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강엔 ‘죽음 행진곡’
지금 한강엔 ‘죽음 행진곡’
  • 이인철 
  • 입력 2004-06-23 09:00
  • 승인 2004.06.2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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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밤 10시 경 서울 용산구 반포대교 중간지점에서 김모(남자·37)씨가 자신의 승용차를 세워놓은 뒤 다리 아래로 투신 자살했다. 김씨는 사귀어온 애인과 차를 타고 가던 중 애인이 전 남편과 재결합하는 문제로 다투다 차를 세우고 다리에서 뛰어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에 앞서 지난 6일 오전 11시 경 원효대교 북단에서 조모(72)씨의 사체가 발견됐다. 조사결과 조씨는 지난 2일 아내와 다툰 뒤 가출해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30일 오후에도 서울 가양대교 남단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오던 김모(49)씨가 ‘부모와 자식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한강으로 뛰어들어 숨졌다.

2000년 이후 증가세

서울시 소방방재본부가 2002년과 2003년 상반기에 발생한 유형별, 장소별 수난사고 현황을 분석해보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2002년 1월∼7월말까지 수난사고는 총 246건으로 인명피해는 182명인데 반해 2003년 같은 기간 수난사고는 284건, 인명피해는 201명에 달했다. 이중 투신자살은 2002년 125건, 2003년엔 137건이었다. 투신자살과 별도로 사체가 인양된 건수도 2002년 28건, 2003년 34건이었다. 방재본부 관계자는 “시민의 안전을 위한 지표를 제시하기 위해 2002년부터 매년 상반기 동안 발생한 수난사고를 유형별, 장소별로 분석하고 있다”며 “이를 분석해 보면 한강에서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올해도 투신자살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시 소방방재본부에 따르면 올 6월 9일까지 119구조대가 출동한 수난사고를 집계한 결과 총 162건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자살기도가 80여건으로 가장 많았고 전체 수난사고의 50%에 달했다. 이어 익사가 17건, 물놀이 사고 5건, 차량추락이 4건 등으로 집계됐다. 59명 중 25명이 사망했고, 12명이 부상했으며, 사고자중 구조된 인원은 22명으로 나타났다. 영등포소방서 소속 119 수난구조대 고정호 대장은 “98년 IMF 여파로 한강투신자살이 급증했다가 점차 줄어들었는데 최근 다시 늘고 있는 추세”라며 “젊은층부터 노인들까지 연령층도 다양해졌지만, 한 집안의 가장 격인 40대 남자들의 자살이 가장 많다”고 밝혔다.

한 구조대원도 사견임을 전제로 “과거에도 한강 투신자살은 많았지만, 최근에 잇따라 유명인사들이 한강에서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평범한 일반인들의 모방심리에 의한 투신도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98년 361건에 달하며 최고조에 달했지만, 2000년에 280여건으로 줄어들었다”면서 “그러나 최근에 다시 증가추세로 변하고 있는데 경제난의 영향을 상당히 받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의경 배치해 자살 방지

남상국 전대우사장, 박태영 전전남도지사의 투신자살 영향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관내 대학 설립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던 이준원 파주시장마저 4일 반포대교에서 투신자살하는 일까지 터졌다. 자칫 한강이 자살의 장소처럼 여겨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유명인사의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일반인의 자살률이 평소의 14.3배나 높아진다고 알려지고 있어, 최근에 발생했던 저명인사들의 한강 투신이 일반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자살은 전염력이 강해 소위 ‘저런 사람도 죽는데’라는 심리가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에 늘어나는 한강 투신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들도 마련되고 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8일부터 사회지도층 인사 등 일반인들의 한강 투신 자살 사건이 잇따르자 한강다리 3곳에 의경을 배치하고 사고예방에 나섰다.

용산서 생활안전과에 따르면 최근 투신사고가 빈발했던 반포·한남·한강대교 3곳에 의경을 10명씩 배치,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조별로 순환근무를 하며 다리 순찰활동을 시작했다. 용산서 관계자는 “올해만도 관할 구역에 있는 한강다리에서 40여명이 자살하거나 자살을 기도했다”며 “자살이 많은 시간대와 다리를 분석, 예방차원에서 우선적으로 배치했다”고 말했다. 119구조대도 한강 다리 주변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영등포 수난구조대 고정호 대장은 “오전 오후 하루 2차례 이상 강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며 “수난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인철  chle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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