확한 입장이 뭔지 확인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6일 예정돼 있던 교섭도 하루 전 날 일방적으로 연기했다”며 반올림 측에서 실무진이라도 만나서 얘기해보자고 요청했지만 거부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 측이 적극적으로 반올림 측에 입장을 보인 것을 두고 ‘정치권 눈치 보기’였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7년 동안 이렇다 할 결론을 매듭짓지 않던 상황에서 구제 결의안이 국회에 등장하자 공식 답변을 내놨다는 점 때문이다.

정치권 눈치 봤다 논란까지

한 정계 관계자는 “지난 2월 상영된 ‘또 하나의 약속’이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삼성전자와 반올림 간의 문제가 다시 한 번 공론화 된 것에 압박을 느낀 것 같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국회에 구제 결의안의 등장으로 또 한 번의 관심을 모은 것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나”고 바라보기도 했다.

이처럼 삼성전자와 반올림 양 측의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자 심 의원 측도 난감한 모양새다. 반올림 측에 따르면 심 의원은 이들이 제3 중재기구 마련에 대한 내용을 항의하자 “일부 의원들이 국회 결의안 통과를 위해서 필요한 항목이라고 지적해 추가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반올림 측이 정정을 요청했으며 심 의원 측으로부터 “제 3의 중재기구와 관련해 의견을 구하는 노력이 충분하지 못했던 점 등 소통을 담당했던 보좌관의 노력에 부족함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는 답변서가 온 상황이다.

심 의원 측은 ‘중재기구 구성’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 의원실 관계자는 “가습기 살균제 소송 사례에서처럼 보상 절차가 진행되려면 어떤 형식으로든 중재기구가 필요하고, 여기에 피해자 및 가족들이 포함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삼성 측이 이번에 공식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한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했다.

이처럼 삼성전자와 반올림 간의 갈등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7년간 지속된 논란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지를 두고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seun897@ilyoseoul.co.kr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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